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얼음의 나라 – 러시아 이야기 <2부>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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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스코예 교외지역 주택가 풍경.
라멘스코예 교외지역 주택가 풍경.
사진-차상욱 씨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추운 나라 러시아.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꽁꽁 언 몸을 녹이기 위해 40도의 독한 보드카를 즐겨 마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시원한 ‘눈과 얼음의 나라’ 러시아의 의.식.주에 대해 아이에프 건축사사무소 대표로 러시아 모스크바 현지에서 7년간 건축설계와 시공관련 사업을 한 차상욱 건축사를 통해 알아봅니다.

기자: 차상욱 대표님 안녕하세요!

차상욱 건축사: 네, 기자님 안녕하세요!

기자: 모스크바에 눈 오는 모습을 보면서 문뜩 누군가 솜이불을 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나라다 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여름은 어떤 모습인가요?

차상욱 건축사: 모스크바의 여름은 짧은 대신 그만큼 환상적인 계절입니다. 사람들은 공원이나 강가를 가리지 않고 일광욕을 즐기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민망할 정도로 맨살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식물들은 짧은 여름을 앞두고 순식간에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나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지마다 열매를 달아맵니다. 여름날은 짧아도 그 기간동안 백야에 버금가는 일광시간이 있으니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데 필요한 절대시간은 충분히 보장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스크바의 여름은 햇살이 따갑지만 공기가 습하지 않아 상쾌한데요, 거기에 해가 떠있는 시간이 워낙 길기 때문에 야외활동이 부쩍 많아지는 것도 특징입니다. 푸른 잎과 수 많은 꽃들에 둘러싸여 산책을 하거나 다양한 야외공연을 즐기는가 하면 ‘다차(дача)’ 라고 부르는 별장에 지인들과 모여 양념에 절인 고기를 장작불에 구워먹으며 보내는 일상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자: 사람 사는데 없어서는 안 될 세가지 기본 요소가 먹는 것, 입는 것, 주택인데요. 한 번 순서대로 얘기를 해보죠. 러시아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람들이 뜨거운 음식을 즐겨먹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차상욱 건축사: 제가 미식체험을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러시아의 다양한 먹거리를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흔하고 대표적인 것 몇 가지는 소개해드릴 수 있습니다. ‘보르쉬(борщ)’와 ‘샤슬릭(шашлык)’이 그것입니다. 이 두 음식의 위상은 우리로 치면 김치찌개와 불고기에 해당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먼저 ‘보르쉬’는 뜨겁다기 보다 따뜻한 스프를 말합니다. 고기와 야채를 넣고 오래 끓여 만든 이 스프의 특징은 ‘비트’로 알려진 빨간 무를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국물이 빨간색을 띤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스프에서 사탕 맛이 나는 게 아닐까 해서 조심스럽게 맛을 보게 되는데 입안에 퍼지는 맛은 감칠맛 나는 고기국과 다르지 않아 쉽게 좋아하게 되는 스프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식탁에 이 스프가 놓여지면  여기에 크림이나 마요네즈를 한술 넣어 먹는 걸 좋아합니다. 아마 추위에 적응하는 몸을 만들기 위해 지방분을 더하는 전통이 입맛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보르쉬는 따뜻한 국물요리란 말인데요. 보르쉬란 음식을 먹을 때 함께 먹는 것은 어떤 건가요?

차상욱 건축사: 보르쉬를 먹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흑빵(쵸르니 흘렙 / чёрный хлеб)’으로 알려진 호밀빵입니다. 이 빵은 나무에 못을 박을 때도 쓴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딱딱한데요.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시절부터 잘 상하지 않아 보관하기 좋은 이 빵을 즐겨 먹어 온 탓에 러시아 사람이라면 무슨무슨 베이커리에서 만든 부드러운 빵보다 이 빵을 더 좋아합니다.

다음으로 ‘샤슬릭’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음식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러시아 음식이기 보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음식입니다. 러시아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음식문화도 주변국에서 유래된 것이 많지만 다양한 고기를 양념에 절여두었다가 쇠꼬챙이에 꼽아 장작불에 구워먹는 샤슬릭은 러시아 사람들의 취향에 유난히 잘 맞았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집을 가더라도 샤슬릭에 필요한 양념과 도구들을 잘 갖추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용하는 고기는 양고기와 소고기를 주로 하지만 무슬림이 아닌 경우 돼지고기도 꼬치에 끼워 구워먹습니다. 러시아에 가면 어느 레스토랑에서나 이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샤슬릭은 야외에서 보드카와 함께 장작불에 구워먹는 맛이 일품인 음식입니다.

기자: 러시아 복장 하면 부드러운 짐승털로 만든 모자와 두꺼운 외투인데, 이런 모습이 전통복장이라고 보면 될까요?

