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산혁명열사릉 (1)

김주원∙ 탈북자
201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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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이 조국해방전쟁승리 65 주년을 기념해 대성산혁명열사릉과 신미리애국열사릉,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에 화환을 올리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조국해방전쟁승리 65 주년을 기념해 대성산혁명열사릉과 신미리애국열사릉,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에 화환을 올리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북한동포 여러분! 8 15일이면 우리나라가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가 73년이 됩니다. 그동안 북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된 반면에 또 많은 사람들은 김씨 일가의 충신으로 평가되어 그 자녀들이 현재 북한의 실세들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의 고위간부들과 지방에서도 한자리 하는 중앙당 비서국 비준대상급 간부들의 조부모들과 부모들은 대성산혁명열사릉과 혜산혁명열사릉, 신미리애국열사릉을 비롯하여 북한정부가 별도로 건설한 묘소들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김일성과 함께 항일혁명을 했던 사람들 중에 1부류는 평양시 대성산 주작봉에 있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치되어 있고 해방 전에 국내에서 반일운동을 하였던 사람들은 혜산혁명열사릉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미리애국열사릉은 북한에서의 소위 혁명 2세로 불리는 김정일의 측근으로 북한의 고위직에서 근무하였거나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의 묘소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혁명열사릉은 혁명 1, 애국열사릉은 혁명 2세의 묘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김정일이 중풍으로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면서 그 때부터 북한정권은 애국열사릉을 지방에도 신축해 앞으로는 김정은의 측근들도 이 묘역들에 안치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북한에 새로 신축된 애국열사릉은 평안남도 평성, 강원도 원산, 황해북도 사리원 등 북한의 각 도의 도 소재지들에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북한에서는 일반주민들은 공동묘지라고 지정된 지역에 묻혔다가도 지방 인민위원회에서 갑자기 무슨 사유를 들어 옮기라고 하면 할 수 없이 이곳저곳으로 옮겨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것은 북한정권이 개인들의 토지소유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묘소자리를 사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가소유의 토지에 묘소를 쓰다 보니 국가에서 옮기라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혁명열사릉이나 애국열사릉에 묻히면 그 관리를 국가가 해주는 것은 물론 다시 어디론가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평등사회라고 주장하는 북한사회의 불평등한 사회적인 모순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망자의 묘소 안치를 통한 북한정권의 열사릉 건축은 이미 김일성시대부터 시작된 충성경쟁을 위한 것임은 분명합니다. 대성산혁명열사릉은 경치가 아름다운 대성산의 주작봉마루에 건축한 대성산혁명열사릉에 대해 북한정권도 ‘혁명전통 교양마당’이라고 부릅니다. 대성산의 항일혁명열사릉은 북한정권이 6.25남침전쟁이 끝났던 1954년부터 대성산 기슭의 미천호 옆에 조성하였던 것을 1975 10월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새로 조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1985년에는 김정일의 지시로 막대한 돈을 들여 반신상까지 세우고 대리석과 화강석 등으로 지금처럼 웅장하게 건축하였습니다.

노동당 창건 30주년을 맞아 1975년에 건축할 당시에도 후계자로 권세를 부리기 시작한 김정일이 혁명 1세대들을 존경하고 그들을 따라 배우도록 묘소를 혁명전통교양마당으로 건설하라고 지시하였고 10년 후인 1985년에는 후계세습의 정당성을 위시하기 위해 생모인 김정숙의 묘소를 열사릉의 중심에 안치하는 것을 계기로 더 웅장하고 현대적으로 건축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대성산혁명열사릉은 평양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역 옆의 고려호텔에서 중구역 버드나무거리를 지나 모란봉구역 개선문거리를 거쳐 대성구역의 여명거리를 통과하여 동북방향으로 약 14km 거리에 있는 대성산의 주작봉마루에 위치하고 있어 평양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양지하철 낙원역에서 걸어서 약 700미터만 가면 대성산혁명열사릉 입구에 도착할 수 있어 평양시민들은 물론 평양시안의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찾아가기 쉬워 학교들에서는 정기적으로 혁명전통 교양을 위한 학습과정으로 이곳을 단체로 방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성산혁명열사릉은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세워진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나 재외동포들이 반드시 방문기간의 첫 일정으로 들려야 하는 장소로 정해져 있습니다. 해발고가 약 184m인 대성산 주작봉 마루에 약 35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조성된 이 열사릉에는 일제강점시기에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활동을 하였던 사람들 중에서도 160명의 지휘관급 인물들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유골이 묻힌 자리에 화강석묘판을 눕히고 여기에 조각상을 얹은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비석에는 이름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이라는 직책과 함께 생년월일과 사망년월일, 그리고 해방이후 북한에서 활동한 직책이 적혀져 있습니다.

