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정치범수용소 경비병의 고백

서울-이진서 leej@rfa.org
20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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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어스에 잡힌 북한 회령의 22호 정치범 수용소.
구글 어스에 잡힌 북한 회령의 22호 정치범 수용소.
사진-구글 어스 캡쳐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 당국이 비밀스럽게 군부대인 양 사회와 완전 격리해 운영하는 곳이 바로 정치범 수용소 즉 관리소입니다. 이곳은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현재 남한에서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위해 애쓰는 NK 워치 안명철 대표와 관리소 경비병에 대해 알아봅니다.

안명철: 1987년 5월에 들어가서 3개월 신병교육을 받고 군인선서를 해야 하는데 부대장이 없데요. 부대장이 김정일이래요.

현재는 해체된 22호 회령 정치범 수용소 경비병과 운전병으로 근무하다 1994년 탈북한 안명철 씨입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상은 15호 요덕 수용소 혁명화 구역에서 해제된  체험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수용소 안에서도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다는 완전통제구역에 대해서는 안명철 씨가 탈북하면서 그 실체가 더욱 자세하게 드러난 겁니다.

안 대표는 8년 군복무 동안 13호 온성 수용소 그리고 당사자만 수감되는 평양 26호, 함경북도 경성의 11호 마지막 근무지였던 22호 회령까지 4곳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근무했습니다.

안명철: 그 시스템은 다 같았고요. 제가 갔던 곳은 완전통제구역이에요. 가족 수용소로 한 번 가면 다시는 못 나오는 데요. 그 안에 보위부, 경비대, 탄광, 정치범 가족마을 다 있는데  특이한 것이 26호 수용소는 교도소 형태의 수용소였어요. 교화소죠. 관리소와 교화소가 다른 것이 관리소는 농사도 짓고 하는 데 교화소는 지하감옥 시설로 정치범 교화소죠 그것이 지금 25호 청진에 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

안 대표는 수용소 안에서도 비교적 활동의 제약을 받지 않는 운전수 보직을 받습니다.

안명철: 3년 정도는 외곽에서 철책근무를 하다가 수용소에서 운전수 따로 선발 하는데 혼자서 정치범들이 생산하는 석탄, 옥수수를 실어다가 각 초소들에 나눠주고 수용소 안에서 임무만 받으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출장 명령을 받으면 사회로 나가고 해서 선호도가 높은 곳인데 뽑는 기준이 사상, 총 잘 쏴야 하고 태권도 잘해야 하고 하는데 제가 됐어요.

북한에서도 관리소 경비대는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집안 배경에 의해 선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명철: 왜 그런가 하면 국가보위부 수용소 경비대가 국가에서 가장 엘리트들만 뽑아 놓은 거예요. 거기 온 사람들은 전부 보위원 자식이나 당 국장 아들 등이에요. 입대하면서 느낀 것이 내가 제일 신분이 낮구하 하는 것을 알았어요. 홍원에서는 3번째로 높았는데요.

그래서 일단 관리소 경비대가 되면 군복무 기간 받는 대우는 최상급입니다.

안명철: 이런 얘기 하기는 좀 뭣한데 제가 여기서 먹기 힘든 고래 고기라든지 각종 희귀한 음식은 거기서 먹어봤어요. 저희는 돼지고기는 안 먹었어요. 먹기 싫어서요. 저희는 일주일에 한 개 소대 돼지 한마디씩 잡는 거예요. 저도 처음 입대해서는 사회에서 잘 먹었다 해도 돼지고기를 너무 먹으니까 설사를 했어요. 못 먹던 아이들이 고기를 갑자기 먹으니까요. 한 3년까지는 경비대 아이들이 고기를 잘 먹어요 그런데 3년 지나면 고기를 안 먹어요. 고참들은 돼지고기가 나오면 맹물에 밥을 말아먹을 정도예요. 그 정도로 급식이 잘 나왔고 경비병을 밖에서는 현대판 지주라고 했어요. 우리 지휘관들이 하는 말이 장군님의 전사들이니까 그렇게 해주는데 비행사보다 더 잘 먹는다고 했어요. 북한에서 제일 대우를 해주는 사람이 비행사라고 하는데 우리가 더 잘 먹는다고 했으니까요.

