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북한에는 5명의 유명 방송원이 있다

장진성∙탈북 작가
20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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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chunhee_crying-305.jpg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울먹이며 전하는 북 아나운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 방송원들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외부세계에선 북한 방송원이라면 리춘희부터 떠올립니다. 평생을 북한 정권을 대변하는 방송원으로 살아왔고, 더구나 한 달 동안 잠적했던 그가 다시 나타나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의 목소리라고까지 부를 만큼 현재 리춘희의 관심은 뜨거운데요. 그러나 리춘희보다 김정일의 신임이 더 컸던 방송원들이 여럿이나 있습니다.

북한 방송원들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국에 소속돼 있습니다. 1997년 고난의 행군시기 김정일은 5명의 방송원들에게 일본 닛산 계열 승용차 중 가장 고급형인 “세드리크”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또한 보통강구역 신원동 “류경호텔” 앞에 있는 이른바 “200세대”아파트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아파트에는 모두 200세대가 입주돼 있는데 김정일의 신임을 받는 사회 각 분야의 인물들입니다. 항일투사들과 북한의 유명한 체육인, 예술인, 방송인, 작가, 과학자들입니다.

김정일의 5인 방송원들은 리상벽, 전형규, 최성원, 김주먹, 리춘희였습니다. 리상벽은 1924년생으로서 1947년부터 평양 라디오방송원으로 활약했던 사람입니다. 1966년 잉글랜드8강전 때 현지방송 생중계를 했었고, 1989년 13차세계청년학생축전 때에도 개, 폐막 생중계 방송을 담당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1966년에 인민방송원 칭호를, 1972년에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를, 1984년에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북한 1세대 방송원입니다. 고급승용차와 아파트는 리상벽의 가족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김주먹 이었습니다. 김주먹은 조선중앙방송 위원회 라디오총국에서 전문 소설 낭독을 하는 성우 방송원이었습니다. 김주먹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6.25전쟁 때 부모 잃은 그녀에게 “반드시 남자처럼 살아서 훗날 꼭 부모원수를 갚아라.”며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김일성이 전쟁고아원을 방문 했을 때 그 이름의 사연을 듣고 그녀를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내주었습니다. 김정일이 당 조직비서 유일비준 제도를 독점하면서 김일성에게 보고되는 모든 문건들을 카세트로 녹음해서 보고하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김주먹은 그 수많은 녹음카세트 보고 중 소설 부문을 맡았던 성우 방송원이었습니다.

소설을 좋아했던 김일성은 김주먹의 목소리를 들어야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며 몹시 그녀를 아꼈습니다. 세 번째 방송원은 1934년생인 전형규였습니다. 전형규는 2000년 초반까지도 북한의 간판 남자 방송원으로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국 국장이었습니다. 김정일은 그를 “나의 목소리”라며 몹시 신임 했습니다. 방송원은 매일 매일 정부를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은 감기에 걸릴 권리도 없다. 나보다 더 건강해야 한다.”고 김정일이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전형규는 김정일과 그 최측근들이 치료 받는 봉화 진료소 진료대상이었습니다. 봉화진료소 진료대상의 여자 아나운서가 또 한 명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전형규 국장 밑에서 부국장으로 있던 최성원입니다. 최성원은 아나운서로 있다가 김정일이 최고의 화술인이라고 극찬한 이후부터는 김정일 관련 기록영화나 시만 전문 녹음하는 이른바 “1호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사실 1호 아나운서는 북한 방송원들에겐 최고의 꿈이며 포부입니다. 북한 보도는 주민용이지만 당 문헌영화들이나 1호 시들은 김정일이 직접 보고듣기 때문입니다. 1996년경이었습니다. 최성원 아나운서가 감기에 걸려 입원한 관계로, 김정일 현지시찰 기록영화를 리춘희 아나운서가 녹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첫 장면부터 불쾌해 하던 김정일은 도중에 필름을 멈추게 하고 다시 편집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리춘희는 큰 목청으로 성명서나 읽을 목소리이다. 최성원만한 방송원이 안 나오면 큰일이다. 빨리 최성원 같은 여자 후배를 키우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때부터 최성원은 자기 업무와 함께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소속 방송문예총국에 화술지도국을 내오고 후배양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리춘희는 그 전까지는 방송국 부국장인 최성원 자리를 넘보며 1호 아나운서를 희망했지만, 김정일의 한마디에 보도국 방송원 양성 책임자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정일의 후배양성 강조를 방송원 세대교체 지시로 판단하고 정하철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이 방송원들을 젊은 사람들로 교체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1997년부터 북한 중앙TV 고정 아나운서는 남자는 류동호, 여자는 류정옥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리춘희는 자기 자리를 차지한 류정옥을 시기했고, 여기에 방송원 후배들이 동참하게 됩니다. 그 앞장에 섰던 인물이 바로 남자 아나운서인 류동호 였습니다. 류동호는 선배 방송원들이 밀려난 근거로 정하철 위원장과 해주 출신인 류정옥과의 은밀한 관계를 주장하며 당조직부에 신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정하철이 오히려 중앙당 선전선동 부장 겸 비서로 승진하면서 류동호는 북한 방송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류정옥은 간판 아나운서로, 리춘희는 가끔 정부 성명서만 읽는 방송원이 돼 버렸습니다.

그런데 정하철이 2005년 후계문제에 잘 못 개입한 죄로 숙청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류정옥도 방송국에서 점차 밀려나게 되고, 다시 리춘희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한 때 리춘희는 목소리를 남용한 죄로 일주일간 자택 혁명화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북한 방송원들은 정부 목소리 이기 때문에 사적으로 녹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간부 자녀의 결혼식에서 류동호와 리춘희가 유머스런 이야기를 몇 마디 했었는데 그 내용이 녹음 카세트로 복사되어 유출된 것입니다.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전체 직원들 앞에서 정하철 위원장은 “왜 방송원은 목소리를 밖으로 유출시키면 안 되는가? 외국에서 쿠데타를 할 때 방송국부터 점령하는 그 이유를 모르겠는가. 만약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당신들의 목소리를 다르게 조합해서 퍼뜨리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비판하기도 했었습니다. 최근 김정은 후계정권이 들어서면서 젊은 아나운서가 등장했습니다. 그 아나운서는 부디 좋은 소식만 들려주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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