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감성독재 핵심은 문화배급

장진성∙탈북 작가
2013.03.26
2010_book_exhibition-305.jpg 2010년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65돌을 기념해 5일 평양에서 열린 국가 도서 전람회에 평양 시민들이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언어제약과 관리를 통해 문화배급을 실현하는 북한 정권의 감성독재에 대해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계는 북한을 물리적 억압만 있는 독재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폭력 독재보다 더 무서운 것은 “ 나는 음악과 문학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고 말할 줄 알았던 김정일의 감성 독재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북한에는 정권이 허용한 새 노래 , 새 영화만 있지 인민들이 자체로 창작한 개인문화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외국 문화를 몰래 즐기는 것 마저 수정주의 , 비 사회주의 행위로 엄격하게 처벌하는 북한입니다.

때문에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가장 충격 받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문화의 다양성입니다. 저도 북한에서 살다 왔지만 가끔 북한 TV 를 볼 때면 저런 나라에서 과연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 하고 몸서리쳐 집니다.

최근에도 북한 TV 를 보니 ‘ 부부상식 경연 대회 ’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방송을 가만히 보니 상황에 따라 어떻게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하는지 정답을 가르쳐주는 것 이었습니다 . 상황에 따른 개인의 다양한 의견이 있으련만 , 방송에 나온 심사위원은 그런 말들을 전부 “ 불합격 ” 이라고 판정을 합니다 . 그리고 난 후 틀에 박힌 정답을 출연자와 시청자에게 제시합니다 . 누구를 막론하고 똑같은 표현을 하라고 강요하는 셈인데 심지어 환갑이 지난 출연자에게 조차 어린아이 가르치 듯 합니다.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답게 부부간의 의사소통 표현마저도 국가에서 정해주는 과잉 친절을 하는 것 입니다. 사실 북한정권의 독재는 언어의 통제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 일편 단심 ’ 이란 단어가 사랑하는 연인 간에도 쓰이는 한국과 달리 북한에선 오로지 정권을 향한 충성심을 표현 하는 데 쓰입니다. ‘ 선물 ’ 이라는 단어 또한 정권이 지급한 물건에만 쓰고 개인 간에는 ‘ 기념품 ’ 이라는 말로 차별화 합니다 . 이렇듯 언어마저도 정권용과 주민용으로 언어 계 층을 분리 시킵니다. 이는 매일 똑같은 얼굴의 아나운서가 TV 에 나와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류 드라마가 북한주민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는 재미도 있겠지만 몇 년 동안 똑같은 방송만 보여주는 북한과 달리 남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이 끊이지 않는 사람 사는 세상의 무궁무진한 매력 때문인 것 입니다.

사실 저도 평양음악무용대학 재학 중 한 권의 책이 작가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책은 북한의 ‘100 부 도서 ’ 인 “ 바이론시선 ” 이었습니다 . ‘100 부 도서 ’ 란 문자 그대로 북한에서 100 권만 출판한다는 책입니다. 김일성 , 김정일 일가와 친척들 , 그리고 특권층들만의 문화적 특권을 위해 일반인들이 볼 수 없도록 100 부 인쇄로 제한한 책입니다. 합법적 출판계약이 없이 외국에서 불법적으로 들여오는 책들이어서 100 부 도서들은 아예 부수 도장까지 인쇄 되어 나옵니다.

1 번은 당연히 김일성 , 김정일에게 바쳐져 간부들은 되도록 1 번과 가까운 책을 소장하고 싶어합니다 . “ 바이론시선 ” 은 옛날 ‘100 부 도서 ’ 이어서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아버지 서재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저는 사실 표지가 다른 책들과 틀려 단순히 호기심에 펼쳐 들었습니다 . 북한 도서들은 사회상을 반영하여 표지부터가 밝고 화사합니다 . 그런데 바이론 시선은 외국의 고전적 의미를 부각시켜 유화 그림 액자처럼 네모의 선을 긋고 그 안에 제목이 있었습니다 . 색깔도 어둡고 침침했습니다 . 또한 일반 도서들은 인쇄도서이지만 바이론시선은 수작업으로 제본한 두툼한 책 이었습니다 . 생각 없이 펼쳐 들었던 저는 첫 장부터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 우선 단어의 방대함에 놀랐습니다.

전체주의 세뇌를 언어의 통일로부터 시작하는 북한에서 제가 본 책들은 거의 혁명 교과서와 같이 틀에 박힌 도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북한에선 개인의 언어 표현 능력이 주체사상의 윤리 안에서 정형화 되도록 당 선전선동가 언어문화를 주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문학은 사회주의 문화 원칙을 규정한 김정일의 주체문예이론이라는 법적 잣대에서 한 글자도 탈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감시 관리하는 문화 권력이 바로 당선전선동부 정책과 소속 ‘ 국가문예작품 심의위원회 ’ 입니다. 그런 문화 배급 속에서 살아 왔던 저에게 바이론시선은 마치도 한국말사전 같았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단어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외국 책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바이론 시선의 감흥은 존칭어들의 겸손 이었습니다.

북한언어는 수령의 것과 인민의 것으로 철저히 차별화 되어있습니다 . 저는 바이론시선을 보기 전까지 “ 친애하는 ”, “ 경애하는 ” 과 같은 수많은 경어들은 김일성 , 김정일에게만 붙는 고유명사인 줄로 알았습니다 . 수령 앞에 반드시 붙이는 “ 위대한 ” 이란 단어와 더불어 김일성의 또 다른 이름처럼 순수 한국말인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 바이론시선을 통해 그런 존칭어들이 인류 공동의 언어들이라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가슴이 뿌듯할 정도 였습니다.

특히 시의 운율이 주는 리듬감 속에서 만들어지는 단어들의 조화와 문학적 기법들은 음악을 초월하는 문학의 위대함을 알게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이론의 서사시 “ 챠일드 하롤드의 편력기 ”( 북한 식 번역제목 ) 와 “ 해적 ” 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잔인한 해적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알고 섬에서 사라졌다는 결말의 여운은 저를 도저히 진정할 수 없게 했습니다.

수령에 대한 충성을 인생 전부의 감성으로 알았던 16 살의 저는 불쑥 어느 여자에게 고백하고 싶어졌습니다 . 해적처럼 사랑을 위해 강해지고 싶었고, 또 기꺼이 약해지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 왜 외국 문화를 통제 하고, 또 어떻게 주민들에게 폐쇄문화를 강요하는가에 대한 반증을 위해서입니다.

“17 세기 영국의 바이론이 21 세기 독재국가인 아시아 북한의 한 소년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소년은 문학의 꿈을 안고 자유를 찾아왔다.” 런던올림픽 방문기간 저의 이야기를 들은 영국 언론에서 소개한 글입니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원칙을 깨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저에게 바이론 묘비 앞에서 사진을 찍도록 허용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김일성, 김정일 정권의 세뇌에서 깨어나게 해 준 위대한 시인 바이론에게 세기를 넘는 존경심으로 머리 숙여 묵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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