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명칭 (1)

김주원∙ 탈북자
2019.04.09
kimilsung_univ-620.jpg 김일성종합대학 내에 설치된 김일성 동상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의 우상화는 동상과 태양상, 혁명사상연구실, 혁명전적지, 사적비, 혁명가극, 혁명 영화, 송가, 헌시 그리고 대학 명칭 등 북한의 모든 사회생활영역을 포괄하여 진행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동서고금에서 찾아볼 수 없는 3대세습 김씨 일가의 우상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선 첫 시간으로 대학 명칭을 통한 김씨 일가의 우상화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북한당국은 1946년 10월 1일 김일성종합대학 설립을 시작으로 현재 280여 개의 대학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거의 절반은 정규과정 대학이 아니라 공장이나 농장, 탄광, 광산 등 기업소들에서 전문기술지식을 보급하는 실습교육차원의 야간통신학교라는 사실을 청취자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이라고 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평양에 있는 중앙대학들과 청진광산금속대학, 함흥화학공업대학, 혜산농림대학, 평성수의축산대학 등 지방에 있는 중앙 대학들 그리고 각 도마다 있는 의학 대학, 사범대학, 교원대학들은 정규대학이지만 이 대학들도 대다수 전문기술학과들만 존재하는 단과대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종합대학을 대학교라고 부릅니다. 대학교에는 정치외교학, 법학, 외국어문학 등 사회과학(인문학)과 수학, 물리, 생물학 등 자연과학(이공계) 관련 학부들이 있습니다.

북한에는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 등 종합대학이 다섯손가락에도 꼽을 수 없지만 대한민국에는 현재 종합대학만 200개를 넘으며 단과대학도 2018년 통계를 봐도 138개나 됩니다.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사람의 이름을 대학명칭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많은 대학들이 사람의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대학으로는 김일성종합대학, 김정일군사정치대학, 김정숙사범대학, 김형직사범대학, 강반석정치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강건군사종합대학 등입니다. 특히 김일성의 명칭을 쓴 대학은 김일성종합대학 이외에도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김일성고급당학교 등이 있으며 김정숙의 이름이 붙은 대학은 김정숙사범대학 이외에도 김정숙교원대학, 김정숙해군대학 등이 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1946년 7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결정 제40호에 의하여 채택이 결정되었습니다. 북한당국은 김제원 농민을 비롯한 ‘애국농민’들이 해방 후 1년농사로 지은 쌀을 헌납하여 김일성종합대학 건물이 지어졌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조선예술영화 ‘농민영웅’의 주인공이 바로 김제원 농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1946년 10월 첫 개학을 앞두고 대학명칭으로 논란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북한에는 소련군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어 있었고 모든 국가정책이 소련공산당의 지도를 받던 시기여서 대학명칭문제도 소련의 간섭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련에서 가장 큰 대학인 모스크바종합대학이 레닌명칭 모스크바종합대학이어서 김일성명칭 평양종합대학으로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대학이름이 길다는 이유로 김일성종합대학이라고 지었다는 것이 종합대학 학생들 사이에 나돌던 소문이었습니다.

북한당국은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선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가 김일성종합대학 시절에 ‘쌓은 업적’을 보여주기 위해 ‘김정일동지 혁명사적관’을 대학 본관에 마련하여 놓았습니다. 저도 대학 기간에 정기적으로 이곳에서 우상화교육을 받군 하였는데 당시 대학 명칭에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계기는 북한에서 처음으로 생긴 종합대학에 김일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바라는 전체인민들의 소원이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들속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약자로 줄여서 ‘김대’라고 표현하는 문제도 충성심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강조하면서 사상투쟁무대에 내세우기도 하였습니다. 대학 명칭을 부르면서 ‘김대’라고만 부르면 김일성의 이름이 잘려져서 신격화에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김정일은 대학 기간에 노트에 김일성이름을 쓸 때에도 다른 글자의 크기보다 더 크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여 대학생들 속에서 김일성 이름 글자를 더 크게 쓰는 것이 보편화 되었습니다. 지금도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수기로 노트에 김일성이나 김정일, 김정은의 이름을 쓸 때에는 지난 선배들이 해오던 관례대로 김씨들의 이름자를 더 크게 정중하게 쓰고 있습니다. 만약 김씨들의 이름을 작은 글씨로 쓰거나 난필로 마구 쓴다면 언제 검열할지 모를 노트검열에서 문제가 생겨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생들은 대학 기간에 자주 검열하는 노작발취노트나 덕성실기 발취노트에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정치사상적 검토를 당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인기 있는 대학 명칭 중에 김일성 다음가는 대학이 김책공업종합대학입니다. 김일성은 우상화를 위해 자기 이름뿐 아니라 자기의 측근이었던 김책의 이름도 대학 명칭에 넣어 북한주민들과 대학생들의 세뇌에 이용하였습니다. 김책종합대학의 원래 명칭은 평양공업대학이었습니다. 1948년 9월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자연과학 부분의 공학학부들을 분리하여 따로 대학을 내오면서 처음에는 평양종합대학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김일성이 남침적화의도로 벌인 6.25전쟁으로 평양공업대학 대학생들도 책가방을 무기와 바꾸어 메고 전선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김일성보다 나이가 9살이나 더 많았던 김책은 김일성과 함께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대토벌을 피해 러시아로 피신해서 구소련군 소속의 극동군 88저격여단에서 소련군 군인으로 복무하였습니다. 당시 김일성이 소련군 대대장을 하였고 김책은 중대장을 하였습니다. 해방이 되자 소련군함을 타고 김일성과 함께 북한에 나온 김책은 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내각 부수상, 민족보위성 부상으로 활약하였고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전선사령관 직책을 지고 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지금도 저의 눈앞에는 대학시절에 평양시 모란봉구역 전승동에 있는 전승사적관을 참관하던 기억이 삼삼이 떠오릅니다. 갱도로 된 전승사적관은 전쟁시기에 전선사령부가 있던 곳입니다. 전선사령관이었던 김책이 사용하던 갱도 사무실도 여전히 그때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김책은 마지막까지 평양을 지킨다며 후퇴하는 대오에서 이탈해서 이곳에 있다가 1951년 1월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전후에 김일성의 지시로 평양공업대학은 김책의 이름을 붙여서 김책공업종합대학으로 개명하였습니다.

강건군관학교도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던 강건의 이름을 붙인 군관양성 교육기관입니다. 김일성과 함께 소련 극동군 제88저격여단에서 소련군 군인으로 복무하였던 강건은 해방되어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으로 활약하였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 3개월도 안되던 그해 9월에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폭사하였습니다. 그의 고향인 경상북도 상주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죽었던 것입니다. 김일성은 1955년에 제1군관학교 명칭을 강건의 이름을 붙인 강건군관학교라고 개명하도록 하였습니다.

대학 명칭에 사람의 이름이 붙여지면 대학생들에게 그 사람은 자연히 우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일성시대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업종합대학, 강건군관학교 등 몇 안되는 대학에만 사람의 이름을 붙였으나 김정일은 무려 60여개의 대학 명칭을 단번에 바꾸면서 많은 대학 명칭에 사람의 이름을 넣도록 하였습니다. 대학 명칭을 통한 우상화 세뇌선전이 극대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다음시간에는 김정일에 의한 대학명칭 변경과정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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