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애완견을 좋아하는 김정일
장진성∙탈북 작가
2011.12.06
2011.12.06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탈북자 장진성 씨가 전하는 김 씨 일가의 실체, 노동당 통일 전선부
대남 정책과 연락소 부원이었고 김정일을 두 차례나 접견한 일급작가 이었던
장진성 씨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60년 독재 체제와 현대판 봉건 세습에 대한
진실과 배경을 밝힙니다.
북한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같은 자본주의 강국들을 황금만능, 물질만능의 사회라고 비판하곤 합니다. 한때는 그 대표적 사례로 외국의 애완견 문화를 주제로 하는 편집물들을 조선중앙TV에서 방영했던 적이 있습니다. 길가에 누워있는 노숙자들과 애완견 호텔에서 마사지를 받는 강아지들을 번갈아 소개하면서 말입니다.
요즘 이 지구촌 어디 가나 인권 존중이 동물애호로까지 이어지는데 그걸 비판하는 나라가 아마 북한뿐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 방송내용들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환상을 주입시키는 정 반대의 결과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도 저렇게 사는데,,,”하면서 개만 못한 자기들의 삶을 비교해서 한탄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방송이 나가고 며칠 후였습니다. 그때는 300만 대량아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1997년경이었습니다. 중앙당 간부들이 밀집된 평양 시 중구역 창광 동으로 한 여인이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애완견을 끌고 산책을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범죄자라도 되는 듯 그 여인을 에워쌌습니다. 엊그제 TV에서 보았던 대로 강아지에게 옷을 입히다니, 목걸이를 해주다니, 그런 비난들이 고함으로 번지다 못해 돌까지 날아들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애완견 주인이 자기 남편이 중앙당 간부라며 호통 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간부 사모님이 맞는지 확인해보자며 그 여인을 끌고 분주소로 가게 됐고, 그렇게 되어 그 사건은 김정일 에게 까지 보고되었습니다.
당 조직부는 간부 가족으로서의 품행을 손상시켰고, 고난의 행군시기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다며 처벌을 제안했지만 김정일은 화를 내었습니다. 애완견을 산책시켰을 뿐인데 뭐가 잘못이냐면서 당 조직부는 사람 잡는 부서가 아니라고 경고까지 주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김정일은 조선중앙TV가 “개 같은 세상”이란 제목으로 자본주의 나라들을 비판 방송하고 있는 줄 몰랐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평시 강아지를 좋아하는 자신의 취미를 변명하느라 화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제가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갈마초대소로 갔을 때도 그는 애완견을 끌고 접견실로 나왔었습니다. 아무튼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발생했던 애완견 산책사건이라 “창광동 개사건” 소문은 하루 만에 온 평양 시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개주인은 분주 소에 잡혀가고 개는 즉석에서 맞아죽었다는 소문으로 커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개까지도 용서해준 김정일의 광폭정치 사랑이 다시 알려지면서 참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치도 김정일이가 허락했다는 듯 창광동의 간부들과 부인들, 자녀들까지 너도나도 애완견을 끌고 산책을 나온 것입니다. 그 강아지들은 모두 김정일의 선물이었는데 그동안 집에서만 감추고 키우자니 사람도, 강아지도 오죽 답답했겠습니까? 김정일의 말이 곧 법이라는 신격화를 이용한 개들의 반란인 셈이었던 것이지요. 또한 방송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외국의 극심한 빈부격차가 북한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북한에선 애완견이 권력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애완견을 가진 간부들은 김정일로 부터 개를 선물 받을 만큼, 좋게 말하면 측근이고 나쁘게 말하면 충견이란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한에서 애완견은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무거나 주어먹는 토종개와 달리 일단 애완견이 있는 집은 개도 밥을 먹을 만큼 좀 먹고사는 처지라는 것을 과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여 애완견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그때부터 북한에선 애완견 외화벌이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애완견만 전문적으로 수입하여 파는 회사들도 있었습니다.
큰 강아지일수록 값이 비쌌는데 대부분 장사목적이어서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컷이 두 배로 비쌌습니다. 희소성 있는 품종의 수컷 같은 경우에는 한번 교배를 시킬 때마다 100불씩 받기 때문에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교잡된 다양한 잡종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북한은 짧은 기간에 말 그대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개판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다 나니 세상에 없는 애완견 사기사건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달러가 없어 애완견 씨도 얻을 수 없는 어떤 집에서는 토종개를 얼룩강아지로 염색하여 팔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주부들이 모여 앉으면 남편이 아니라 애완견 덕에 집안 살림이 좀 나아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단지 상업적 목적으로만 애완견이 분양되다 나니 2년도 채 안 돼 시장이 곧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에서 애완견을 사고팔지 못하도록 제한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나오면서 애완견 인기는 아예 뚝 떨어졌습니다. 김정일이 그런 규정을 만들도록 한 계기는 어느 간부의 차가 갑자기 도로로 달려드는 애완견에 놀라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려는 사람 보다 팔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서 버려지는 애완견들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밖에서 키운 토종개보다 집에서 키운 애완견의 육질이 더 좋다는 설과 함께 애완견 고기만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음식점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음식점이 평양 시 락랑 구역 통일거리에 위치한 “락랑단고기국집”입니다. 이처럼 사람 뿐 아니라 애완견도 불우해질 수밖에 없는 북한인 것입니다.
