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구호나무 날조

장진성∙탈북 작가
201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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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함경북도에 위치한 연사지구 혁명전적지 시찰도중 전적지내 구호나무를 보고 있다.
김정일이 함경북도에 위치한 연사지구 혁명전적지 시찰도중 전적지내 구호나무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수령 복 인민 복 꽃피는 나라” 저도 북한에 있을 때 이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부르기 좋아서가 아니라 부르라고 해서 말입니다. 김정일에겐 인민복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수령 복이 있었나? 이런 생각에 부르면서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마다 간절히 소원하는 복도 다 다르겠는데 이렇게 아예 위에서 복을 정해놓고 그 속에서 행복하라니 참 허탈하기도 했었습니다. 조선노동당선전선동부는 수령 복의 혜택을 이렇게 주장합니다. 인민들이 대를 이어 수령 복을 누린다고 말입니다. 하긴 김 씨가 아닌 이를테면 박 씨나 최씨, 혹은 이 씨 수령을 만나봤어야 말이죠.

오늘 이 시간에는 그러한 수령 복을 만들려고 김정일 정권이 조작했던 구호나무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김정일 정권이 처음으로 구호나무 존재를 세상에 공개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한 두 개도 아니고 1만 2천점의 구호나무가 갑자기 이 때부터 발견됐습니다. 그 중 200점은 김정일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럼 왜 그 시기에 갑자기 구호나무란 것이 등장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때가 김정일의 후계권력이 정리정돈 과정을 걸쳐 완성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즉 김일성의 유일지도체제 명목으로 사실상의 김정일 당조직부 유일지도체제를 완성하고, 김일성주석 체계를 대체하는 김정일 왕권통치시대를 열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러자면 김일성과 거의 대등한 역사적 명분이 필요했고, 그래서 “조선의 3대장군”, “조선의 광명성”이란 새로운 수식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김일성 신격화 내용의 구호나무들부터 조작했습니다. “조선의 영웅 김일성대장 만세!” “조선의 대통령 김일성”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때는 어느 누구도 서울 출신도 아닌 평양의 김일성을 조선의 대통령으로 칭송할 이유도, 그런 기적도 전혀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북조선 정권이 1932년 4월 25일, 스무 살의 김일성이 창건했다고 주장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란 것도 사실 김양녕이란 항일운동가가 조직한 반석공동의용군을 살짝 변형, 도용한 것입니다. 1932년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해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중국 공산당 내 조선인 출신 첩자들을 침투시켰던 민생단 사건이 터지면서 김일성도 간첩으로 몰려 처형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그랬던 김일성을 살려준 사람이 바로 동북항일연군 군장 중국인 주보중 이었습니다.

이후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소속 2군 6사에 편입되어 중국 동북지역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 소련으로 탈출할 땐 그의 수하에 남은 사람은 고작 6명뿐이었습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이 아무리 우매할지라도 그 6명의 대장을 조선의 대통령이라고 신봉하다 못해 전국 각지의 나무들에 새겨 넣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후 구호나무는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도 그 다음 대통령이라고 또 거짓말을 합니다. “백두산 광명성 태어났다.” “조선에 백년 대통운이 텃다”가 바로 그 대표적인 내용이지요. 김일성의 항일동지들이 김정일이 태어날 때 벌써 후계자를 뜻하는 광명성으로 불렀다는 것인데요, 아마 노동당의 혁명역사는 점쟁이들의 역사였나 봅니다.

사실 그 구호나무 날조를 앞장서 실천한 사람이 바로 내각 부총리 겸 문화 예술부 부장이었던 장철이었습니다. 재일교포 출신으로서는 유일하게 북한 정권의 핵심간부로 발탁됐던 장철은 같은 재일교포 출신인 김정일의 세 번째 처 고영희와의 친분 관계로 누구보다 가깝게 김정일을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지는 해이고, 김정일은 뜨는 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장철은 김정일의 나팔수가 되어 구호나무 조작을 선두지휘하게 됩니다.

북조선 TV방송을 보면 장철이 직접 과학자들을 이끌고 백두산 지대로 가 구호나무 발굴과 복원작업을 합니다. 유명한 북조선과학자들이 구호나무 글자 복원용으로 새롭게 발명했다는 액체시약이란 것을 뿌렸더니 나무에서 정말로 글자가 희한하게 드러나는 장면도 나오는데요. 그것은 이미 2차 대전 시기에 독일 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했던 화학약품입니다. 북조선 반탐영화들을 보면 간첩들이 백지에 액체를 바른 다음 서서히 드러나는 암호 숫자들을 읽는 장면들이 많지 않습니까? 구호나무란 그처럼 오래 묵은 나무를 선택하여 특수도료를 입한 다음 그 위에 투명 글자가 새겨진 투명 종이를 건조 부착시키는 방법으로 만든 것입니다. 김 씨 신격화를 위해 이렇듯 나무까지 신성시하는 북조선, 그래서 세상에 없는 웃음거리도 많은가 봅니다. 일부 눈치 없는 충신들이 자기 구역에서도 구호나무가 나왔다며 엉성하게 조작했다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건도 있었고, 일본의 유명한 식물학자 앞에서 50년 된 구호나무 라고 자랑했다가 그 나무가 40년생이라고 과학적으로 반박하는 바람에 망신당한 사례도 있습니다.

구호나무는 조작만이 끝이 아닙니다. 그 조작을 보호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햇볕과 눈비로부터 영구보존 하면서도 자연전시를 한다고 그 숱한 나무들마다에 외국에서 수입한 통유리를 씌우고, 그 안으론 아르곤가스를 투입합니다. 또한 전기장치로 통유리를 감싼 보호천이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 돼 있는데 이 비용이 나무 한 그루 당 한 해 2만 달러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결국 북조선 전 지역에 분포 돼 있다는 그 모든 구호나무를 관리하는 데만 일 년에 수천만 달러가 들어가는 셈입니다. 만약 그 돈으로 쌀을 샀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아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연 속의 나무들까지도 속절없이 김 씨 부자를 찬양하는데 동원돼야만 하는 북조선, 하지만 2004년경엔 양강도 지역에서 당선전선동부가 아니라 국가보위부가 발굴한 구호나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김 씨 독재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나무가 수령 복을 고발하는 진실의 구호나무가 아닌가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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