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브로커와 남한행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8.05.03
tomen_cross_defector_b 한 탈북여성이 튜브를 이용해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
AFP PHOTO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주민의 탈북과 중국에서의 체류 그리고 이들의 남한행은 1990년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꾸준히 어어져 온 현상입니다. 최근 남한입국 탈북자의 수가 다소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 누계는 현재 3만 1천명을 넘어섰고 이미 남한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는 여전히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탈북 브로커의 역할에 대해 올해 초 가족을 인도한 주영희(가명)를 통해 알아봅니다.

주영희: 북한에서 딱 강만 하나 건너는 것이 1,500만원에서 2,000만원 이예요. 제일 안전하기는  거기서부터 브로커를 잡고 건너 오는 것이예요. 중국에서 떠나시는 분들은 브로커들에게 운명을 맞길 수밖에 없어요. 제가 가보니까.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주영희 씨는 중국에서 남한행을 결심한 아들과 언니를 제3국으로 넘기기 위해 직접 중국에 갔습니다. 현지 지리를 잘 모르는 자신보다는 전문으로 안내일을 하는 브로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멀리서 손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주영희: 브로커가 데려오는 것이 가장 안전해요. 브로커가 한 두번 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검문이 있고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 하는 것은 그분들이 더 잘알죠. 그런데 정말 빼도막도 못하는 검열이 왔을 때는 최종적으로 책임을 안진다 그래서 잡힌 사람이 많다. 이런 말을 여기서 들어서…

김 씨가 언급한 탈북 브로커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또 중국에서 제3국을 경유해 남한행을 할 때  안전지역까지 길잡이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북한에서 도강을 돕는 사람에게는 움직이기 전에 약속한 금액을 지불 합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제3국으로 넘겨줄 때는 남한에 가서 돈을 주겠다는 각서를  쓰거나 또는 이미 남한에 정착한 가족이 브로커 비용을 지불합니다.

주영희: 중국에서 떠날 때 한 사람 당 300만원을 달라했어요. 그리고 450만원 선도 있었고요.

기자: 방송을 듣는 사람들은 450만원 선이 더 안전한가 이럴 수 있겠는데요

주영희: 아니예요. 그것은 절대 아니예요. 450만이라고 안전한게 아니고요. 천만원 준다고 안전한게 아니예요. 떠나올 때 육로로 오던지 버스를 타던지 기차를 타던지 하는데 가장 안전한 것이 버스라고 해요. 중국에서 끌어 오는 브로커들이 단속 하는 구간은 알고 있나봐요. 그래서 위험한 구간은 내려서 택시를 타고 돌아서 빠지고 다른 분들은 다 이렇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주 씨는 가족 3명을 중국에서 제3국으로 넘기는 비용을 지불했지만 자신이 직접 중국에 가서 일정  구간을 가족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 이유는 브로커를 못 믿어서라기 보다는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자신이 끝까지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입니다.

주영희: 또 이런 말도 있었거든요. 중국에서 경찰에 잡혔을 때 아직은 돈이 좀 통해서 현장에서 돈을 찔러 주고 바로 다른 곳에 넘겨지기 현장에서 빼냈다 이런 말도 들었고요. 브로커에게 맡기는 게 맘에  안놓여서 일단 해보자 하고 한국에서 중국돈을 2만원 정도 카드에 넣어서 떠났어요. 제가 일단 언니랑 다들을 청도까지 나오라고 했어요.

주 씨가 남한에 간 것은 지난 2009년 입니다. 그리고 중국에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매년 수차례 남한에서 중국을 오갔지만 이번처럼 중국 남방 국경도시까지 여행을 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에 가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신분증이 없으면 중국에선 타 지역 이동이 힘들었습니다.

주영희: 저도 이번에 갈때까지만 해도 몰랐어요. 신분증이 없으면 표를 살 수가 없어요. 언니가 시골에서  나올 때는 아는 한족 아줌마 신분증 복사본을 가지고 시골 정류장에서는 표를 줬는데 청도에서 내가 만나서 난닝까지 가려니까 살 수가 없는거예요. 청도에서 난닝까지 2층 버스를 타고 이틀 정도 가야 하는데.

