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거짓과 진실] 보천보 전투

워싱턴-이규상 leek@rfa.org
2010.09.21
bocheonbo_stamp-305.jpg 2007년 북한에서 발행된 보천보전투승리 70돌 기념우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5월 2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장성택 노동당 비서와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의 수행원들과 함께 량강도 혜산시에 세워진 보천보전투승리 기념탑을 방문했습니다. 남한의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셋째아들 김정은의 후계자 준비작업이 한창인 지금 김 위원장이 보천보 기념탑을 방문하는 것은 김씨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보천보 전투. 오늘 김 씨 일가의 거짓과 진실에서 그 진실을 파헤쳐 봅니다.

북한에서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보천보 전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정권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수 십 년 동안 보천보전투를 선전수단으로 사용해 왔고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 정권 정통성의 토대가 되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이 말하고 있는 보천보전 투와 1937년 6월 4일 보천보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만주에 괴뢰정권을 세우고 일본을 대항해 싸우는 독립군과 중국 공산당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전개했습니다. 그 때문에 1920년대부터 활발하게 움직이던 독립군의 활동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또 국내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가들도 체포되거나 변절하는 등 광복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있을 때입니다.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되어 있던 김일성은 6월 4일 밤 부하 백여 명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와 보천보에 있는 일본경찰을 습격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 사건을 아주 심하게 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 측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과 그의 부하들은 일본 경찰 100여명을 죽이고 60여명을 생포했습니다.

또 김일성은 그 날 저녁 김일성을 환영 나온 보천보 주민들 앞에서 역사에 남을 연설을 했다고 북한 측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천보전투를 기념하는 북한의 조선혁명박물관에는 러시아의 레닌이 혁명을 주도할 때의 모습을 본 따 김일성이 불타는 수래 옆에서 주민들에게 연설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수 십 년간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를 연구해온 서대숙 전 하와이대 석좌교수는 북한 측의 이러한 주장은 과대 포장에 불구하다고 일축합니다.

서대숙: 북한에서는 약 1,000여명이라고 말하지만 200여명이 안 되는 군인들을 이끌고 혜산 시로 들어가 그 시를 점령했다.

당시 보천보 지역은 주민 3백 여 가구가 살던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북한 측에서는 이 보천보 전투에서 백여 명의 일본경찰이 죽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곳에 상주하던 일본 경찰은 5명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백 여 명이 넘는 김일성의 부대가 다섯 명의 경찰을 제압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역사학자들의 생각입니다.

당시 보천보 인근에 있는 혜산진에는 많은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일본군이 지원 병력을 보냈을 때 김일성과 그의 부대는 보천보를 빠져나간 이후였습니다.

보천보 전투에 대해서는 김일성 본인도 그다지 큰 전투가 아니었음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6권에는 보천보 전투가 대포도, 탱크도 없이 진행한 자그마한 싸움이었다고 김일성 본인이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 측이 보천보 전투에 대해 감추는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이끈 부대가 조선혁명군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밑에 있는 동북항일연군 소속이었습니다.

동북항일연군은 만주의 각 지방에 있던 중국공산당 지도를 받던 항일 유격대를 기반으로 창설된 단체입니다. 이 조직에는 만주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들도 대거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벌일 당시 중국인의 지휘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서대숙 교수의 설명입니다.

서대숙: 김일성을 조선민족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려면 그 사람이 중국 사람들 밑에서 싸웠다는 사실과 러시아 군 밑에서 러시아 견장을 달고 싸웠다는 사실들은 말을 안 한다.

비록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유격활동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위해 보천보전투를 과대포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김일성의 항일투쟁업적을 인정할 부분도 있다고 서대숙 교수는 말합니다.

서대숙: 그 사람도 옛날에 만주에서 처음 시작하면서 감옥에도 갔었고 양세봉 이라는 사람 밑에서도 싸웠고 중국 사람들과도 함께 싸워 그들의 도움을 받고... 그런 것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김일성의 항일투쟁활동에 대한 과대포장과 선전은 오히려 김일성의 업적에 대한 의심만 부르고 있다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지적합니다.

어찌 됐던 보천보전투를 통해 김일성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보천보 전투가 군사적으로는 별로 큰 의미가 없는 단순한 소동에 불과했지만 이 사건은 일본군이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당시 땅에 떨어졌던 조선인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한 몫을 했습니다.

또한 동아일보는 보천보전투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김일성은 순식간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고 김일성은 전설적인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김일성이 승승장구하자 일본군은 김일성과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철저한 탄압에 나섰습니다.

서대숙: 일본 토벌부대가 궁극적으로는 성공을 하는 것이다. 김일성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김일성이 토벌부대에 쫓겨서 동북항일연군 군장도 죽고 제2군 군장이었던 위정민도 죽고해서 김일성은 일본군에 쫓겨 러시아로 간다. 결국 동북항일연군은 일본군의 탄압에 의해 없어진다.

김일성이 소속되어 있던 동북항일연군은 대부분 일본토벌부대에 의해 사살되거나 일본군에 투항했고 결국 김일성은 1941년 3월, 남은 부하 5, 6명과 함께 소련 땅으로 도주합니다. 김일성의 소련군 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김씨 일가의 거짓과 진실’ 다음 주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짜 김일성 설에 대해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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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2016-08-23 07:37

밑에분..김일성이 항일투쟁한건 이승만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됩니다. 그리고 김일성 인척이 유명한 일제 군수자본가라는건 아시는지...이승만정권은 적어도 정부조요요직에서는 친일파가 없었는데 반해 김일성정권은 정부 요직자체가 친일파에 기반한 정권입니다. 625를 통해 항일독립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했던 반대파를 제거하고 천리마운동을 통해 자기를 지지했던 친일지주들을 선별 처단하여 지금의 김일성 왕조를 구축합니다.

Anonymous
2012-07-16 20:14

전설의 항일전사 김일성이 아닙니다.보천보에서 시작한 김일성은 그래서 가짜라는 겁니다.
미국 영화 조로가 바뀌듯이,,,,,전의 김일성의 모든 공적을 가로챈 경우입니다.
그래서 앞 뒤의 얘기가 현실적으로 안 맞는 겁니다.

Anonymous
2015-06-20 01:21

김일성이 싫어도 부정할 수 없는 건 그가 항일투쟁을 한 건 사실. 이에 비해 백선엽, 정일권, 박정희는.. 초대 욱군참모총장부터 10대까지 모두 일본군 아니면 만주군 출신.. 이게 대한민국.. 사실은 사실이고 독재자는 독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