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탈북자란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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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이 만든 도시락 공장 '행복나눔식당'에서 탈북자 등 직원들이 도시락에 반찬을 담고 있다.
탈북자들이 만든 도시락 공장 '행복나눔식당'에서 탈북자 등 직원들이 도시락에 반찬을 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사는 탈북자의 정착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탈북자의 고용과 월평균 임금이 지난해와 비교해서 조금 늘어났습니다. 2018년 탈북자 정착실태 조사는 15세 이상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것인데요. 조사에 응한 탈북자 10명 중 7명은 남한생활에 만족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오늘은 남북하나재단 소통기자단 정진화 취재기자를 연결해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란 이란 주제로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기자: 탈북자분들 중 성공했다고 말하는 분도 있잖습니까?

정진화: 네, 분명히 있죠. 저희가 북한에서 들을 때는 한국에는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탈북민들에 대해 얘기할 때 북한말로 하자면 천대 받는데 괄시를 받고 상당히 못산다고 강연회 때 얘기를 하는데 한국에서 잘사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일단 돈을 벌어서 그 비싸다는 집을 구입한 분도 많고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처럼 똑같이 성공해서 자기 업체를 가지고 있고 자기가 사장이 돼서 밑에 직원을 둔 사람 있잖아요. 그냥 똑같아요. 북한에서 자기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는 자유롭게 자기 능력을 발휘해서 박사, 북한에서는 준박사라고 하는 석사가 된 사람도 많고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아요. 자기가 중도에 포기한 사람, 하다보니까 자기 길이 아니구나 해서 돌아선 사람은 있지만 일단 북한에서 못한 공부의 한을 푼 사람은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 나와서 공무원이 된 사람도 있고요. 특히 경기도가 김문수 지사가 있을 때 제일 먼저 탈북자를 채용했는데 서울도 많고 얼마전에는 전라도 광진에서도 탈북민 특별채용을 한다고 들었어요.

기자: 정진화 씨가 보는 탈북자의 성공 기준은 뭔가요?

정진화: 저는 먼저 한국에 와서 주민증을 받으니까 국민이라고 말하잖아요. 나라에 받칠 세금을 다 내고 번듯하게 자기 집을 산다면 성공이라고 봤는데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성공을 이룬 분들이 많아요.

기자: 그건 무슨 말입니까?

정진화: 처음 국민임대주택을 주는데 돈을 벌어 자기 집을 장만 한단 말입니다. 본인이 대학을 졸업하거나 자녀를 잘 공부 시켜서 대학졸업을 시키거나 그러면 본인의 입장에서나 자식들의 위치에서나 성공한 것으로 보거든요. 제일 중요한 것은 특히 자기 업체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대부분은 한국에 처음 와서는 잘모르니까, 가진 것이 없어서 또 정보가 없어서 일단 남의 밑에 들어가서 직원으로 일을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보면 많은 직원을 거느린 사장이죠. 그런 분이 굉장히 많아요. 자기 업체를 가진 사람들.

기자: 탈북자가 남쪽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업체를 운영한다고 하면 어떤 직종인가요?

정진화: 취재를 했던 분들 중에는 도시락업체를 운영하는 분이 있습니다. 요즘은 우리가 소풍이나 세미나 등 현장에서 모든 것이 이뤄질 때는 도시락을 시켜서 먹는 분이 많거든요. 도시락은 일반 도시락도 있고 가격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고급 도시락은 진짜 왠만한 고급 레스토랑 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현지에서 공급하는 것인데 그런 도시락업체를 운영하시는 분도 있고 렌트카 업체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기자: 렌트카라면 차량 대여업소를 말하는 것이죠

정진화: 네, 그리고 차량 정비업체 자기가 자격증을 따서 차량을 정비하는 업체를 직접 운영하는 분도  있고 그리고 이름있는 가구인데 지사를 맡아 관리하시는 분도 봤어요. 이런 분들이 다 사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라도 광주에 있는 분은 한국남성과 결혼 했는데 10년 노력해서 해산물인 전복을 양식하는데 바다를 사서 거기에 양식을 합니다. 전복이 먹을 수 있는 미역도 키우고 바지락도 키우면서 1년 매출이 상당합니다. 생산이 많을 때는 그 주변에서 일당일을 하는 분이 20명 정도 되고 보통 일이 없을 때 지금처럼 포자를 늘리고 미역을 채취하고 하는 기본일을 할때도 거기에 상주하는 외국인이 두 분정도 있더라고요.

기자: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도 많잖습니까?

정진화: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도 많죠. 연구소라든가…

기자: 특히 한의사분들은 꽤 되는 것으로 아는데요.

정진화: 북한에서 의사로 일하다 남한에서는 처음 자격을 인정해주지 않았잖아요. 최초 인정을 받았던 김지은 원장이라고 그분 뿐만 아니라 일반내과 종합의원을 차린 분도 있어요. 중량구에도 그런 분이 있는데 그 병원도 차린지 얼마 되진 않았는데 얼마전에 큰 곳으로 이사를 갔고 고정환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전문직이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도 많은데 왜 언론에는 탈북자분들이 나라에서 주는 최저생계비만 받으면서 못살고 어렵다고 알려져 있을까요?

정진화: 그것이 물론 탈북자도 65세 넘고 몸이 아프면 기초수급자로 있는 분도 있지만 그와 비교되게 공부도 많이 하고 한국에서 취득한 자격증으로 자기 사업으로 성공하고 전문직에서 일하고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기술을 가지고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분도 많아요. 그런데 언론에서 보면 안좋은 부분을 보도하는데 이것을 소수자 배려라고 생각 하지만 지나치게 못살고 어렵고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탈북자에게 도움이 안되는 거예요. 탈북자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잘되는 쪽으로 해야해요. 그래서 우리가 남북하나재단에서 발행하는 동포 사랑에는 탈북자의 성공담을 많이 실어요. 한국에 정착한 3만3천명 중에는 성공해서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자: 취재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 소개해 주시죠.

정진화: 이번에 취재한 친구인데 그 친구는 어릴 때 북한에서 부모를 잃고 아빠랑 언니 3명같이 탈북을 했다가 한 번 잡혀 들어가서 아빠는 노동단련대에서 사망하고 이 친구는 미성년자라 잡혀 안들어가고 다시 탈북해서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때 15살이었다는 겁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도 있었는데 분명 자기가 갈 길은 따로 있었는데 자기가 미처 그것을 못봤다는 겁니다.  네일아트라고 손톱 장식하는 직업이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적성에 맞더랍니다. 이번에 가게를 차렸는데 손님도 많고 1년도 안됐는데 이 직업이 자기한테 너무 어울린다는 겁니다. 평생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너무 좋다는 말을 들으면서 젊은 친구인데 빨리 자기 길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부럽더라고요.

기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진화: 네, 고맙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에 대해 남북하나재단 소통기자단 정진화 취재 기자를 연결해 얘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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