북한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같은 자본주의 강국들을 황금만능, 물질만능의 사회라고 비판하곤 합니다. 한때는 그 대표적 사례로 외국의 애완견 문화를 주제로 하는 편집물들을 조선중앙TV에서 방영했던 적이 있습니다. 길가에 누워있는 노숙자들과 애완견 호텔에서 마사지를 받는 강아지들을 번갈아 소개하면서 말입니다.
요즘 이 지구촌 어디 가나 인권 존중이 동물애호로까지 이어지는데 그걸 비판하는 나라가 아마 북한뿐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 방송내용들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환상을 주입시키는 정 반대의 결과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도 저렇게 사는데,,,”하면서 개만 못한 자기들의 삶을 비교해서 한탄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방송이 나가고 며칠 후였습니다. 그때는 300만 대량아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1997년경이었습니다. 중앙당 간부들이 밀집된 평양 시 중구역 창광 동으로 한 여인이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애완견을 끌고 산책을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범죄자라도 되는 듯 그 여인을 에워쌌습니다. 엊그제 TV에서 보았던 대로 강아지에게 옷을 입히다니, 목걸이를 해주다니, 그런 비난들이 고함으로 번지다 못해 돌까지 날아들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애완견 주인이 자기 남편이 중앙당 간부라며 호통 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간부 사모님이 맞는지 확인해보자며 그 여인을 끌고 분주소로 가게 됐고, 그렇게 되어 그 사건은 김정일 에게 까지 보고되었습니다.
당 조직부는 간부 가족으로서의 품행을 손상시켰고, 고난의 행군시기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다며 처벌을 제안했지만 김정일은 화를 내었습니다. 애완견을 산책시켰을 뿐인데 뭐가 잘못이냐면서 당 조직부는 사람 잡는 부서가 아니라고 경고까지 주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김정일은 조선중앙TV가 “개 같은 세상”이란 제목으로 자본주의 나라들을 비판 방송하고 있는 줄 몰랐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평시 강아지를 좋아하는 자신의 취미를 변명하느라 화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제가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갈마초대소로 갔을 때도 그는 애완견을 끌고 접견실로 나왔었습니다. 아무튼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발생했던 애완견 산책사건이라 “창광동 개사건” 소문은 하루 만에 온 평양 시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개주인은 분주 소에 잡혀가고 개는 즉석에서 맞아죽었다는 소문으로 커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개까지도 용서해준 김정일의 광폭정치 사랑이 다시 알려지면서 참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치도 김정일이가 허락했다는 듯 창광동의 간부들과 부인들, 자녀들까지 너도나도 애완견을 끌고 산책을 나온 것입니다. 그 강아지들은 모두 김정일의 선물이었는데 그동안 집에서만 감추고 키우자니 사람도, 강아지도 오죽 답답했겠습니까? 김정일의 말이 곧 법이라는 신격화를 이용한 개들의 반란인 셈이었던 것이지요. 또한 방송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외국의 극심한 빈부격차가 북한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북한에선 애완견이 권력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애완견을 가진 간부들은 김정일로 부터 개를 선물 받을 만큼, 좋게 말하면 측근이고 나쁘게 말하면 충견이란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한에서 애완견은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무거나 주어먹는 토종개와 달리 일단 애완견이 있는 집은 개도 밥을 먹을 만큼 좀 먹고사는 처지라는 것을 과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여 애완견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그때부터 북한에선 애완견 외화벌이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애완견만 전문적으로 수입하여 파는 회사들도 있었습니다.
큰 강아지일수록 값이 비쌌는데 대부분 장사목적이어서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컷이 두 배로 비쌌습니다. 희소성 있는 품종의 수컷 같은 경우에는 한번 교배를 시킬 때마다 100불씩 받기 때문에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교잡된 다양한 잡종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북한은 짧은 기간에 말 그대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개판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다 나니 세상에 없는 애완견 사기사건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달러가 없어 애완견 씨도 얻을 수 없는 어떤 집에서는 토종개를 얼룩강아지로 염색하여 팔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주부들이 모여 앉으면 남편이 아니라 애완견 덕에 집안 살림이 좀 나아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단지 상업적 목적으로만 애완견이 분양되다 나니 2년도 채 안 돼 시장이 곧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에서 애완견을 사고팔지 못하도록 제한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나오면서 애완견 인기는 아예 뚝 떨어졌습니다. 김정일이 그런 규정을 만들도록 한 계기는 어느 간부의 차가 갑자기 도로로 달려드는 애완견에 놀라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려는 사람 보다 팔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서 버려지는 애완견들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밖에서 키운 토종개보다 집에서 키운 애완견의 육질이 더 좋다는 설과 함께 애완견 고기만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음식점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음식점이 평양 시 락랑 구역 통일거리에 위치한 “락랑단고기국집”입니다. 이처럼 사람 뿐 아니라 애완견도 불우해질 수밖에 없는 북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