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3대 세습
워싱턴-이규상 leek@rfa.org
2010.12.07
2010.12.07
사진-연합뉴스 제공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이른바 권력세습은 봉건사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체재로 현대 정치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2대에 걸친 세습도 모자라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도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서 3대째 세습을 준비하는 북한 지도부를 바라보는 국제사회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의 실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과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과정을 비교해 봅니다.
최근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과정을 보면 세습 준비라기 보다는 세습을 밀어 붙인다는 표현이 맞은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에야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김정은은 2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공식무대에 등장 하자마자 대장칭호를 받은데 이어 지난 11월 6일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사망하면서 대장칭호를 받은 지 40여 일만에 북한 권력의 실질적인 2인자로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세습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2인자가 될 것 이라는 것은 예측된 일이었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그것도 여러 단계의 권력 서열을 뛰어넘어 2인자가 됐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는 김정은의 이런 초고속 진급은 김정일의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건강할때 권력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후계체계를 구축해 갈 수 있었다면, 김정은 같은 경우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아주 불안하고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기 때문에 후계 체계 구축이 급속도로 진행 되고있다.>
과거 김정일이 김일성으로 부터 권력을 이어 받는 데는 3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이 처음부터 김일성의 후계자로 낙점 됐던 것도 아닙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작은 아버지인 김영주 등 정적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후계자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습니다.
김정일은 중앙당 비서처 참사실과 중앙당 조직 지도부 중앙기관 지도과 책임 지도원 그리고 조직 지도부 부부장 등을 거치면서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됩니다.
김정일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권력승계를 위한 본격적인 경험축척과 권력 기반을 구축하게 됐습니다.
김일성은 결국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자기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인물을 가늠하다고 결국 자신의 아들 김정일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준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지목된 것은 1973년 9월 열린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이었습니다. 여기서 김정일은 당 중앙위원회 조직 밎 선전 담당 비서에 임명됐고 다음해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는 당 중앙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 됐습니다.
이 때부터 김정일은 자신의 정적을 몰아내기 위한 숙청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서대숙 전 하와이대 석좌 교수는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킬까봐 73, 74년에 시작했는데, 아는 사람들이 방해를 놓을 까봐 김정일의 이름을 '당중앙'으로 했다. 아버지가 김정일에게 당에서 무슨 일을 해라 하고 지식했다. 김정일은 잘 하지 못했다. 그 때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동규 같은 사람은 제 3인자 인데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에 비해 김정은은 자신의 아버지 보다 정적이 적은 편이라고 정성장 박사는 말합니다.
<김정은 같은 경우 그의 어머니 고영희가 28년간 김정일과 같이 살면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부상할수 있는 좋은 조건들을 만들어 놓고 사망했다. 김정일이 어렸을때 사망한 김정숙 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렇지만 서대숙 교수는 김정은은 권력 세습과정도 김정일의 권력 세습만큼이나 어려움을 격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노력을 하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26살이고 아무것도 한 것도 없다. 승계한다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 애가 성공을 하려면...>
노동당에 입당해서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기 까지 16년이 걸렸고 또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에도 주민들의 세습체제에 대한 반발을 의식해 4년 동안의 유훈통치를 내걸었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빠른 시간 안에 북한 주민들과 반대세력의 반감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지난 9월 공식석상에 처음 나섰을 때 할아버지 김일성이 생전에 즐겨 입던 검은색 노동자 작업복을 입고 또 머리 모양도 김일성의 머리모양을 흉내 낸 것도 북한주민들의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 환심을 사기 위한 계략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의 어려운 경제상황과 체제에 대한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해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폭격과 같은 무력도발을 계속적으로 일으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송영대 전 남한 통일원 차관의 말입니다.
<현재 북한의 상황이 김정은의 성격이 무모하고 저돌적인데다가 북한군부는 대남관계에 있어 강경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북한 식량난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하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자신의 체계를 안착시키기 위해 긴장 조성이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김정은이 성공적으로 3대 세습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가장 큰 변수는 김정일의 건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1, 2년 내에 갑작이 사망한다면 김정은이 북한의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아주 힘들어질 것이며 북한 내부에서의 반란도 배재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복장이나 머리모양 그리고 행동까지 흉내를 내고 있는 김정은은 김일성이 생전 지키지 못한 '이밥에 고깃국'을 북한 주민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다시 내걸고 있습니다. 과연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하기 이전에 북한의 전성기를 불러올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의 실체 이번 주 순서를 마칩니다. 진행에 이규상입니다.
