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보내는 편지 - 문화방송 황원기자의 사연

200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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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사는 납북자 가족들의 사연과 이들이 북한에 끌려간 가족들에게 보내는 ‘북으로 보내는 편지’ 오늘은 그 일곱 번째 순서로 지난 69년 남한 대한항공을 타고 있다가 납북당한 문화방송 황원기자의 사연과 그의 아들 황인철씨가 보내는 편지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다음은 황원씨의 아들 황인철씨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이땅에 태어난 것이 비극인 아버지! 식민치하에 년이란 세월이 지나 조국은 해방되었지만! 아버지와 우리가족들은 36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뚫린 아픔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69년 12월11일 당신은 출장 중에 공중에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시작하였고 1970년2월14일 39명만이 송환이 되고 12명이 돌아오지 못하여 또 한 번 찢어지는 아픔을 가져야 하는 우리 가족들의 운명 ! 정부는 혹시나 간첩이 되어 돌아오지 않나 감시나 하고 자신들이 보호했어야할 우리를 오히려 죄인으로 몰았습니다. 이 모든 갑작스러운 충격에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편집 성 인격 장애와 정신 불안이 되었으며 우리 가족은 참으로 험하게 살아왔습니다. 억울하고 통탄스러워도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침묵만을 강요당했던 우리가족들! 할머니는 평생 당신을 생각하시면서 눈물과 한 만을 가슴에 안은 채 돌아가셨습니다. 이 땅에서 빼앗기기만 하고 무지와 무관심 속에 살아왔습니다. 나라가 아닌 집단이라고 생각하였기에!"나는 국민이 아닌 세금이나 내주는 노예이다"라고 포기하며 스스로 위로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금강산이 열렸던 때, 개성공단까지 육로가 열렸다고 할 때, 한반도기가 나부끼며 우리의소원은 통일이라 남과 북이 어우러져 부르짖을 때,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기쁨도 잠시 애써 잠재웠던 저의 마음은 더 크게 아픔으로만 다가 왔습니다. 과거에는 남북대치관계로 어쩔 수 없이 침묵만을 강요당했고, 지금은 통일의 방해자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다 아는 납치사건인데도 북한에는 납북자가 없다는 말에, 우리들을 먼저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우리가족들을 골치 덩어리로만 바라봅니다.

1969년 12월 11일 강릉 발 서울 행 대한항공 ys11기를 타고 출장을 떠난 황원씨는 공중에서 북한으로 납북되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납북된 남한주민들의 수는 승무원 4명을 포함해 모두 51명이였습니다. 당시 남한의 치안국장은 대한항공의 납북은 북한 간첩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치자 북한당국은 대한 항공 탑승객 51명중 39명을 남한으로 송환했습니다. 그러나 송환자 명단에는 황원씨를 비롯해 기장과 승무원 등 12명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아 납북 피해자 가족들은 또 한 차례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이들 12명이 자진해서 월북했다고 주장 했을 뿐 별 다른 해명은 없었다고 황원씨의 아들 황인철씨는 말했습니다.

황인철: 북한에서 얘기하는 이유가 정당한 게 있는 것은 아니고 그쪽에서 주장하는 것은 의거 입북이라고 하고 당시 남한에서도 유사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월북자는 곧 간첩 그리고 가족들은 간첩의 가족들 이라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황인철씨는 당시 3살로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을 못하지만, 자라오면서 아버지 없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황인철: 가슴이 아플 정도가 아니라 피눈물 날 일이다. 3, 4학년쯤 돼서 아버지가 납북된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전까지는 아버지가 미국에 있는 줄 알았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에게 납북된 사실을 얘기했더니 납북이 아니라 월북 간첩 등으로 소문이 났다...

1969년 12월 강릉발 대한항공을 탔다가 납북당한 문화방송기자 황원씨의 아들 황인철씨의 편지 내용 이였습니다. 황원씨와 황인철씨의 사연은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이규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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