병사가 제일 많이 받게 되는 훈련은 사격이나 유격 등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관리소 경비대는 다릅니다.

안명철: 사상 교육이 제일 많아요. 일반 인민군이나 경비대가 일주일에 8시간을 받는 다고 하면 저희는 4시간이 더 많아요. 우리는 항상 정치범을 적으로 봤고 폭동이 일어나면 제압을 해야 하고 유사시 전쟁이 나면 이들을 증거인멸을 위해 전부 사살해야 하는 것이 경비대의 역할이거든요. 그래서 사상이 변질되면 안 된다고 해서 사상교육을 많이 받았고 태권도 총 쏘는 것을 좀 더 집중 교육했고 수색, 추적 등 도망갔을 때 잡아들이는 것을 많이 훈련 받았죠.

철저한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하는 관리소이기에 잘못이 있을 때 그에 대한 문책 역시 인생의 변화를 줄만큼 큽니다.

안명철: 제일 큰 것이 정치범 여자하고 부화한거에요. 경비대가 정치범 여자를 강간했을 때 제일 커요. 두 번째가 보위원들이 했을 때는 부화 사건도 있지만 물건, 비밀을 누설했을 때예요. 처벌이 제일 크죠.

기자: 처벌은 뭐죠?

안명철: 옷 벗고 나가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영원히 매장이 됩니다. 요시찰 대상이 되고  뭘 잘못했을 땐 국가의 벌을 받는 다는 각서를 쓰고 나가요. 그리고 경비대나 보위원이 잘못을 저지르면 일반 교도소를 못 가고 정치범 수용소를 가야해요. 그렇게 간 친구도 있어요. 15호 혁명화로 갔는데 근무 나가서 총으로 장난치다가 총기오발로 경비대 둘을 죽였거든요. 그래서 수용소 3년 갔다가 나갔는데 나가서는 그 친구는 탄광 노동자밖에는 할 것이 없어요. 그만큼 우대를 해주지만 죄를 범하면 처벌도 강력해요.

안명철 대표는 탈북해 남한에서 1996년 ‘그들이 울고 있다’는 제목의 북한 정치범수용소 내의 실상을 알리는 책을 출판합니다. 안 대표는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이 아니고 지켜본 입장에서 북한체제에서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당하고 북한 당국이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라고 했나 하는 관점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안명철: 제가 이렇게 나서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뭐냐면 저는 거기서 가해자거든요. 그리고 통일이 되도 나와 나의 동료들은 처벌을 받아야 하는 1호 대상이에요. 제가 한국에 왔을 때 가장 만나기 무서웠던 사람이 강철환, 안혁이었어요. 같은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가 경비대 출신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라면 죄수와 선생님, 하늘과 땅차이 이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가 처음 만나서 웃으면서 악수를 하면서 그러는 거예요. 저는 한 대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너도 피해자다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시키니까 어쩔 수 없지 않았냐’ 그 말을 들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책도 쓰게 됐어요. 지금 하는 것도 내가 여기 와서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도 안하고 있으면 어떻게 알겠는가 하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안명철 대표는 현재 북한 당국의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대처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안명철: 현황은 김정은이 들어서고 나서 유엔에서도 수용소 문제를 떠드니까 일단 탈북자을 막고 유엔에서 나와 조사할 것을 대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15호 혁명화구역을 작년 12월에 없애버리고 22호 관리소도 없애고요. 거기에 있던 사람은 풀어주는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 옮겨 놓고요. 과거와는 다르게 좀 완화되지 않을까? 대신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계속 유엔에 수용소 갇혀있는 사람들 명단을 넣고 있거든요. 언제가 북한은 답을 해야 하는데 죽었다고 하면 왜 죽었는지 해명을 해야 할 거 아녜요.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북한 정치범수용소 경비병 출신 안명철 씨의 증언을 전해드렸습니다. 진행에는 RFA 이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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