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납북된 사람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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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31일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꾸는 법률안 발의한 송갑석 의원 규탄대회(중앙에 노란옷 입은 분이 이미일 이사장 그옆이 어머니).
2018년 8월31일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꾸는 법률안 발의한 송갑석 의원 규탄대회(중앙에 노란옷 입은 분이 이미일 이사장 그옆이 어머니).
이미일 이사장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6.25전쟁은 남북한 주민들에게 수 많은 아픔을 남겼고 아직 풀지 못 하고 있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중에도 헤어진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게다가 잘못된 사실 관계로 해서 당사자뿐만 아니라 후손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을 통해 전쟁중 민간인 납치에 대해 알아봅니다.

기자: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이미일 이사장: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기자: 먼저 6.25 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는 어떤 단체인지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이미일 이사장: 저희 단체는 전쟁 중에 아버지가 납치되신 분의 자녀들이 모였어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시작할 때 이제 우리가족의 소식이라도 알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모였는데 사실은 전쟁 중에 있었던 초대 가족회의 뒤를 이어 재결성 된겁니다. 납북되신 가족의 생사소식 돌아오시는 것까지 촉구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자: 이사장님의 경우는 가족 중 어느분이 납북 되신 겁니까?

이미일 이사장: 저희 아버님이시죠. 아버지가 1920년생이신데 당시 만 30세이셨습니다.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고 저희에게 계속 말씀을 해주신건데요. 1950년 9월 4일 북한 정치보위부 유 소좌라는 사람이 와서 아버지에게 북한에서 언제 남하했나 물어봐서 일제시대부터 경성에 살았다고 했고, 서북청년단에 기부를 했지 물어서 조금 했다고 했는데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잠시 지서로 가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면서 전차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어요.

2017년 5월 발간된 '6.25전쟁 납북 피해 진상조사보고서'
2017년 5월 발간된 '6.25전쟁 납북 피해 진상조사보고서' 이미일 이사장 제공

기자: 북한에서는 늘 주장하는 것이 납북자는 없다고 하고 월북자만 있다는 입장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이미일 이사장: 저는 그동안 자료수집을 많이 했습니다. 심지어 휴전회담 회의록도 영문으로 된 것을 꼼꼼히 읽었어요. 북한이 그때서부터 납북자는 없다고 했어요. 이것이 지금까지 한 번도 인정한적이 없어요.

기자: 6.25전쟁 중 납북된 분은 어떤 분들이고 그 수는 얼마나 됩니까

이미일 이사장: 2017년 5월진상구명 보고서가 나왔는데 10만명 내외라고 결론을 냈습니다. 주로 지식인들 각 분야 지도자들인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교육자 등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거의 그 분야에서 3분의 1정도가 잡혀갔습니다. 지식인 계층이 2만 5천 명 정도 되고 나머지가 의용군입니다.  학생들을 거의 한꺼번에 끌어가듯 해서 전선에 투입하거나 북한으로 보내서 전쟁 복구하는데 동원하고  했는데 의용군이 7만 5천 정도 됩니다. 총 규모가 10만 명입니다.

기자: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납북과 자신월북을 구분하기 어려울 텐데 어떻게 납북으로 규정하고 계십니까

이미일 이사장: 당시 정부가 명부를 여러 번 만들었어요.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을 하자마자 공보처 통계국에서 서울특별시에 한해 납치, 피살, 행불을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낸 것이 있고요. 거기에서는  서울시에서 유명인을 위주로 작성했는데 여기에 2,438명이 있고 1952년에 작성된 전국명부에는 8만 2,959 명이 있어요. 그 명부를 저희가 찾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그리고 대한적십자사에서 신고받은 7,034명의 신고서와 등록자 명자 명단이 있고 1954년 내무부 치안국에서  작성한 1만 7,940명(의용군 제외 순수 민간인) 있습니다. 그것 외에도 명단이 만들어진 것이 있고요. 이런 것으로 저희가 납치를 입증했습니다.

월북한 사람을 납북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볼 때8만 2,959 명은 상당히 보수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납치가 불분명한 경우는 행불로 따로 집계 됐습니다. 이념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잖아요.

기자: 현재 납북자의 생사확인은 어느 정도나 파악을 하고 계십니까

이미일 이사장: 거의 안됐습니다. 1956년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히 작성된 것을 보면 7,034명이 북한으로 갔는데 북한에서 회신해준 것이 당시 337명이 어디서 무슨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준 것이 지금가지  유일합니다.

기자: 6.25전쟁 납북자가족협의회에서는 단체에서 남한분들 상대로 사실을 알리고자 사진 전시회도 했고 유엔에도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여러  활동을 했는데 올해 계획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미일 이사장: 지금은 6.25전쟁 납치 문제가 국내에서도 많이 공론화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금 정부에 계속 납치문제를 다루는 전담기구를 만들어 달라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안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국회에서 납북자송환촉구 긴급 정책토론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말한 것이 정부에 말해도 안되니까 국회에서 구성해 달라. 우리는 남이 아니다. 북한에 있는 주민이 우리의 혈육이고 우리의 피붙이다. 우리는 북한인권을 그냥 방치할 수 없다. 지금 북한이 절대 포기 못하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핵이고 두 번째는 인권문제다. 체제유지를 위해 북한이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인데 남한에 사는 탈북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 안타깝죠.

기자: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십시요

이미일 이사장: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가족을 결코 잊은 적이 없고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주시고 우리와 같이 복을 같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6.25 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과의 회견을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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