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테러와 도발로 물든 일요일

장진성∙탈북 작가
2011.08.23
kimhyunhee_arrest-305.jpg 대한항공 858기 폭파후 체포되어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 씨(가운데).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탈북자 장진성 씨가 전하는 김 씨 일가의 실체, 노동당 통일 전선부 대남 정책과 연락소 부원이었고 김정일을 두 차례나 접견한 일급작가 이었던 장진성 씨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60년 독재 체제와 현대판 봉건 세습에 대한 진실과 배경을 밝힙니다.

(음악: 북한 노래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

일요일은 인류 공동의 휴일입니다.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 시대에도 일요일은 똑같은 빨갛게 표시된 날이었습니다. 때문에 체제와 종교의 차이를 초월하여 일요일은 이 지구촌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평화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요일에 우리 민족은 6,25라는 전쟁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런 전쟁을 북한정권은 북침의 일요일이라고 합니다. 미국이 남한과 공모하여 전쟁을 일으킨 일요일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이를 근거로 북한 정권은 주민 들의 적대의식 속에 단 하루의 평안도 있어선 안 된다고 늘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의 달력을 펼쳐보면 일요일의 평화는 언제나 김 씨 정권에 의해서 파괴되어 왔습니다. 우선 6,25는 김일성 정권이 도발한 남침의 일요일이었습니다.

그 진실은 구소련 외교문건에서도 이미 증명됐고,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전쟁을 허락해줄 것을 간청했던 김일성의 자필편지도 세상에 알려져 있습니다. 북침이냐? 남침이냐? 하는 의문은 전쟁이 시작되어 3일 만에 평양이 아니라 서울이 점령당했던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일요일에서부터 시작된 우리 민족의 비극은 김 씨 정권에 의해 끊임없이 상처받고 피 흘려 왔습니다.

전쟁 이후에도 북한은 일요일을 노려 계속적인 무력도발을 감행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도발이 1,21청와대 기습사건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김신조 외 31명의 북한 무장게릴라들이 서울 도심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다가 소멸된 사건이었는데요. 1968년 1월 21일, 그 날도 바로 일요일이었습니다. 만약 북한 정권의 의도대로 박정희 암살이 성공했다면 그 권력공백을 틈 타 북한은 또다시 일요일에 제2의 6,25전쟁을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 살아남은 무장 게릴라 김신조는 현재 서울 근교에서 사랑의 성경을 전파 하는 목사로 살고 있습니다. 북한의 남한 대통령 암살시도는 그 한번 뿐이 아니었습니다. 박 대통령에 이어 북한은 그 다음 정부의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버마에서 폭파사건을 감행합니다. 북한에서도 버마사건으로 다들 알고 있는데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몇 분간의 차이로 위험을 면했지만 대신 한국 정부의 장, 차관 17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아웅산 테러 폭파사건으로 기록된 1983년 10월 9일, 그날도 역시 일요일이었습니다.

버마 주재 북한 대사관은 그 사건을 계기로 추방당하게 됩니다. 북한 정권의 테러는 비단 남한 권력층만을 상대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서울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 정권은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편 707기 보잉기를 폭파시켜 남한근로자 93명을 비롯한 총인원115명을 테러하기도 하였습니다. 1987년 11월 29일, 'KAL기 폭파사건'으로 전 세계를 경악시킨 그 날도 일요일이었습니다.

북한은 KAL기 폭파사건을 부정했지만 김정일 지시를 직접 받고 파견됐던 테러범 김현희의 생존 증언으로 솔직하지 못한 그 범죄까지 추가되어 오늘까지도 국제테러지원국으로 지명된 상황입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경제난의 책임은 미국 주도의 국제봉쇄 때문이라고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봉쇄원인은 이념문제나 체제가 달라서도 아닙니다. 김정일의 국제범죄들에 대한 상응한 조치였고 또 지금 현재까지도 그에 대한 그 어떤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국제사회를 상대로 보다 위협적인 도발을 감행함으로서 동맹국인 중국까지도 국제봉쇄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자해공갈을 하고 있습니다. 2009년 4월 5일, 세계가 일요일의 명상을 즐길 무렵 김정일 정권은 일명 “광명성2호”라는 장거리 운반로켓을 발사하였습니다. 북한 TV방송은 군사적 목적이라는 세계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평화적 인공위성이라고 선전했지만 이를 믿을 국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네 바퀴 자동차도 변변히 못 만드는 국력으로 주민들의 삶이 아니라 군사적 팽창에만 전념하는 김정일 정권에 분노하여 국제사회는 제재를 결의하게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북한과의 동맹을 의식하여 기권 표를 던졌지만 그로부터 한 달 후 2009년 5월 24일 북한 정권은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의 일요일을 향해 2차 핵실험까지 감행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장거리 운반로켓도 핵실험도 모두 실패작이지만 그래도 계속되는 그 모험적인 불장난에 끝끝내 중국은 격분하여 유엔안보리이사회에서 북한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결국 남한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저질로 온 테러와 도발의 일요일들이 김 씨 정권을 위협하는 제재의 일요일로 돌아온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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