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김정일의 넷째 부인 김옥

워싱턴-이규상 leek@rfa.org
2011.05.10
kimok-cctv-305.jpg 지난해 5월 중국 CCTV가 방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원자바오 총리의 회담장에 김영일 당 국제부장, 김양건 당 통전부장과 나란히 배석한 김옥으로 추정되는 여성(왼쪽).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는 여러 명의 공식, 비공식 부인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외부에 알려진 부인들로는 김정일의 첫 동거녀였던 성혜림과 재일교포출신 고영희, 그리고 김정일의 비서로 일해 온 김옥 등이 있습니다. 특히 김옥은 김정일의 해외 방문 때 수행하는 등 다른 부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의 실체 오늘은 김정일의 넷째 부인 김옥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옥은 1964년 8월 생으로 김정일 보다는 스물두 살이나 연하입니다. 김옥은 금성 고등중학교를 나와 평양 음악 무용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왕재산 경음악단의 피아노 연주자로도 활동했습니다. 1980년 대 부터는 김정일의 개인 비서를 맡아 20여 년 동안 김정일의 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의 말입니다.

정성장
: 김옥이란 여성은 김정일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비서였다. 직책은 낮았지만 김정일을 항상 따라 다녔기 때문에 북한의 고위 간부들도 김옥에 대해서는 반은 낮추고 반은 높이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간부들이 김옥을 옥이 동지라고 보통 불렀다.

외부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옥은 영화배우 출신 성혜림이나 만수대 예술단 출신 고영희 만큼 미인은 아니지만 아주 똑똑하고 처세술에 능한 여성이라고 합니다. 북한의 모든 고위 간부들이 김정일 앞에서는 함부로 말을 못하는데 비해 김옥은 김정일에게 가끔씩 서슴지 않고 반말을 하고 또 신경질도 부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옥이 20여년 가까이 김정일의 측근에서 활동했지만 김옥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도 이후였습니다.

김옥은 2000년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국방위 과장 자격으로 동행했고, 김정일이 2005년 7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면담 했을 때도 배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김옥은 동행했습니다.

김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까지만 해도 남한과 미국의 정보당국은 김옥의 존재를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김옥이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가다가 바퀴가 걸려 쩔쩔 매고 있었는데 북한 측 대표단 중 그 어느 누구도 김옥을 도와주지 않는 것을 보고 정보당국은 김옥이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성혜림과 고영희 등 김정일의 전 처들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김옥은 공식 직함을 가지고 김정일의 국정운영을 보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유북한방송의 김성민 국장은 김옥이 일찍부터 김정일을 수행하며 북한의 정치와 권력구조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은 북한 고위층 사이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김성민
: 고영희가 있을 때부터 김옥이 바람 잡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북한의 외교관 출신 탈북자들, 그리고 중앙당 출신 탈북자들 입에서 나온 지는 오래됐고 얘기가 많이 됐다.

김옥은 김정일의 개인 금고를 관리할 정도로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의 수기에 따르면 김정일의 집무실에는 거대한 금고가 있었는데 김옥이 직접 외국에 나가는 간부들에게 외화를 꺼내 지급했다고 합니다. 후지모토 겐지 본인도 김옥으로 부터 직접 월급봉투를 지급받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김옥의 영향력은 김정일의 셋째 부인 고영희가 사망하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고영희가 사망하자 김옥은 2006년 7월부터 김정일과 동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김옥이 김정일의 전처 고영희를 암살하려고 음모를 꾸몄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옥을 김정일의 비서로 소개한 것은 다름 아닌 김정일의 셋째 부인 고영희 이었고 두 사람은 경쟁관계가 아니었다고 정성장 박사는 말합니다.

정성장: 고영희와의 관계는 상당히 좋았다. 후지모토 겐지는 고영희와 김옥의 관계를 자매 같은 관계로 묘사하고 김옥이 소박하고 야심이 없었기 때문에 고영희가 김옥에 대해 특별히 경계를 하거나 견제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 내부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고영희는 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자신이 낳은 김정철과 김정은의 앞날을 김옥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또한 고영희가 살아있을 때도 김옥을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김옥이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하고 또 북한 권력구조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 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외부에서는 김옥이 김정일의 후계구도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성장 박사는 김옥이 후계구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정성장: 김옥의 성향이나 지위에 비춰 봤을 때 고영희 사망이후 고영희의 자리를 채웠다 하더라도 과거 고영희가 가졌던 영향력과 위상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옥은 2008년 초 김정일의 딸을 낳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만약 김옥과 김정일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고, 김정일이 후계구도를 정하지 못하고 사망했더라면 김옥의 위상이 더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김정일이 아직도 건제하고 또 고영희의 차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한 이상 김옥의 앞날은 확실치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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