북 선전 ‘농촌 살림집 건설’ 대부분이 ‘재건축’

워싱턴-박수영 parkg@rfa.org
2023.02.10
북 선전 ‘농촌 살림집 건설’ 대부분이 ‘재건축’ 평안북도 정주시 신천동 한 마을의 2021년 11월 (왼쪽)과 2022년 11월 (오른쪽) 위성 사진. 기존 주택이 사라지고 신식 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구글어스

앵커: 북한 당국이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농촌 살림집 건설’ 중 상당수가 기존 주택을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인 것으로 위성사진 분석 결과 드러났습니다. 농촌지역 주택의 경우 대부분 노후화한 데다 부실 공사 탓에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자연재해로 피해가 컸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정작 농촌 주민들은 재건축을 내심 반기지 않는다는 탈북민들의 증언도 나오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농촌 살림집 건설 상당수 ‘재건축’…턱없이 부족한 주택 보급률 상승 기미는 그닥

 

최근 들어 북한이 김정은 시대의 주요 경제 성과로 부쩍 내세우고 있는 ‘농촌 살림집 건설.

 

[북한 관영 방송] 위대한 당의 영도 따라 사회주의 건설에 전면적 발전에로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 인민들에게 휘황한 내일에 대한 심심과 환희를 안겨주며 각지 농장 마을들에 우리식 농촌 문명의 새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해 말 (12 27일 자) 대대적인 신식 살림집 건설과 집들이 행사 진행을 보도한 지역은 모두 8 (평양시 사동구역 오류남새농장, 강남군 장교농장, 평안북도 정주시 신천농장, 염주군 내중농장, 구장군 수구공예작물농장, 함경북도 청진시 어유농장, 함경남도 단천시 직절남새농장, 함주군 연포농장.)

 

이 중 확인 가능한 6곳을 위성 사진(구글 어스)을 통해 살펴 봤습니다.  그 결과, 5곳이 재건축이었고, 1(함경북도 청진시 어유리)만 새로 부지를 조성해 신축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평양시 오류리와 장교리, 평안북도 정주시 신천동과 염주군 내중리, 함경남도 단천시 직절동 등 5개 지역에서 기존 단층 주택을 철거한 후 단층 또는 2~3층짜리 복합 주택을 재건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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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염주군 내중리의 한 마을에 100채 가량의 기존 주택이 철거되고 신식 복층 주택이 건설됐다. 2022년 12월 촬영된 사진에서는 건물들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있다./구글어스-박수영, 김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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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단천시 직절동의 한 마을에 100채 가량의 기존 주택이 철거되고 신식 복층 주택이 건설됐다./구글어스-박수영, 김태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내중리의 경우 100채 가량의 단층집을 허문 뒤 약 60채를 새로 건설했고, 직절동에서도 100채 가량을 철거한 후 약 36채의 복층 주택을 재건축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밖에 위성사진 분석 결과 함경남도 북청군 문동리와 강원도 고산군 설봉리 등 여러 농촌 지역에서도 지난해 살림집 재건축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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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북청군 문동리의 한 마을에 60채 가량의 기존 주택이 철거되고 신식 복층 주택이 건설됐다. 재건축으로 농촌 주민들의 합법적인 개인 수익원이었던 텃밭이 사라지고, 일반 주민들은 실제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고 탈북민들이 전했다./구글어스-박수영, 김태이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애민정신을 내세우며 선전하고 있는 농촌 살림집 건설 이 대부분 재건축인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북한 내부 상황을 추적해온 미국인 제이콥 보글 씨는 북한이 “새 살림집을 건설했다”고 선전할 때 평양은 신규 구역 개발을 의미하지만, 농촌은 재건축도 포함하기 때문에 이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북한 당국이 성과를 과장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이콥 보글] 김정은 총비서는 북한을 강성대국으로 내세우고 있고 ‘지도부가 북한 주민들을 돌본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농촌에 새로운 살림집 몇 채라도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농촌 살림집 신축에 대해) 이처럼 홍보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여기다 살림집 재건축은 가뜩이나 부족한 북한의 주택 보급률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한국 토지주택연구원 (LHRI) 최대식 북한연구센터장은 지적했습니다.

 

[최대식] 아무래도 새로운 땅에 주택을 새로 짓는 것보다는 주택 증가량은 미미하겠죠. (한국) 국내 여러 기관에서 추정한 자료를 대략적으로 보면 (북한 주택 보급률은) 74~83% 정도로 추정하고 있고요.  LHRI에서 2014년 기준으로 약 70% 내외로 추정했는데, 이게 가장 최근에 추정한 수치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북한이 살림집을 역점적으로 건설했으니 현재 기준으로 보면 북한 주택 보급률이 80% 근처까지는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는 한국의 1990년대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마저도 주택으로써 제대로 된 구실을 할 수 없는 노후화된 주택까지 포함한 수치라고 최 센터장은 설명했습니다.

 

[최대식] (주택 보급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현대적인 주거 생활을 영유할 만한 주택 수로 따지면 훨씬 좀 더 열악한 수준이 되겠고요. 노후화된 주택까지 다 포함하면 (80%) 정도 수치는 나오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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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정주시 신천동의 한 마을에 80채 가량의 기존 주택이 철거되고 신식 주택이 건설되고 있다./구글어스-박수영, 김태이

 

농촌 재건축, 일반 주민들은 텃밭 잃고 입주 혜택 못 봐

 

농촌 주민들 사이에서는 살림집 재건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고 탈북민들은 지적합니다.

