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김일성 개인숭배운동

워싱턴-이규상 leek@rfa.org
201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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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5주년 되는 올해 8월 15일 평양시민들이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의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광복 65주년 되는 올해 8월 15일 평양시민들이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의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전의 책임을 물어 자신의 숙적들을 제거한 김일성은 북한에 1인 독재체제 기반을 구축하고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20세기 역사에서 보기 드문 대대적인 개인숭배운동을 시작합니다. 김 씨 일가의 실체, 오늘은 김일성의 우상화 작업에 대해 살펴봅니다.

‘어버이 수령’, ‘김일성 그이는 한울님’, ‘위대한 대원수’ 등 김일성을 호칭하는 수식어는 수 십 여개가 넘습니다. 1960년대 초에는 그를 우상화하는 경칭과 찬양의 수사가 무려 180여자에 이른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가 사망한 지 16년이 지난 지금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남한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박사는 이러한 김일성 우상화 운동은 해방직후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앞세운 소련군정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정성장: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는 매우 일찍, 1945년 해방 직후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때 소련의 로마넨코 사령관이 북한 지도자들에게 김일성을 가장 뛰어난 독립운동가로 소개하고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우게 된다.

해방 직후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는 그의 항일투쟁업적과 조선의 해방자로서의 인식을 심어주는 노력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 운동은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으로 확대 됐습니다. 정성장 박사의 말입니다.

정성장
: 김일성에 대한 찬양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단계로 나가게 된다. 8월 종파사건 이전만 해도 당내 여러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은 여러 독립운동가들 중 뛰어난 독립 운동가로 내세워 졌다면 56년 종파사건 이후에는 김일성의 항일무장 운동만이 일재 시대 항일투쟁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김일성의 활동을 절대화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항일 빨치산의 수기였다.

1959년 5월 ‘조선로동당력사연구소’에서 발간한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총 12권으로 이뤄진 빨치산 구성원들의 수기입니다. 이 수기 내용을 보면 김일성은 축지법을 써서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모래로 쌀을 만들고 가랑잎을 타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수기에는 또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가 항일투쟁당시 15년간 10만 여회의 전투를 벌여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하루 평균 20여회의 전투를 벌였다는 얘기입니다. 이 밖에도 “김일성이 한번 노려보면 사나운 적도 가을 풀같이 쓰러지며, 미소로 바라보면 마른 나무에도 잎이 돋고 꽃이 핀다.”는 어린아이도 믿지 않을 내용들을 사실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성장 박사의 말입니다.

정성장: 1967년에는 갑산파 간부들이 숙청되는데 갑산파 간부들이 숙청되면서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는 신앙적인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김일성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수령만 믿으면 된다.”라는 수령 결정론...

김일성에 대한 찬양은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는 물론 북한의 예술작품에도 깊이 침식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예술역사를 연구한 영국의 미술사학자인 제인 포털 대영박물관 부관장은 ‘통제하의 북한예술’이란 책을 통해 김일성의 개인우상화는 중국의 진시황제에 버금갈 정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포털 부관장은 김일성에 대한 숭배는 북한의 출판물이나 노래와 시 그리고 이야기 등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김일성만큼 자신의 이름을 딴 건물을 많이 가졌던 지도자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포털 부관장은 또 북한 예술작품들에서 드러난 김일성 개인숭배 흔적들은 마치 하나의 종교를 연상시킨다고 말합니다. 다만 김일성의 종교는 합리적인 사고 과정인 아닌 무조건적인 믿음이며 사회주의권의 대표적인 독재자 스탈린과 모택동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개인숭배라고 말합니다.

김일성과 그의 추종자들은 또 지난 반세기동안의 경제파탄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에 수많은 우상화 조각품들과 건물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1972년 김일성의 60회 생일을 기념해 만수대 언덕에 세운 김일성 동상과 1982년 70회 생일을 기념해 세운 높이 170미터의 주체사상탑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주요도시에 세운 70여개의 대형 김일성 동상, 그리고 곳곳에 널려있는 김일성의 흉상과 석고상을 합치면 김일성에 대한 조각품들은 무려 3만 5천 여 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는 김일성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김일성 숭배운동은 그의 가계와 혈통에 대한 우상화로 확대되어 그의 아버지와 조부, 심지어는 외가 친척의 행적까지 날조되어 북한 역사책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남한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의 전미영 교수의 설명입니다.

전미영: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라는 사람이 셔먼호 사건을 해결한 사람이라고 기록을 해 놨다. 그리고 3.1운동을 이끈 사람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 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때 김일성도 어린나이에 같이 참여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북한의 김일성 개인숭배운동은 전 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김일성 개인숭배운동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정성장 박사는 말합니다.

정성장: 사회주의권들 중에서도 동구권 국가들은 김일성의 대한 개인숭배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21세기로 접어든 오늘날에도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와 우상화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승계 받은 김정일은 북한의 혁명과업은 대를 이어 수행되어야 한다며, 김일성의 권위를 이용해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김일성에 대한 찬양과 우상화를 더욱더 강화 하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의 실체 이번 주 순서를 마칩니다. 진행에 이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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