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납치사건- 11명 미송환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8.07.12
nk_kidnapping_conference-620.jpg 지난달 8일 열린 '북한정권의 불법납북,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13개국 국제공조 대처방안 발표회'에 참석한 황인철 씨(오른쪽).
사진 제공-황인철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9년전 남한 민간항공기인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으로 공중 납치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KAL기 납북시간이라고도 하는데요. 아직도 승객 11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를 통해 KAL기 납치사건에 대해 알아봅니다.

탄원서에 대해 통일부가 보내온 답변.
탄원서에 대해 통일부가 보내온 답변.
사진제공-황인철

황인철 씨는 그날 비행기 승객이었던 황원 씨의 아들입니다. KAL기 사건 당시 무슨일이 있었던 것인지부터 들어보시죠.

황인철: 제 나이 2살 때였습니다. 그때가 1969년 12월 11일 아버지가 당시 MBC 피디였는데 출장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 납치가 됐습니다. 당시 아버지를 포함해 승무원과 승객이 총 51명이었고 1970년 6월 4일 북한이 전원 송환 약속을 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비난의 여론이 강해 그렇게 약속했다가 돌연 약속을 어기고 2월 14일 승객 39명만 송환을 해주고 승무원 4명과 승객 7명이 아직도 송환되지 못하고 해결되지 않은 것이 KAL기 납치사건입니다.

승객 51명을 태운 대한항공의 쌍발 여객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집니다. 낮 12시 25분 강릉 비행장을 떠나 서울에 도착 예정인 비행기는 이륙 35분 후 서울이 아닌 원산시 근처 선덕 비행장에 강제 착륙합니다. 그리고 북한은 조종사 기자회견을 통해 조종사에 의한 자진입북이란 발표를 합니다.

일부 승객은 송환됐지만 여전히 승무원 전원과 승객 일부가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 중에는 황인철 씨의 아버지도 있습니다.

황인철: 당시 승객 39명이 돌아오면서 이들이 북한에서 본인들이 어떤 상황이었고 어떠한 고통을 당했는지 증언 합니다. 당시 MBC피디인 아버지가 공산주의 이론에 대해 반박 하고 사회주의 체제 반대이론을 말했답니다. 그리고 국제법에 의해 우리를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구를 했고 저희 아버지 경우는 1970년 2월 7일 당시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였는데 가고파 노래를 부르다가 북한의 군인이 들어와 아버지를 데려가고 39명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올때까지 저희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북한에 의해 강제억류가 되고 북한당국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강제억류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당시부터 들어오고 있습니다.

(가고파):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황원 씨가 북한에 억류 당시 불렀다는 가고파 노래는 그가 얼마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 마음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자: 사건 당시 2살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을 듯합니다. 성인이 돼서 그런 사건을 알고 해결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고통스러웠을 듯 한데요.

황인철: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왜 이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의 관할권을 포기한 상황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해야할 역할을하지 않고 과거 단순사고로 치부하는 정책적인 결정을 내려서 이산가족으로 분류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만나게 되면 정부로서의 책임소재, 본인들이 해야할 것은 다했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단 한가지라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더라면 제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기자: 황인철 씨가 아버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해결해야겠다고 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황인철: 제가 지금 52살인데 2001년 제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 저희 아버지와 같이 납치 당했던 스튜어디어스 성경희 씨가 어머니와 이산가족 상봉으로 만나게 됐어요. 그 상봉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아버지를 만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납치를 당하셨을 때 제 나이가 2살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저의 큰딸이 2살이었습니다. 2살된 딸을 보면서 저는 두 가지의 고통이 교차됐습니다. 2살 때 아버지를 잃어서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저의 모습을 봤고 동시에 2살 가장 이쁠 때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의 고통을 느끼는 상황이어서 저한테 있어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나도 아버지를 만나야겠다. 아버지 또한 나를 만나고 싶고 우리식구를 만나고 싶어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갖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기자: 현재 아버지를 소식을 알고 계십니까?

황인철: 제가 2012년도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KAL납치 피해자 송환을 위한 100만인 서명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언론에 나오다 보니까 북한인권 운돌을 하는 분들이 저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당시 슈퍼맨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을 많이 돕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아버지의 소식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중요한 것은 2012년 12월 아버지가 신의주에서 200KM, 평양에서 100KM 떨어진 지점에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그분이 하는 말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물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당시 아버지가 강제납치 돼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북에 억류됐는데 나한테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자유의사다. 아버지가 집으로 오시겠다면 나는 끝까지 노력할 것이고 만약에 아버지가 북에 머물기를 원한다면 나는 포기를 할 것이다 라고 나는 얘기 했습니다.

잠시 황 씨는 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에 가슴설레였습니다. 그때가 2013년이었는데요. 북한에서 제3차 핵실험을 했을 때로 주민에 대한 통제가 극심한 때였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상봉은 물거품처럼 성사되지 않았고 2017년 12월 국제사회에 제3국에서 상봉만이라고 성사될 수 있도록 힘을 보테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인철 씨의 아버지 황원 씨는 1937년생으로 81살입니다. 기다린 세월도 고통이었지만 더 힘든 것이 해결의 조짐이 여전히 안보인다는 겁니다.

기자: 일단 아버지의 생존을 확인했고 그렇게 때문에 더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는데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십니까?

황인철: 저는 2010년 6월 17일 한국 납북자가족 중 처음으로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 실무반에 저희 아버지를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북한이 2012년 5월9일 북한에는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 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억류된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고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 답변을 받고 한국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북한의 거짓 답변에 대해 반박해달라 아직까지도 그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고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면 이것이 해결될 수도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라 한국 정부에 요구를 했는데 결국 거부당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포기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기자: 아버지에게 전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요.

황인철: 저는 아버지 만나서 한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아버지 저 아버지 아들 인철이예요 하고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가장 가슴아픈 것은 내가 가진 모든 정보를 얘기하고 있는데 그로인해 아버지가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끊임없이 감수하면서 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힘듭니다. 아버지 살아계시는 동안 뵙고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송환되지 못한 사람들은 11명입니다. 그들의 이름입니다.

임철수 (회사원), 성경희 (승무원) , 최석만 (부기장), 채헌덕 (병원장),유병하 (기장),김봉주 (MBC 카메라맨) ,최정웅 (한국 슬레이터 강릉지점장),정경숙 (승무원) ,이동기 (합동인쇄소 사장),황원 (MBC피디), 장기영 (요식업)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1969년 있었던 북한에 의한 KAL기 납치사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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