 

기존 단층집을 밀어내면서 농민들이 작게나마 소유할 수 있었던 개인 텃밭까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탈북민 출신 시사평론가 김금혁 씨는 (8) 농촌 주민들에겐 텃밭이 합법적인 개인 수익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김금혁] 농촌은 사실상 재건축을 굉장히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북한은 개인 농이 없잖아요. 다 대부분 협동 농장에 소속되어 있는 농장원들이다 보니까 농산물에 대해서 본인의 소유권이 없는데 대신 텃밭은 있어요. 농촌은 대부분 아파트가 아니라 단층 살림집인데 단층 살림집 기준으로 몇 평 정도의 개인 텃밭을 가지고 있고 이것에 대해서는 국가가 허락해주거든요. 그러면 농민들 대부분의 수입은 사실상 이 텃밭에서 생산하는 야채 같은 것들에서 나옵니다.

 

연립주택을 짓기 위한 재건축으로 이 개인 텃밭에 대한 소유권이 모호해지거나 없어진다는 겁니다.

 

[김금혁] 신축해버리거나 혹은 재건축으로 연립 주택으로 만들어버리면 그 텃밭에 대한 소유권이 굉장히 애매모호해져요. 혹은 그 과정에서 텃밭을 힘 있는 사람들한테 뺏기기도 하고 아예 소유권이 흐지부지돼서 애매모호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 상황이 있다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텃밭에 대한 내 소유권을 인정해 주지 않을 거면 이런 거 왜 하냐’라는 불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탈북민 출신 북한 농업 전문가인 ‘굿파머스’의 조충희 연구소장은 (7) RFA에 농촌 살림집 재건축으로 일반 북한 주민들이 혜택을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충희] 헐고 다시 짓거나 자연재해로 피해를 봐서 당분간 다른 데 가 있던 사람들이 기본으로 입주하는 게 원칙이고요. 그다음에, 집에 여유가 몇 개 생기면 어차피 국가가 지은 집은 선착순으로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사람과 또는 그 사람과 가까운 사람들이 먼저 가지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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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청진시 어유리의 한 마을에 신규 주택이 건설됐다. 기존 주택 뒤편 평야지대에 약 20채의 신식 주택이 건설되고 있다./구글어스-박수영, 김태이

 

농촌 살림집, 재건축이 상당수인 이유는?

 

북한에서 주택 보급률이 낮은 가운데서도 기존 농촌 살림집을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주된 이유로 부실 공사와 노후화가 꼽힙니다.

 

함경남도 단천시 출신 서재평 탈북자동지회장은 (7) 북한 살림집들의 부실 공사가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재평] 북한 말에는 ‘농촌주택은 오줌 몇 번 쏴도 무너져 내리니까 도둑질하기도 쉽다’고 할 정도로 부실한 건설 방식이고 부실한 주택이에요. 그러니까 사실 한 이십 년 지나면은 흙들이 다 슬슬 부스러져 내립니다.

 

조충희 연구소장은 토피 ()으로 지은 농촌집들이 최근 자연재해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충희] 지역마다 차이 나기는 하지만 북한의 기존 살림집 중 특히 농촌 지역의 살림집들이 시멘트 건물이 많지 않고, 토피 ()로 지은 건물들이 꽤 많거든요. 이런 집들이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오거나 비가 새면 풍화 작용으로 해서 집이 무너지거든요. 그래서 농촌집이 자연재해로 홍수가 나면 피해를 제일 많이 봤죠.

 

보글 씨도 최근 몇 년간 발생한 폭우 등 재해로 북한 당국이 재건축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을 걸로 분석했습니다.

 

[제이콥 보글] 몇 년 전 태풍으로 인해 큰 피해가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농촌 주택들을 재건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대규모 재건축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시골 지역에서는 수십 년 된 많은 집들이 아직도 전기 설비도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재건축이 시급했습니다.

 

최대식 센터장은 대북 제재와 경기침체로 건설 자재를 수입하기 어려운 상황도 북한 당국이 재건축에 집중한 배경 중 하나로 설명합니다.

 

[최대식] 실질적으로 주택이 주거 기능을 하려면은 집만 지어서는 안 되고 그 안에 도로나 상하수도 같은 기반 시설이 갖춰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기존 주거지가 있는 곳은 기반이 이미 갖춰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건축은) 새롭게 하는 것보다 주택 주변의 인프라를 추가로 건설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죠. 그래서 기존 주거지에 재건축하는 것이 좀 유리한 측면이 있고요.

 

김금혁 씨도 각 도별로 당에서 지시하는 경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재건축에 집중했을 걸로 내다봤습니다.

 

[김금혁] 도별로 계획을 배당하면 중앙에서 모든 자재가 배급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데는 자급자족으로 해결해야 하는 곳도 있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는 기존에 있던 집을 허물고 재건축을 해 준다거나 용도 변경을 해 주는 등 여러 꼼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계획은 맞춰야 하니까요.

 

조충희 소장은 경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사가 아닌 주민들의 주거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살림집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충희] 실질적으로 북한 농촌에서 주택의 부족과 주택 상태의 개선을 위해서 농촌 건설을 하려면 투자를 하고 제대로 된 집을 지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북한 당국이 김정은 시대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농촌 살림집 건설이 겉만 번지르르한 보여주기가 아닌 주민들을 위한 사업이 돼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취재에 도움을 주신 한국 경북대학교 국토위성정보연구소 정성학 부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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