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UFO가 북한을 흔들었다

장진성∙탈북 작가
2012.06.12
people_education_ctr-305.jpg 황해북도 인민학습당을 시찰하는 고 김정일.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때 북한 주민들의 고정관념을 송두리 채 뒤흔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1997년에 있었던 인민 대 학습당 UFO사건이었습니다. 평양시 중구 역의 남산 재 언덕에는 인민 대 학습당이 있습니다. 1982년 4월1일에 개관된 이 대 학습당은 연건면적이 10만m2이고 3,000만권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어 북한이 세계최대도서관으로 자처합니다. 더욱이 김일성 광장의 주석 단을 배경으로 푸른 기와를 얹고 일어선 한옥 형태의 대형건물이어서 북한은 ‘김일성 민족’ 상징물처럼 자부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평양의 명당자리라고 했던 그 남산 재 언덕에 북한이 거대한 민간인시설을 올려놓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한 이유가 있습니다.

평양시 중구 역은 대부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건물들과 간부아파트 단지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뚝 일어선 남산 재 야산 밑에는 유사시 지하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중앙당사무실들과 북방으로 기밀자료들을 빼돌릴 수 있는 방대한 크기의 지하철 역전도 있습니다. 또한 김정일 부자만이 이용 가능한 벙커들과 대성 산 구역을 비롯한 평양시 교외 특각들로 이어진 지하고속도로가 있습니다. 때문에 김정일은 김일성 광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지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하도로에서 빠져 나와 주석 단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비밀시설들을 은폐시키고 유사시에 대비하여 방어벽으로 사용하기 위해 북한은 거대한 규모의 민간인 시설을 남산재 언덕에 지은 것입니다.

인민 대 학습당은 3,000만권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대여할 책은 북한 판 책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에 한하여 전공분야와 관련한 외국도서들을 현장에서만 열람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특별허가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방 북 하면 필수 관광코스로 지정된 대 학습 당이지만 규모에 비해 출입인원이 매우 적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김정일은 전민이 학습하는 사회모습을 외국인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인민 대 학습당에 홍보를 지시합니다. 하여 각 부서별로 아이디어를 내게 했지만 외국도서들을 개방하지 않는 한 호기심을 유발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UFO공개였습니다. 자본주의 황색차단으로 모든 외부 문화를 불법으로 막아버린 실정에서 사실 외계인 이야기밖에 더 할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인민 대 학습당 측은 도서관을 찾으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홍보 차원에서 흥미유도를 위해 외국 언론들의 자료를 토대로 UFO실체에 대해 해설하는 녹음 카세트를 유출시켰습니다.

그런데 효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그 내용은 주체적 유물론 철학관에 세뇌된 북한 주민들에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인류의 능력을 초월하는 외계인의 존재는 수령이 위대해야 인민도 위대해질 수 있다는 수령가치관을 붕괴시키는 증거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카세트 내용의 신뢰를 증명하기 위해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는 미국 영화도 이미 나왔다고 하는 내용도 과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걸 들은 순진한 북한 주민들은 외계인의 존재가 이미 지구를 위협할 수준의 현실임을 착각했고, 자기들이 바치는 평생충성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깨닫게도 했습니다.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모이면 외계인 이야기로 수군거렸고, 카세트는 복사되어 전국으로 빠르게 전파됐습니다. 그 카세트를 들은 사람들은 ‘지구 종말’을 상상하며 남은 생을 돈이나 벌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고들 했습니다.

한편 그 카세트는 북한 주민들이 종교를 믿는 세계인들을 이해하는 계기로도 작용했습니다. 하여 경제난 때문에 쪼들린 자신들의 삶과 불투명한 미래가 궁금하여 점쟁이들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수령의 주체에서 개인의 주체로 돌아서는 계기를 제공한 셈이었습니다. 어쩌면 북한 주민들이 시장에 의존하게 된 의식변화 동기 중 하나가 그 UFO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처럼 UFO가 북한을 핵폭탄처럼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외부와의 엄격한 차단과 획일적 선동에 포로 됐던 북한 주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령이 모든 물질의 창조자로 세뇌됐던 그들에게 UFO는 어마어마한 바깥세상을 상상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김정일은 진노하여 인민대학습당 책임자들과 UFO유출 관계자들을 반당 반혁명분자로 체포하여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뿌려진 녹음 카세트들을 주민들에게 자진 반납하도록 강요했고, 유포시킬 경우 정치적인 이색분자로 처형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았습니다. 그 통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점쟁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대대적인 단속이 이루어지자 UFO는 북한 주민들에게 더욱 과학적인 실체로 인식되었습니다. 저는 어느 신문에 “북한엔 핵이 있다면 남한에 삐라가 있다.”는 칼럼을 기고했던 적이 있습니다. 남한의 어린이들에겐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날 수 있는 UFO이야기인데도 북한은 그 동안의 폐쇄적 환경 때문에 작은 새로움도 이렇듯 크게 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근 일본의 유명지리학자가 백두산 화산 폭발 설이 임박했다는 주장을 하여 학계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백두산은 김일성의 성산이고 김정일의 고향으로 신성시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김씨 신격화의 근원지가 화산폭발로 사라질 수 있다는데 대해서도 아마 북한에선 커다란 민심의 동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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