혁명열사릉 입구에는 조선식 기와를 얹은 웅장화려한 화강석 대문이 세워져 있고 중심에는 김일성의 글씨체로 ‘혁명렬사릉’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져 있습니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이 현판의 글씨체가 김정일의 글씨체라고 하지만 사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되면서 1970년대 후반에 김일성의 글씨체를 모방하는 연습을 많이 하였던 이유로 두 사람의 글씨체는 유사하기 때문에 누구의 글씨체라고 말하기는 딱히 어려워 보입니다. 김정일의 덕성실기를 수록한 ‘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에도 김정일의 충성심에 대하여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사업을 보장해 드리려고 수령님의 글씨체를 그대로 연습하여 6차당대회 보고문 수정도 해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입구에서부터는 위로 올려다 보아도 아득해 보이는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 수는 무려 400개가 된다고 하니 그 거리를 가히 짐작하리라 생각합니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은 열사릉을 시찰하면서 계단이 아니라 차로를 따라 올라가곤 했지만 북한주민들은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여 방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혹시 해외방문객들 중에 걷기 불편해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계단이 아니라 우회로를 따라 차로 올라가도록 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드문 일입니다. 입구에서 계단을 오르는 전 노정과 묘소가 안치된 열사릉의 가장자리들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어 언제나 은근히 흘러나오는 ‘빨치산추도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 곡이 어찌 보면 슬프게도 들리고 또 장엄하게 들리기도 하였던 기억이 나는데 이것은 결국 그 당시로서는 저도 세뇌 될 대로 세뇌되었던 저의 의식 상태의 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400개의 계단을 다 오르게 되면 열사들의 묘소들을 보기 전에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교양마당 공간이 있습니다. 높이가 8.2m, 너비가 3.7m가 되는 큰 화강석 돌기둥 두 개가 양쪽으로 세워진 문주들은 지붕부분은 석탑모양으로 가공된 화강석이 올려져 있고 양 면들에는 오각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을 거쳐서 다시 묘소방향으로 52개의 계단을 더 오르면 좌우 양쪽으로 세워진 거대한 추모군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추모군상들은 이곳에 묻힌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 벌렸던 빨치산투쟁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각각 11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조각군집상에 대해 좌측에 있는 것은 방어편, 우측에 있는 것은 진군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뒷면에는 그들이 나무에 새겼다고 주장하는 ‘구호나무’와 백두산밀림을 형상화였습니다.

열사릉에는 항상 전문해설사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방문단체별로 맡아서 열사릉을 돌아보는 전 기간 해설을 해줍니다. 우선 혁명열사릉이 건축되게 된 배경에 대해 혁명선배들을 존경하는 김정일의 도덕적 의리에 대해 설명하고 열사릉의 규모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그리고 교양마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화강석으로 된 김일성의 친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길이가 18m, 높이 4.2m, 무게 470t에 달하는 이 비속에는 김일성의 필체로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김일성, 1985.10.10” 라는 글발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 세워진 헌시비에도 글발이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떠나간 나이와 고장은 저마다 달랐어도 돌아와 안긴 품은 하나인데 대성산 혁명열사릉, 항일전에서 쓰러진 열사들, 여기 고이 잠들어 있나니 사람들이여 삼가 옷깃을 여미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친필비와 헌시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화환진정대에 단체나 개인별로 준비해간 화환이나 헌화를 놓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안치된 묘소들을 정해진 코스를 따라 돌아보게 됩니다. 이처럼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투쟁을 한 북한의 ‘혁명1세’라고 불리는 핵심골간은 200여 명 안팎입니다. 이들 중에는 김일성의 부인이었던 김정숙, 김일성의 동생인 김철주, 삼촌인 김형권 등 가계들과 소련과 중국에서 반일활동을 벌렸던 인물들, 그리고 김일성과 소련군으로 복무했던 소련극동군 88저격여단 출신들도 있습니다. 살아서도 충신으로, 죽어서도 혁명전통 교양의 본보기로 내세워지고 있는 이들이 안치된 혁명열사릉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다음시간에 더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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