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드디어 탈북자 물리학 박사가 미국에서 탄생합니다.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에서 7년 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탈북청년이 미국으로 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놓고 유학을 온다는 방송했는데요. 이제 그 결실을 맺어 Texas A&M University에서 오는 5월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그 주인공은 죠셉 한(Joseph Han)씨입니다. 자세한 소식 알아봅니다.
기자: 박사 학위 수여 축하한다. 어떤 분야의 무엇으로 박사논문을 썼는지 소개를 해주십시오.
죠셉한: 네, 보통 사람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우주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우주에서 빅뱅이 일어날 때 형성되는 강입자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는 모형을 하나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 박사 논문의 주제입니다.
기자: 핵물리학 이론은 실험과 어떻게 틀린 겁니까?
죠셉한: 보통 실험은 입자 가속기를 돌려 하는 겁니다. 이론은 그런 실험에서 나온 결과를 물리적 이론에 기반 해서 설명하는 분야를 이론 물리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죠. 저희가 먼저 새로운 이론을 제출하면 정말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입자 가속기를 세우고 실험을 통해 입증되면 이론을 검증하는 겁니다. 그렇게 이론과 실험이 갈라집니다.
기자: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보통 핵무기를 만드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어떤가요?
죠셉한: 그것은 완전 초보입니다. 옛날 지도교수님의 지도교수님 그 이전분이 실제 독일에서 핵 프로젝트를 하던 유명한 분으로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또 영국에서 핵 프로젝트를 한 분도 저희 지도교수님의 지도교수님이십니다. 옛날 사람들이 했죠. 오래전에 나온 이론이니까 지금은 핵공학에서 하는 것이고 저희 쪽은 더 본질 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겁니다. 나중에 저희가 하는 분야가 어떻게 무기에 사용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자: 자신이 계획한 기간보다 많이 걸렸는데 왜 그랬죠?
죠셉한: 제가 생각한 것처럼 잘 되지 않더라고요. 성경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는 말씀이 있더라고요. 초기에 마음속으로 코스웍은 1년 만에 끝내고 논문 시작해서 박사과정 3년에 끝내려고 생각했는데 쉽게 되지 않더라고요. 논문을 쓰면 교수님은 수정하라고 명령내리시고 매일 연구실에서 밤새우다시피 하면서 책상에 엎드려서 쪽잠도 자고 계산하고 코드 만들고 돌리고 테스트하면서 논문이 버전이 20개도 넘게 나올 정도로 모델을 수정하고 계산코드를 수천 수 만 번 고치면서 작업을 했죠.
제 계산 컴퓨터에 보면 폴더가 1,200개가 넘더라고요. 매 폴더들에 다 여러 가지 버전으로 계산 된 코드들이 들어 있어서 어떻게 수정했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조금씩 달라지고, 그 변화에 따르는 물리학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모델을 업그레이드 해나갔죠. 그렇게 해서 쿼크가 강입자가 되는 모델을 제시하고 그에 근거해서 컴퓨터 계산 모듈로 만들었습니다.
저희가 만든 모듈을 미국에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 있는 연구그룹을 비롯해서 미국의 유수대학들에 있는 핵물리 그룹들에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몇 개 대학들에서 저희 코드 모듈로 테스트도 해봤고요. 그래도 지도교수님은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은 모델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서 계속 다른 시도를 해보라고 하고 결국은 학위기간이 오래돼서 드디어 작년에 학위논문 다 쓰고 졸업하려고 지도교수와 논문심사 교수들과 논문심사 날짜도 조율하고 강의실도 예약하고, 논문심사 공고를 대학원 사무실에 제출까지 했지만, 논문심사 3일 앞두고 연구실에 어떤 사건이 터져서 화가 난 지도교수님이 강제로 취소하라고 하셔서, 결국 취소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죠.
연구실에 간이침대까지 가져다놓고 한 달 동안 숙식하며 논문 쓰고, 논문 발표 준비했는데 참 힘들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보며 공부는 내가 하지만 졸업은 하나님이 시킨다고 생각되며 신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자: 가족이 함께 유학 생활을 한 것으로 아는데 공부하며 경제적 생활은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죠셉한 : 초기에는 대학 학부생들의 대학물리 연습수업과 실험수업을 강의하는 강의 조교로 월급을 받았고, 대학원 2년차 때부터는 DOE(미국 에너지부)라는 정부기관에서 지원하는 JET Collaboration이라는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서 연구조교로 월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년 겨울까지 연구프로젝트가 만료되어서, 이번학기는 또 대학물리수업과 물리실험 수업을 강의 하면서 강의 조교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 가끔씩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그리고 사랑의 교회 옥한흠 장학재단 같은 장학단체들에서도 지원받아서 네 식구가(기혼으로 자녀가 있음) 빠듯하게 생활해 왔습니다. 학위기간이 길어지면서 나중에는 장학금 신청하기도 어려워서, 생활비가 모자라면, 한국 들어올 때 받았던 정착금도 많이 가져다 썼고요.
