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보내는 편지 - 선원 박길윤씨


200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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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사는 납북자 가족들의 사연과 이들이 북한에 끌려간 가족들에게 보내는 ‘북으로 보내는 편지’ 네 번째 순서로 지난 1971년 납북된 휘영37호 선원 박길윤씨의 형 박동경씨가 보내는 편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다음은 박동경씨가 동생 길윤씨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동생 길윤이에게. 그간 30년이 넘어 40년이 되어가는구나.. 형님두분은 다 돌아가셨다. 너의 누님은 아직 건강하게 아이들과 잘 살고 있다. 나도 동생과 헤어진 후 아이 셋을 두고 잘 있다. 동생은 제수와 아이들이 있는 지 궁금하구나... 휘영 37호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강제로 납북된 동생... 보고싶구나.. 이제 형도 70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내가 살아 있을때 내동생 길윤이를 만나야 할텐데... 동생을 만나 할말을 다하고 가야 눈을 감을 텐데.. 길윤아 꼭 만나고 싶다.. 그때까지 몸조심하고..

1971년 1월 6일, 서해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박길윤씨는 타고 있던 휘영37호의 기관고장으로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형 박동경씨도 당시 어선을 타고 휘영37호 인근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박동경씨는 동생이 타고 있는 배로부터 기관고장이라는 무선연락을 받은 뒤 귀항한 것이 동생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들은 연락이라고 말합니다.

박동경: 기계가 고장이 나서 밤새도록 작업을 못하고 바다에 떠 있었다. 무선으로 불러보니 기계고장으로 작업을 할 수 없어 기계수리 중이라고 했다.

다음날 새벽 박동경씨는 동생 박길윤씨가 타고 있던 휘영37호가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박동경: 바로 이북 옆인데 기계고장으로 물에 떠다녔다. 다음날 이북 경비정이 잡아갔다.

박동경씨는 북으로 끌려간 동생의 송환을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으나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였습니다.

박동경: 중국을 연결해 만나보려니 어렵고 몇 번을 시도해도 안 되서 통일부에 가서...

그러나 동생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가족을 잃은 아픔보다 박동경씨의 가족을 더 슬프게 만든 것은 남한정부의 차가운 시선이었습니다. 연좌제가 있던 당시, 박씨의 가족들은 박길윤씨가 북으로 끌려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박동경: 고등학교를 나오면 무엇하는 가 취직을 할 수 없는데,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있나?

동생이 납북된 지 34년이 지난 올해 2월. 박동경씨는 마침내 북으로 끌려간 동생의 모습을 사진으로 처음 접할 수 있었습니다. 74년 묘향산에서 찍은 납북된 휘영호와 오대양호 선원 37명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납북자 가족 모임에 의해 공개된 것입니다.

불과 납북 된지 3년후의 모습이였지만 동생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고 박동경씨는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휘영 37호 선원 이였던 박길윤씨의 형 박동경씨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이었습니다.

이규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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