아들은 10년 언니와 조카는 9년을 중국에 살았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전에 돈을 주고 신분증을 만들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언니는 아는 사람의 신분증 복사본으로 버스표를 살 수가 없었습니다.

주영희: 제가 막 떠듬 거리면서 호텔에 두고 왔고 신분증만 가지고 왔다 이랬어요. 그랬더니 자기도 안되겠는지 다른 여자에게 가더니 다른 여자와 같이 왔어요. 내가 오후에 비행기에서 내렸다. 여권없이 한국 사람이 여기 올 수 있나? 내가 택시를 90원 주고 왔는데 어떻게 또 갔다 오냐고 차표를 주라고 내일 아침에 가야 한다고 했더니 해줬어요.

버스 정류소에서 주차원에게 생떼를 써서 운좋게 버스표를 구했습니다. 중국 남방도시인 국경지역에서 브로커를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다음날 바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어렵게 차표는 구했지만 가는 도중에 혹시라도 있을 불신검문에 대해서도 대비책도 세웠습니다.

주영희: 아예 한국사람처럼 차려 입혔어요. 청도에서 시장 나가서 사서 입혔고요. 나는 입고 간 옷이 보기만 해도 한국사람처럼 보이니까 괜찮은데 언니가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 아줌마 티가 나서 한국인 흉내를 내야 하는데 신분증은 있으니까 시장에 가서 다시 차려 입히고 하루 시간이 있으니까 미장원 가서 머리하고 그랬어요.

전문 브로커가 인솔을 하던 주 씨처럼 가족이 인도를 하던 중국 공안의 예고 없는 검문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도 주 씨가 이동하던 중에는 검문이 없었지만 그에대한 사전지식도 알고 움직이는 것은 필수입니다.

주영희: 이동 구간 중에 그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있다든가 사고가 있다든가 아니면 같이 있는 일행 중에 전화 통화를 한 것이 노출이 돼서 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브로커들이 사람들 데리고 떠날 때는 핸드폰을 수거해서 통화를 못하게 해요. 안에 내부에서 외부와 통화해서 추적 당하고 잡히기도 했기 때문에 통화를 못하게 해요. 제가 올때도 핸드폰을 다 뺐더라고요.

일반적으로 탈북자는 중국 국경만 넘으면 강제북송의 위험은 어느정도 벗어났다고 주 씨는 말합니다.

대부분 북송이 중국 국경지역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국경선을 넘기 전에는 안심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번에 가족을 안전지역으로 넘기기 위해 탈북 비용과 별도로 자신은 한국 돈으로 450만원 중국돈으로 환산하면 3만원 정도를 만들어서 중국에 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남한행을 결심하고 브로커를 따라 나섰던 2009년의 기억을 이렇게 말합니다.

주영희: 제가 올 때도 보면 브로커 마다 달라요. 막 죽도록 뛰라하고 엎드려라 하는 조가 있고요. 저는 밤중에 곤명에서 버스로 이동해서 새벽에 국경까지 갔나봐요. 그다음에는 운동화 끈을 조여라 하면서 1시간 눈을 붙여라 하는데 못잤어요. 밤중에 출발하자 하는데 이제부터는 말도 하지 말고 조용히 걷고 하라 했어요. 경찰에 걸렸는지는 모르겠는데 거기서 기다리니까 트럭이 오는데 거기에 모두 타서 계속 달렸어요. 그리고 강기슭에 닿았는데 강 건너가 태국인데 뛰어서 경찰에게 가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탈북자가 남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주영희: 속전속결해서 들어갔고 태국에 가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여자 감옥에서 12일간 감옥생활을 하고 국제재판을 받는 다고 하더라고요. 태국에 불법으로 들어온 외국인들을 잡아 넣는 곳인데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데 한방에 다 있어요.

현재 주 씨의 가족은 남한의 탈북자 사회적응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새로운 인생설계를 하면서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탈북자의 남한행과 관련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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