기자: 국적은 한국이지만 태어난 곳이 북한이라 행정서류 처리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죠셉한: 네, 미국에서는 일반인들은 한국이나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단편적인 얘기를 하나 해볼게요. 초기에 와서 1년 지났을 때 유학생을 위한 입국서류 중에 I-20라는 서류가 있는데 그것을 해마다 또는 여행하고 싶을 때 싸인 을 받아서 갱신하는 일이 있거든요. 그런데 갱신된 I-20에 제가 태어난 국가 (birth country)가 인도(India)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아마 행정상의 실수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 외국인학생서비스센터 직원에게 "나는 인도가 아니라 북한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수정해 달라."라고 이메일을 보냈죠. 그랬더니 직원이 답장으로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발급한 출생증명서(birth certificate)를 가져와서 제출해야 수정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새 학기 수강신청 전에 제대로 수정하지 않으면 수강신청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답장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나는 탈북자(North Korean refugee)다. 나는 북한에 돌아갈 수 없다. 내가 북한에 돌아가면 바로 감옥행이거나 처형당한다면서 출생증명서 제출은 불가능하다"라고 답장을 했더니, "북한에서 무슨 죄를 짓고 나왔는가?"라고 질문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북한은 북한의 국경을 넘어서 다른 나라로 가는 것 자체가 큰 반역죄(guilty of high treason)로 여긴다. 그리고 그 때 당시에 수백만 명이 굶어죽고, 나뿐 아니라 수 십 만 명이 탈북했다. 우리가족도 거의 굶어죽을 지경이어서 탈북 했다."라고 적고, BBC나 ABC 영문판 뉴스에서 탈북자에 관한 기사를 링크를 걸어서 답장했더니. 그제야 직원이 "아. 나는 탈북자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어봤다. 새로운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방법을 마련해보겠다. 학업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라고 답장이 왔더라고요.
기자: 그래서 문제가 다 해결됐군요?
죠셉한: 네, 그 직원이 어떻게 했는지 다 해결됐더라고요.
기자: 이제 미국에서 최고 학위를 받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죠셉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년이라는 정말 힘들기도 하고 보람 있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북한에서 아주 어려서부터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과학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할 때는 구소련의 문제집들과 참고서들을 보면서 공부했죠. 그러면서 구소련의 모스크바 물리공학대학이나 중국의 베이징대학교 같은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로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데 지금 제가 이곳에서 그런 대학들을 졸업하고 온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업을 듣고, 연구하고 꿈같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편으로 과학자의 길이 이렇게 어렵고 험난한 길인 줄은 생각도 못했죠. 힘들게 해서 졸업하게 되었는데,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순수과학 분야에서 리서치 예산이 점점 줄어들면서, 경쟁은 점점 치열하고,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일단 아카데미에 남는 방향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카데미라고 하면 박사후연구원이나 대학교수 자리를 말하죠.
작년 겨울부터 일자리 지원 원서를 넣어서 일부는 거절 메일이오고, 일부는 결과를 기다리고, 또 새로 공고가 나는 곳들에 부지런히 원서를 쓰고 있습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자리가 되는 곳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사후연구원 자리가 없으면, 강의교수로 지원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구를 계속하면서 학계에 살아남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 분야에서 살아남기 힘들면 연구 분야를 약간 바꾸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북한의 문이 열리면 고향에 돌아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기독교인으로 기독교 복음도 전하고 또 서양식 자유민주주의를 북한에 설파하고 싶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핵물리학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죠셉 한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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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셉한 씨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한 씨가 보내온 보충 설명: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핵물리학분야에서 원자핵 속에 있는 양성자나 중성자와 같은 강입자들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핵물리학에도 실험과 이론이 있는데, 저는 핵물리학 이론을 하는 이론물리학자이죠. 구체적으로 제가 연구한 것을 설명해보면;
물질은 분자나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자 핵 속에는 중성자와 양성자가 있습니다. 중성자와 양성자를 통틀어 핵자라고 부릅니다. 핵물리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핵자 안에는 쿼크라는 미시입자들이 있는데, 쿼크들은 글루온이라는 입자를 매개체로 해서 힘을 주고받으면서 핵 자안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초기우주 상태에서 대폭발 즉 빅뱅이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빅뱅을 사람들이 입자가속기라는 거대한 장치를 만들어서 중이온충돌실험을 통해서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자가속기에서 일어나는 중이온 충돌실험에서 생성되는 미시입자들은 400조 켈빈이라는 엄청난 온도나 엄청난 밀도 상태에 이르는데 이때 쿼크-글루온-플라즈마라고 불리우는 물질상태가 형성됩니다. 평소에는 중성자나 양성자같은 핵자속에 갇혀있던 쿼크나 글루온들이 이런 극한 온도나 밀도 상태에서 서로 뿔뿔이 제각기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형성되는데, 이 상태를 학자들은 쿼크-글루온-플라즈마라고 부릅니다. 이 쿼크-글루온-플라즈마는 수 마이크로 초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하고 곧 강입자로 변환되죠. 그러므로 실제로 입자가속기 검출기에서는 강입자만 검출되고 쿼크-글루온-플라즈마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중이온 충돌 실험에서는 쿼크-글루온-플라즈마 외에도 또한 엄청나게 빠르고 큰 에너지를 가진 제트입자들도 생성되는데, 그 제트 입자 속에 있는 쿼크와 글루온들이 어떻게 원자의 핵을 이루는 양성자나 중성자와 같은 강입자를 형성할 수 있는가 하는 모델을 제시하는 논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모델을 갖고 제트 입자들이 쿼크-글루온-플라즈마 매질을 통과할 때 그 매질 속에 있는 쿼크와 글루온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운동량을 잃는가 하는 것도 연구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중이온 충돌에서 쿼크-글루온-플라즈마가 존재했다는 하나의 증거를 제시했고, 또 쿼크-글루온-플라즈마가 어떻게 제트입자에 영향을 주는가도 연구해볼 수 있지요. 앞으로 저희가 만든 모델을 사용하여, 앞으로 진행될 입자가속기 실험들에서 얻어지는 강입자들의 운동량 스펙트럼이나 다른 성질들도 예측해볼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