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 생활] 북한판 농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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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함께 잘살아 보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 입니다. 북한의 분조관리제와 농촌의 현실에 대해 북한 경제 전문가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자:정은이 연구위원님 안녕하셨습니까?

정 연구위원:네 안녕하세요.

기자:북한은 김정은 시대 들어 농민들에게 일정 땅을 나누어 주고, 거기서 나온 수익 중 일부를 국가에 받친 후 나머지 잉여분에 대해서는 농민에게 처분권을 주는 이른바 분조관리제를 실시해 왔는데요. 최근 분조관리제의 실태는 어떻습니까?

정 연구위원:지역마다 다를 수 있는데요. 하지만 몇 년 사이에 분조관리제를 실시하지 않는 농장들도 있다는 증언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황해도 협동농장에서는 올해 땅을 분배하지 않았다고 하는 데요. 그만큼 이는 실시하지 않고 있다기보다는 분조관리제가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 같은데요. 일부 언론도 김정은 시대에 시작된 분조관리제를 최근에는 북한 당국이 실시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했는데요. 오늘은 분조관리제를 중심으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기자:북한이 분조관리제를 실시한 것은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라는 평가가 전문가들 속에서 나왔는데요. 그러면 중단한 이유는 무엇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까?

정 연구위원:일부 중단된 사례가 있는데요.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아무래도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없애야 하는 자본주의적 폐단이 일부 나타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특히, 땅을 분배 받았어도 비료나 농약 등을 구입할 수 없는 농민들은 아예 포기하고 도시로 일감을 찾아 나가는가 하면, 돈이 있는 농민들은 더 많은 땅을 사서 대규모로 농사를 지으니까요. 협동농장에서도 농장 수익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니까 땅을 균등하게 분배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가 있는 농민들에게 더 많은 땅을 판매하는, 즉 사용권을 판매한 사례가 부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농민들의 경우, 여유가 있으니까 비료도 더 많이 투입을 하고, 분배 받은 땅이 넓다보니 일일 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농촌 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생기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지요.

기자:네 그렇군요. 그러면 분조관리제가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데는 도움이 되었나요?

정 연구위원:일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으나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는 증언도 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전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력하지 않는 농민들과 별반 차이 없이 곡물을 분배받았다면, 분조관리제를 실시한 이후로는 땅을 분배 받았으니까, 그만큼 투입된 노력만큼 수확물을 얻을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더 열심히 노력하고, 즉, 분조관리제는 구조적으로 사보타주를 막을 수는 있었겠지요. 그래서 이미 은퇴 나이가 된 농민들조차도 분조관리제가 실시되면서 다시 농사를 짓는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기자:방금 사보타주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청취자 분들을 위해서 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정 연구위원:사보타주 같은 경우는 남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다른 사람이 게을리 하는 현상들을 막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기자:그러면 농촌에서 도시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농민들이 있다던데 그게 북한에서 가능할까요?

정 연구위원:일단 북한에서 1990년대 장마당이 본격적으로 확산된지 이미 3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도시에 시장도 많아지고, 장마당 이외에도 상점, 마트, 백화점 등 다양한 상업망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북한도 그만큼 시장화가 진행이 되고, 시장화가 되었다는 말은 도시화가 진행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북한도 도농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말과도 의미상통하구요.

기자:그러면 확실히 도시와 농촌간에 임금 차이가 발생할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정 연구위원:네. 맞습니다. 1년 협동농장에서 농사지어서 분배를 받는 것보다 오히려 도시에 나가 하루하루 일일 노동자가 되어 버는 임금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기자:제가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약 3년간 머물러 있었는데요. 그때 보니까, 중국 연변지방의 농민들이 베이징, 천진과 같은 대도시로 돈을 벌러 떠나서 길림성 농촌마을에 일할 사람이 부족해하던 것을 목격한 적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도 기반이 없는 농민들은 일해봐야 소득도 적고 하니까, 땅을 방치하고 도시에 나가 일공 노동자로 돈을 번다는 소리인데요. 그러면 이렇게 농촌에서 도시로 나간 농민들이 많나요?

정 연구위원:물론 북한이 통제사회이고 특히 농민들의 신분이 마치 신분제와 같이 고착되어 있어서 도시로 이주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다만, 그간 다양한 합법적 방식을 통해 가능한 농촌 호적을 갖지 않기 위한 노력이 있었구요. 예를 들어, 군대를 간 농민이 가능한 제대를 하지 않고 군대에 남아있는 방법이 있었지요. 혹은 탄광으로 가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합법적인 방법은 여러 한계가 있으니까 불법으로 이주를 한다는 말입니다.

기자:북한에서 농촌출신 자녀는 무조건 군대에서 제대하면 농촌으로 가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농민에서 노동자로 바뀌는 방법이 대학을 간다든지, 탄광으로 간다든지, 아니면 초기복무 하사관으로 군대에 더 남아 있는 방법들을 택했는데, 지금 말씀하신 방법은 불법으로 이주한 농민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한데요. 통계가 없잖아요?

정 연구위원:네 통계는 없는데요. 북한 체제상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하여 일하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북한 같은 경우 농번기 때 도시에 거주민이라면 누구든지 농촌에 동원되어 농사일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농촌에 동원되어 간 도시 사람들에 의하면, 최근에는 농촌에 가도 농사지을 농민들이 매우 줄었다고 합니다. 농촌 지원인력이 없으면 북한 농촌을 지탱할 수 있는 여력이 없을 정도로 걱정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지요. 따라서 도시 사람들은 농촌에 가면 농민들을 '지도농민'이라고 부릅니다. 몇 안되는 농민들이 농사를 함께 짓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온 지원자들에게 지시만 하고 있다고 해서요. 물론 농촌에 가도 농민이 많이 안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모두가 다 도시로 이주했다기보다는 농장에 출근하지 않는 농민들도 포함되어 있는 이야기지요. 최근에 농촌 동원체제가 강화된 이유도, 그리고 노동신문에서 매일같이 농촌 동원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만큼 농촌의 기반이 약해졌기 때문은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북한에 시장화가 활성화되면서 도시로 빠지는 농민들도 있지만, 농촌인력 관리면에서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네요. 원래 북한에는 불법 도시 거주자들을 색출하는 숙박등록과 같은 검열이 자주 있고, 또 인민반과 같은 감시 조직이 있어서 서로 통제하는 시스템이 있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농민공들이 도시에 발을 붙이고 사는지 궁금합니다.

정 연구위원:배급제가 정상적으로 작동이 될 때는 일단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서 이주가 불가능했지요. 그리고 집을 지금과 같이 빌려주는 사람들이 매우 적었습니다. 즉, 이주를 해도 숙식이 과거에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만 있으면 장마당에 나가서 식량도 사먹을 수 있고, 또한 '동거'라고 해서 집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는데요. 도시와 같은 경우, 다양한 서비스 업종들이 생겨났습니다. 도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농촌에서 온 사람들을 도시 사람들보다 더 값싸게 고용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이겠지요.

기자:네 요약하면 북한에도 시장화가 되면서 도시에 일할 수 있는 곳이 생겨나고, 또 농촌에는 기반이 빈약한 농민들이 도시로 진출하여 돈을 버는 이른바 북한판 농민공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거군요. 오늘은 여기서 줄이고 다음 시간에 또 알찬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찾아 뵙겠습니다. 정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 연구위원:감사합니다.

‘경제와 우리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참여자 정은이 연구위원, 기사작성 정영기자,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