최근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과정을 보면 세습 준비라기 보다는 세습을 밀어 붙인다는 표현이 맞은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에야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김정은은 2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공식무대에 등장 하자마자 대장칭호를 받은데 이어 지난 11월 6일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사망하면서 대장칭호를 받은 지 40여 일만에 북한 권력의 실질적인 2인자로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세습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2인자가 될 것 이라는 것은 예측된 일이었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그것도 여러 단계의 권력 서열을 뛰어넘어 2인자가 됐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는 김정은의 이런 초고속 진급은 김정일의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건강할때 권력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후계체계를 구축해 갈 수 있었다면, 김정은 같은 경우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아주 불안하고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기 때문에 후계 체계 구축이 급속도로 진행 되고있다.>
과거 김정일이 김일성으로 부터 권력을 이어 받는 데는 3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이 처음부터 김일성의 후계자로 낙점 됐던 것도 아닙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작은 아버지인 김영주 등 정적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후계자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습니다.
김정일은 중앙당 비서처 참사실과 중앙당 조직 지도부 중앙기관 지도과 책임 지도원 그리고 조직 지도부 부부장 등을 거치면서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됩니다.
김정일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권력승계를 위한 본격적인 경험축척과 권력 기반을 구축하게 됐습니다.
김일성은 결국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자기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인물을 가늠하다고 결국 자신의 아들 김정일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준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지목된 것은 1973년 9월 열린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이었습니다. 여기서 김정일은 당 중앙위원회 조직 밎 선전 담당 비서에 임명됐고 다음해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는 당 중앙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 됐습니다.
이 때부터 김정일은 자신의 정적을 몰아내기 위한 숙청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서대숙 전 하와이대 석좌 교수는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킬까봐 73, 74년에 시작했는데, 아는 사람들이 방해를 놓을 까봐 김정일의 이름을 '당중앙'으로 했다. 아버지가 김정일에게 당에서 무슨 일을 해라 하고 지식했다. 김정일은 잘 하지 못했다. 그 때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동규 같은 사람은 제 3인자 인데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에 비해 김정은은 자신의 아버지 보다 정적이 적은 편이라고 정성장 박사는 말합니다.
<김정은 같은 경우 그의 어머니 고영희가 28년간 김정일과 같이 살면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부상할수 있는 좋은 조건들을 만들어 놓고 사망했다. 김정일이 어렸을때 사망한 김정숙 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렇지만 서대숙 교수는 김정은은 권력 세습과정도 김정일의 권력 세습만큼이나 어려움을 격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노력을 하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26살이고 아무것도 한 것도 없다. 승계한다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 애가 성공을 하려면...>
노동당에 입당해서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기 까지 16년이 걸렸고 또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에도 주민들의 세습체제에 대한 반발을 의식해 4년 동안의 유훈통치를 내걸었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빠른 시간 안에 북한 주민들과 반대세력의 반감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지난 9월 공식석상에 처음 나섰을 때 할아버지 김일성이 생전에 즐겨 입던 검은색 노동자 작업복을 입고 또 머리 모양도 김일성의 머리모양을 흉내 낸 것도 북한주민들의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 환심을 사기 위한 계략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의 어려운 경제상황과 체제에 대한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해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폭격과 같은 무력도발을 계속적으로 일으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송영대 전 남한 통일원 차관의 말입니다.
<현재 북한의 상황이 김정은의 성격이 무모하고 저돌적인데다가 북한군부는 대남관계에 있어 강경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북한 식량난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하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자신의 체계를 안착시키기 위해 긴장 조성이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김정은이 성공적으로 3대 세습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가장 큰 변수는 김정일의 건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1, 2년 내에 갑작이 사망한다면 김정은이 북한의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아주 힘들어질 것이며 북한 내부에서의 반란도 배재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복장이나 머리모양 그리고 행동까지 흉내를 내고 있는 김정은은 김일성이 생전 지키지 못한 '이밥에 고깃국'을 북한 주민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다시 내걸고 있습니다. 과연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하기 이전에 북한의 전성기를 불러올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의 실체 이번 주 순서를 마칩니다. 진행에 이규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