차상욱 건축사: 러시아인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그 털모자를 현지에서는 ‘샤프카(ша́пка)’라고 부릅니다. 샤프카와 더불어 모피와 가죽으로 만든 겨울외투도 러시아인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만드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해왔지요. 또한 옷차림의 부피도 우리와 비교하면 상당히 풍성하게 보이는데요. 거기에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검정색 계통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근에 젊은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의상에서는 다양한 색채가 선호되는 분위기를 볼 수 있지만 의복문화에 있어서 대다수 러시아 사람들은 어두웠던 구 소련시절의 전통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두꺼운 겨울옷과 관련해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요. ‘가르제롭(гардеро́б)’ 이라고 부르는 ‘옷보관소’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대형 공연장에도 일종의 필수공간으로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일반인들이 익숙하게 보는 공간은 아닙니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대형극장 뿐만이 아니라 작은 미술관, 작은 식당과 카페 등에도 외투를 맡기는 시설이 따로 있습니다. 이곳에 옷을 맡기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의자 등받이에 외투를 걸쳐두거나 품에 안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가르제롭’으로 안내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러시아 정부의 저렴한 난방정책이 만든 문화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부기온이 아무리 낮아도 건물의 내부기온은 어디든 항상 따뜻하게 유지되기 때문이죠. 그러니 옷을 여러 겹 껴입기보다 두꺼운 외투 하나만 입기를 즐겨하게 되는데 실내에서 두꺼운 외투를 끌어안고 있는 것 보다 어딘가에 맡기는 게 편리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런 시설과 문화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기자: 추운 지방에 있는 집 구조는 어떤가요? 냉난방에 신경을 쓰는 구조로 북한이나 남한의 주택형태와 다를 듯 한데요?

차상욱 건축사: 주택의 구조는 지역의 기후적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러시아의 주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항이 난방입니다. 난방을 고려하게 되면 일차적으로 주택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이 묵직하고 두꺼워지게 됩니다.

러시아의 주택은 크게 아파트와 단독주택으로 나눠서 말씀드릴 수 있는데  먼저 아파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러시아의 도시를 구성하는 아파트는 제정 러시아 시절에 지어진 것에서부터 후르시초프 시절에 대량으로 공급된 것을 비롯해서 최근 부동산 붐을 타고 지어진 고층 주상복합형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거기에서 발견되는 차이점은 모두 난방과 관련된 것으로 모아집니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경우 거실에 배치하는 창을 높고 넓은 것으로 설치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오랫동안 거실공간이 따로 없는 평면구조가 일반화되어 있었던 탓도 있지만 거실이 따로 있는 구조에서도 거실 창을 넓게 두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지구 어디서든 창을 넓게 두는 경우 빛을 많이 받아들이는데 유리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러시아의 태양은 여름에 지겹도록 하늘에 떠있는 반면 겨울에는 짧게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빛의 장점을 취하기보다 겨울철 열손실을 막는 것에 우선하였기 때문인 듯합니다.

따라서 남향에 대한 선호도 또한 우리에 비하면 크지 않습니다. 한여름의 태양은 동쪽에서 뜨지 않고 거의 북쪽에 가까운 북동쪽에서 떠서 저녁 늦은 시간에 북서쪽으로 지기 때문에 바라보는 향이 어디든 태양 빛을 받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스크바보다 조금 더 북쪽에 위치한 도시에서는 종일 떠있는 태양빛을 가려야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방마다 검은 암막을 두는 것이 특징일 정도입니다.

기자: 창문을 작게 해서 열손실을 최대한 막는 구조란 것이 귀에 쏙들어오는데요. 좀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벽도 역시 단열에 초점을 두고 건설하겠죠?

차상욱 건축사: 아파트의 벽체는 구 소련시절에 공급된 것들도 단열층을 두고 있고 나무로 만든 창문도 견고하게 짜여진 이중창 구조인 것을 보고 놀라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잘 갖춰진 단열구조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제공되는 난방방식은 가히 산유국으로서의 러시아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공산주의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열병합 발전소에 인접한 일부 아파트 단지만이 저렴한 온수난방의 혜택을 볼 수 있는데 비해 러시아에서는 거의 모든 아파트들이 수많은 열병합 발전소에서 공급되는 온수로 난방과 생활온수의 혜택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이점 하나는 공산주의를 국가운영방식으로 체택한 나라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장점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기자: 단독주택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차상욱 건축사: 러시아의 단독주택은 그 유형의 다양성만큼이나 단열과 난방방식이 다양하게 사용되므로 특징을 몇 가지로 한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형태적 측면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아무래도 쌓인 눈으로부터 집을 보호하기 위해 경사가 급한 지붕형태를 선호하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많은 눈을 오랫동안 이고 있게 되면 건축물에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라서 적설하중이라는 것은 우리에게도 지역에 따라 설계에 고려하는 문제입니다. 그것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지붕구조를 강화하는데 투자하기보다 지붕경사를 급하게 하고 그 내부를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그 지역에 맞는 합리적 건축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러시아의 의식주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에프 건축사사무소 차상욱 대표를 통해 들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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