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나라 – 러시아 이야기 <1부>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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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1월  제설작업
모스크바의 1월 제설작업
사진-차상욱 씨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요즘 한반도에 엄습한 폭염 때문에 힘든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시원한 이야기를 북한 주민들에게 들려드리면 어떨까 해서 ‘동토의 나라’ 혹은 ‘눈과 얼음의 나라’ 하면 떠오르는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를 골라봤습니다. 오늘은 아이에프 건축사 사무소 대표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7년간 건축설계와 시공관련 사업을 한 차상욱 건축사를 통해 러시아의 이모저모 알아봅니다.

기자: 차상욱 대표님 안녕하세요!

차상욱 건축사: 네 기자님 안녕하세요!

기자: 요즘 계속 되는 폭염으로 정상생활이 어렵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건강은 어떠십니까?

차상욱 건축사: 몸에는 별 탈이 없습니다만 워낙 더우니까 무기력해지고 매사에 집중이 되질 않네요. ‘빨리 가을이 왔으면’ 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기자: 러시아에서 오래 계셨는데 모스크바의 8월 날씨는 어떤가요?

차상욱 건축사: 모스크바의 여름은 우리처럼 길지 않습니다. 수년간의 현지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7월 둘째 주부터 7월 마지막 주까지 약 3주 정도가 태양의 뜨거운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8월이 시작되면 어느덧 행인들의 옷차림에서 반소매 보다 긴소매 옷이 많아지는 걸 보게 됩니다. 8월 말이 되면 아예 가벼운 코트를 입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공기가 차가워집니다.

기자: 여름은 남한의 직장인들에게 대표적인 휴가철인데, 러시아에서도 그런지요?

차상욱 건축사: 직장인의 휴가철은 나라마다 자국의 기후여건과 산업환경에 따라 달리 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한의 직장인들 대부분이 덥고 습한 여름철에 1주일 남짓의 시간을 정해 짧은 휴가를 보내는 반면 러시아의 경우 과거의 공산주의적 전통과 엄연한 기후적 특성 때문에 직장인의 휴가는 그 개념에서부터 우리와 다소 차이가 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먼저 휴가 기간이 우리보다 길게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보편적으로 주당 31시간 정도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연월차를 포함해서 연 31일의 휴가가 주어지는데, 그걸 모아서 휴가에 나서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무려 한 달간 직장에서 자리를 비우는 것이 상사나 동료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일처럼 느껴졌지만 드넓은 대륙 곳곳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온 근로자들이 고향 한 번 다녀오는데, 황금같은 휴가를 모조리 오고가는 시간으로 날려버린다면 대단히 서글픈 일이겠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저 또한 러시아의 넉넉한 휴가 기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휴가철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러시아는 평일 근로시간도 짧은데다가 일찌감치 대체 휴일제를 시행해 온 나라여서 넉넉한 공휴일을 활용하면 직장인들도 여름에 얼마든지 여가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짧은 여름을 즐기기 위해 굳이 장기간의 휴가를 쓸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유난히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들이라서 그 흐름에 동참하는 경우라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름을 주요 휴가철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연말연시를 전후로 하는 겨울 혹한기를 휴가 기간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면 러시아 직장인의 휴가철은 우리와 달리 한여름과 한겨울로 나눠지는 특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 요즘처럼 더울 때는 시원한 것을 상상하면 좀 기분이 나아지는데 러시아의 추위는 어느 정도 인가요?

택시를 기다리는 차상욱 건축사
택시를 기다리는 차상욱 건축사 사진-차상욱 씨 제공

차상욱 건축사: 영토의 일부가 북극권에도 걸쳐있는 나라이니 러시아의 최저 기온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 가운데 가장 춥다고 알려진 곳의 기온을 소개할까 하는데요.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에 위치한 ‘오임야콘(Оймякон)’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기록된 한겨울 최저 기온은 무려 영하 71.2도였다고 합니다. 1월 평균 기온도 영하 50도를 넘나든다 하니 저도 그 극한의 추위가 어떤 느낌일지 상상 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주로 생활했던 모스크바 지역의 겨울 기온은 그에 비하면 온화한 편입니다. 1월 평균기온이 영하 15도 내외로 나타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동토의 이미지에서 모스크바가 예외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짧은 여름이 지나면 곧바로 시작되는 겨울이 모스크바에도 오랫동안 혹독한 겨울풍경을 펼쳐 놓습니다.

기자: 겨울하면 눈이 연상되는데 어느 정도나 옵니까?

차상욱 건축사: 어느 날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문뜩 누군가가 솜이불을 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 날이 자주 있고, 내린 눈이 잘 녹지도 않으니 쌓이기 시작하면 바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깁니다. 그래서인지 당국은 도시의 제설작업에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주요 간선도로에서는 여러대의 제설차들이 대각선의 대형을 이루어 도로위에 쌓인 눈을 도로변으로 밀러내며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차량의 꽁무니로는 어김없이 염화칼슘도 뿌려지죠.

