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탈북벌목공의 난민인정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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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 벌목공 1호 전성철
유엔난민 벌목공 1호 전성철
사진-송광호 기자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1990년대 초 러시아에서 벌목장을 이탈한 북한 벌목공들이 유엔 난민인정을 받아 한국으로 갔습니다. 탈북자가 유엔으로부터 난민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인데요. 당시 도움을 줬던 송광호 기자를 통해 20여 년 전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이전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에 있는 유엔 난민국에 있는 담당자도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은데 어떤 질문을 집중적으로 하던가요?

송광호: 네, 그때 집중적으로 물어 본 것이 처음부터 이 사람이 진짜 북한에서 나온 사람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태어난 때부터 모스크바 유엔 난민국 사무실에 오기까지의 모든 것을 상세히 얘기해라. 그때 만난 난민 담당자가 백인 여자 분으로 이사벨 씨였는데 불어권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불어를 못하니까 영어로 인터뷰가 진행됐습니다.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그때는 새로 유엔 사무실이 이사를 와서인지 텅 빈 사무실에 아무것도 없고 책상 하나에 노트북을 가지고 제가 얘기한 내용을 받아 타이핑 하고 또 미심적은 것이 있으면 다시 물어보고 해서 하루 종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장소에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해서 다음날 가라는 곳으로 갔더니 흑인 남성이었는데 또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반나절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기자: 모스크바에서 첫 접견이 있고 나서 다음 날 장소는 틀렸다는 말씀이군요?

송광호: 네, 탈북자는 묵는 숙소가 있었습니다. 러시아에 있는 교포,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고려인 회장인 허진 씨가 마련해준 아파트에 있더라고요.

기자: 난민인정까지 얼마나 걸렸습니까?

송광호: 나중에 제가 알게 됐는데 4월에 신청을 해서 11월에 사진이 들어가 있는 정식 서류를 받았습니다. 등록할 때 몇 번 찾아갔던 것 같고 제가 이모 씨와 처음 난민국에 갔을 때 면접관에게 북한에서 나온 탈북민이 유엔에 난민신청을 한 적이 있었냐고 했더니 전혀 없고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기자: 당시 몇 명이나 난민신청을 하는데 도움을 주셨나요?

송광호: 제가 직접 관여한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이 모 씨를 도와주고 나니 며칠 후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전 모씨 라는 분이 집으로 전화를 해왔어요. 그분은 벌목장에서 온 벌목공 출신이었는데 그분과 유엔 사무실에 갔었죠. 당시 모스크바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분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오신 선교사님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분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특파원으로 이 일에만 매달릴 수가 없으니까 앞으로 탈북자들에게 연락이 오면 도움을 주십시오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전모 씨는 목사님에게 인계를 했는데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까 목사님 부인이 통역을 해서 무난히 등록을 해서 서울로 오게 했더라고요.

기자: 소문이 퍼졌으면 그때 많은 분이 난민인정을 더 받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송광호: 그때 한 몇 십 명이 소리 없이 그렇게 한국으로 왔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 3명이 1994년 11월에 모스크바에 있는 유엔 난민국에서 등록 서류를 받고 그 다음 95년 2월18일 이모 씨, 전모 씨 그리고 또 한분 등 세 명이 처음으로 대한항공을 타고 모스크바에서 서울로 입국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쭉 유엔에서 난민인정을 받는 것이 이어졌죠.

이렇게 러시아 벌목장을 이탈한 북한 벌목공들은 유엔의 난민인정을 받아 서울로 갔습니다. 당시 러시아 북한 벌목공 이야기가 잠시 언론에 보도 됐을 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 있는데요. 바로 94년 말에서 95년 초에 있었던 일로 위장 탈북 벌목공에 의한 살인사건입니다.

송광호: 송창근 이란 사람이 하바로프스크에서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거든요. 자기는 벌목장을 도망쳐 나왔다면서 이주헌 목사의 믿음을 갖게 한 뒤 어느 날 집으로 가서 살해를 한 것이죠. (이주헌 씨) 부인이 이계월 이었습니다. 나중에 러시아 정부에서 사건을 조사했는데 그 때 범인이 송창근이다. 탈북 벌목공이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는 송창근을 북한에 넘겼는지 후속 보도는 자세히 나오질 않았습니다.

1990년대 초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벌목공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해외 북한인권단체인 <북조선정치망명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1990~1993년도 러시아에서 외화벌이에 동원되었다가 탈출한 북한 벌목공의 수는 830여명으로 이중 600여명이 체포 송환되어 정치수용소로 갔으며 70여명이 현지에서 처형됐습니다.

북한 벌목공들과 함께 파견됐던 의사 최동성(가명) 씨에 따르면 이시기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탈북자들을 받아줄 수 있는 국제적 규정이 없어 외면할 수밖에 없었고 탈북자들은 유랑걸식하며 국제적인 고아가 되어 떠돌았다고 합니다. 최 씨는 이후 자신도 벌목장을 이탈해 현재 남한으로 갔습니다.

송공호 기자는 95년 이후 러시아에서 탈북자의 난민인정 사례가 이어지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송광호: 일단 몇 만 명의 벌목공이란 것이 하바로프스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가 상당합니다. 유엔 사무실이 모스크바에 있었고 벌목공이 당시 상당수 있었지만 전부 탈출한 것은 아니거든요. 탈출한 벌목공의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이고 단지 그때 벌목공의 유일한  의사로 신의주 의대를 나왔던 최동성(가명) 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80~120명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이지만 유엔 난민국 사무실이 나라와 도시를 아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난민국에 가서 북한에서 탈출했다는 것을 신고한 뒤 등록하면 거기서 어떤 보호 대책이 있지 않겠는가? 유엔난민 신청을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 또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죠. 예전에는 러시아에서 유엔 난민인정을 받았는데 현재는 유야무야 식으로 밖에서 보면 잘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그렇게도 생각이 듭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러시아에 있던 북한 벌목공들이 20여 년 전 유엔 난민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일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회견에는 송광호 기잡니다. 다음 시간에는 유엔난민 1호 탈북 벌목공 전성철 씨의 증언을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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