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타이타닉의 저주
2012.07.24

저는 얼마 전 영국에 갔다 왔습니다.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14일까지 런던에서 진행하는 “시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런던 시민들과 영국 정치인들, 그리고 기자들은 제가 들려주는 북한의 실상을 듣고 “오 마이갓!”, 어머나 맙소사! 하며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특히 그들이 가장 황당해 했던 것은 북한 판 “타이타닉”이었습니다. 아마도 자기들의 나라와 가까운 이야기여서 더 자극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북한 통전부가 “김조실록” 편찬 과정에 타이타닉이 침몰된 1912년 4월 15일에 김일성이 태어난 점을 연계시켜 “서양에선 태양이 침몰할 때 동양에선 태양이 솟았다.”는 식의 억지비교로 신격화를 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그 이야기를 들은 많은 영국인들은 웃음 절반, 경악 절반으로 북한을 “미친 나라”라며 이구동성으로 비난했었습니다.
사실 김정일은 미국 영화 “타이타닉”에 미쳤던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보기가 아까웠던지 중앙당 간부들에게 “타이타닉”을 보여주라고 지시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여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중앙당 간부들에게 미국 영화를 관람시키는 일도 있었습니다. 중앙당 선전 부 영화담당 부부장’이었던 최익규는 영화 상영 전에 한 시간가량 영화 촬영기술에 대해 강연을 하며 미국의 선진 영화제작 기법을 모방해서라도 우리 모두 영화를 이용한 외화벌이에 나서자며 선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타이타닉”을 본 많은 간부들은 영화의 촬영기술이나 시나리오에만 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의 적이라는 미국 놈들이 여자들에게 구조선의 첫 자리를 양보할 만큼 오래 전부터 저렇게 예의 바르고 생각이 바른 놈들이었는가? 지금은 얼마나 더 문명해졌을까?” 하는 경탄과 동경심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김정일은 해방 후 '우키시마호 비극 "사건을 주제로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라고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 지시하게 됩니다. '우키시마호 사건'이란 1945년 8월 24일 일본 측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한인 수천 명을 강제로 초과 승선시켜 귀국시키던 중 의문의 폭발사고로 한국인 524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한국인 수천 명이 수장된 것으로 전해지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제작된 영화가 바로 “살아있는 령혼들”이라는 작품인데 2001년 한국의 “전주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작품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은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미흡한 점이 많아 국내개봉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김정일은 영화 촬영을 위해 해운부가 갖고 있던 폐품용 대형선박까지 영화촬영에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미국영화 "타이타닉"을 본 김정일의 입장에서 북한 식 타이타닉이 이란 형편없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처리도 한심하여 배가 정상적으로 바다 위를 달리는 장면조차 매우 인위적인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또한 배우들을 와이어에 매달고 물에 넣었다 뺐다를 수 차례 반복하며 촬영했지만 좋은 장면은 좀처럼 보이질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영화상영 도중 김정일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김정일은 “우키시마호 사건”이야말로 타이타닉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역사적인 소재인 것만큼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영화촬영기술을 좀 더 익힌 다음 꼭 다시 만들라고 격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컴퓨터 시대라며 그래픽 기술자들의 양성을 위한 전문부서도 내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북한 판 “타이타닉”을 끝내 보지 못한 채 금수산기념궁전의 미라가 돼 버렸습니다. 그런 김정일을 보며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타이타닉의 저주”라 할까요. 2차 대전 시기에도 나치독일은 “타이타닉”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역사상 처음으로 “타이타닉”을 주제로 영화를 만든 나라는 독일입니다. 당시 나치독일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빠져있던 독일 군인들에게 진정한 “독일제국의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타이타닉”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타이타닉의 침몰을 영국 부패의 침몰로 묘사한 그 영화는 2년 동안 촬영됐지만 그 과정에 독일은 패망하게 됐고, 결국 영화도 세상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김정일도 나치독일처럼 “타이타닉”을 통해 무엇인가 얻어 보려고 했지만 정 반대의 결과에 쫓겼고, 또 그것을 의식한 채 사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타이타닉이 침몰된 1912년 4월 15일에 김일성이 태어난 것을 두고 북한은 “서양에선 태양이 침몰할 때 동양에선 태양이 솟았다.”고 선전했지만 하필 그런 날을 주체의 시원으로 정한 북한이어서 오늘날 세계최악의 빈곤국가가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