간선도로 뿐만 아니라 이면도로와 보행로까지 소형 제설차로 알뜰하게 청소하는 당국의 노력 때문에 도시 내에서 걷거나 차를 몰고 다니는데 불편을 겪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게 도로에서 치워진 눈은 대부분 봄이 올 때까지 넓직한 조경녹지대에 쌓여지는데요. 군데군데 쌓여있는 눈동산들은 봄이 시작되는 시점에 녹아 없어질 때까지 모스크바 겨울의 도시 풍경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쌓여가는 눈 동산이 때로 주차장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다보니 장기간 사용하지 않고 세워둔 차량까지 파묻어 버려서 급히 차가 필요해서 차를 꺼내려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깁니다.

한편 도시지역을 벗어나면 간선도로가 아닌 지역은 순백의 설원인 채로 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런 모습이 기나긴 겨울에 보게 되는 러시아의 본모습일 수 있고 과거로부터 러시아 사람들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체득하여 지니게 된 국민성과 거기에서 비롯된 수많은 인류사적 유산들의 배경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예를들어 톨스토이를 위시한 러시아 대 문호들의 작품도 이러한 자연환경의 소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태양도 일찍 사라지는 기나긴 겨울철에 눈밭으로 변한 집 밖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집안에 틀어박혀 재능있는 자들의 머릿속에서 꿈틀거리던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원고로 쌓아놓기에 러시아의 겨울은 안성맞춤인 것이지요.

음악분야의 차이콥스키나 화학분야의 멘델레예프 같은 이들이 러시아에서 이루어 낸 업적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기나긴 겨울은 그저 ‘보드카’를 즐기며 보드카 시장을 발달시키는 계절로 활용되어 온 측면도 있습니다.

기자: 방금 언급을 하셨는데요. 러시아 사람들의 보드카 사랑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잖습니까? 어느 정도인가요?

차상욱 건축사: ‘보드카’라는 이름의 뜻을 알고 나면 러시아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보드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드카(водка)는 ‘물’을 의미하는 ‘봐다’(вода)에서 나온 이름이라서 물처럼 마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러시아 상점에 들어가 보면 어디든 종류와 수량도 엄청나게 많은 걸 보고 놀라게 됩니다. 고가의 보드카라 해도 일반적인 양주에 비해 비싸지 않은데요. 어떤 것은 몇 달러짜리도 있으니 쉽게 손이 가는 술이 되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왜 보드카를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는가에 대한 답은 춥다는 기후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는데 거기에 한 가지 더 첨언 하자면 보드카 자체가 상당히 괜찮은 술이라는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보드카는 물처럼 무색, 무미, 무취가 특징입니다. 다시 말하면 40도짜리 알콜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주류처럼 입안에 넣고 그 맛을 음미하기에는 적당한 술이 아닙니다. 따라서 빨리 목젖에 털어 넣고 푸짐한 고기와 다양한 안주를 먹어가며 우정과 친목을 다지는 술로 애용되어 온 것입니다.

게다가 화학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 과학자 ‘멘델레예프’의 연구에 따르면 알콜이 40도 일때 화학적 안정성이 가장 좋아서 인체에 미치는 해도 가장 적다고 하니 40도에 맞춰진 보드카는 숙취가 적은 술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합니다.

기자: 잘 만든 좋은 술이라고 하지만 많이 마시면 그로인한 사회적 문제도 많을 듯 한데요?

차상욱 건축사: 네, 보드카는 분명히 독한 술입니다. 그러한 독주를 다양한 이유를 들어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게 된다면 제아무리 술에 강한 사람이라도 건강하게 장수를 누리기는 어렵겠지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러시아 남성의 3분의 1은 알콜중독을 앓고 있다 하고 영국 의학전문지는 2014년에 러시아 남성의 4분의 1은 과도한 음주 때문에 55세 이전에 사망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빗대어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즉, ‘러시아에는 쓸만한 것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석유, 핵무기, 여자다. 반면에 쓸모없는 것 3가지는 석유, 핵무기, 남자다’ 라는 것입니다. 러시아를 알면 바로 웃음이 터져 나오게 되는 이 우스갯소리를 조금 설명해드리자면 세계 석유시장에서 저질유로 분류되는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풍자와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 놓고도 쓸 일이 없는 자국의 핵무기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쓸모없는 것에 남자가 포함된 것은 아무래도 술에 쩔어 사는 러시아 남성들의 현실을 빗대어 한 말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푸틴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러시아 내의 술 소비 자체를 줄여보려고 알콜제품에 부과하는 세금을 인상하고 주류 광고를 억제하는가 하면, 일정시간 이후에 상점에서 술을 팔지 못하게 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보드카 사랑을 막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쌓인 눈 속에 묻어 놓았던 보드카를 가져와 껄쭉하게 흘러내리는 보드카를 잔에 따르며 친구들과 즐겼던 시간들이 그리운데... 그 누구라도 러시아 사람들로부터 보드카를 떼어내는 것은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눈과 얼음의 나라’ 하면 떠오르는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를 ㈜ 아이 에프 건축사 사무소 차상욱 대표를 통해 들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러시아인의 의식주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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