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종교-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

김주원∙ 탈북자
2019-01-29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북한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전자도서관에서 학습하고 있는 모습.
북한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전자도서관에서 학습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동포 여러분, 지난 시간에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다녔던 숭실중학교에 대해 북한에서 가르치지 않고 있는 내용들을만 골라서 설명드렸습니다. 오늘은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 북한에서 종교인들을 키우기 위해 개설되었던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기독교학교로는 1901년에 미국 선교사인 사무엘 오스틴 모펫(Samuel Austin Moffett, 마포삼열)목사가 평양에 세운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입니다. 19세기 말엽인 1890년대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우리나라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체계적인 한국인 목회자 양성을 위해 평양신학교 설립을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1901년 5월 15일 평양에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라고도 불린다)를 개설하였던 것입니다. 이 신학교는 일제에 의해 1938년에 폐지되었다가 해방이 되어 다시 평양에서 개원하였으나 김일성의 종교말살정책으로 또다시 폐지되었습니다. 1907년 6월 20일에 길선주, 방기창, 서경조, 송인서, 양전백, 이기풍, 한석진 등 7명이 1기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1907년 9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개최된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독노회에서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평양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곳곳에 교회가 생겨났고 많은 종교인들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와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의 신사참배가 강요되면서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1930년대 중반에 기독교계의 사립학교들이 폐교되기 시작하였고 1940년대 이전에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인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종교인들에 의해 다시 종교관련 교육기관들이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국 각지에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나 북한에서는 김일성에 의해 종교인 탄압과 신설된 종교학교 강제 폐교가 강행되면서 북한에는 종교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들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목사들과 장로, 권사, 집사를 비롯한 종교인들이 정치범관리소에 끌려가 처형되었으며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내려와 목숨을 건진 종교인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숭실대학교를 비롯한 새로운 종교교육기관들을 신설하였습니다. 북한에서 더 이상 종교교육을 할 수 없었던 종교인들이 1946년에 서울시 광진구에 이 학교의 전통을 이은 새로운 신학대학인 장신대학교(장로교신학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한국으로 온 교인들을 중심으로 영락교회, 서대문교회 등 많은 교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신처럼 떠받들면서 반세기동안 종교교육기관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인 양성을 위한 신학교들과 교회들이 모두 남한으로 내려왔고 김일성을 신처럼 떠받드는 이단종교인 주체교가 판을 치는 지옥으로 변한 것입니다.

1987년 제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3대혁명소조원으로 파견되었던 해에 김대에 종교학과가 신설되었습니다. 당시 졸업생들이나 재학생들 속에서도 종교학과가 신설된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북한당국이 처음에는 이것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89년 7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한창 진행될 때 소조휴가로 평양에 올라갔다가 대학에 들리니 그때에야 역사학부에 종교학과가 생긴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종교학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철학부 소속의 학과로 신설된 것이 아니라 역사학부에 속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현재 역사학부에는 김일성동지 혁명역사학과, 김정일동지 혁명역사학과, 조선역사학과, 세계역사학과, 고고학과, 종교학과 등 6개의 전공학과가 있습니다.

1997년 1월에 망명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던 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이었고 중앙당 국제비서였던 황장엽 선생은 자신이 김대 총장을 할 때 종교학과가 김정일의 지시로 신설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1987년에 비밀리에 개설된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는 개설 당시 학생인원이 5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진행되면서 전 세계의 많은 청년단체들을 물론 종교단체들의 방북이 급증하자 종교관련 업무를 담당할 인원이 절실히 필요하여 학생수를 20명으로 늘였습니다. 학생들 속에서도 종교학과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였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정치경제학부나 외국어문학부보다 종교학과가 더 인기가 높아졌던 이유는 이 학과를 졸업하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외출장을 다닐 기회가 많아지고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과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은 북한에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국제적십자단체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일을 하게 되므로 ‘먹을 알’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조선그리스도연맹이나 불교도연맹, 조선카톨릭협회, 조선천도교청우당, 사회민주당 등이 모두 평양시에 소재하고 있어 종교학과를 졸업하면 무조건 평양시에 거주하게 된다는 것도 한몫을 했습니다.

종교학과에서 배워주는 과목 중에 성경과목은 하느님에 대한 숭배사상과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배우는 과목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북한의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에 있는 수령님에 대한 신격화, 신조화와는 대립된다는 모순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대외적인 영향력이 좁혀진 상황에서 가짜 종교인들을 내세워서라도 구걸행각을 벌려야 했던 북한으로서는 종교학과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당시 재외동포들 중에도 기독교인이나 천주교를 믿는 사람, 그리고 불교신자들이 많아서 그들과의 대화에서 종교관련 대화를 할 수 없었고 적십자관련 단체는 물론 국제기구들도 종교관련 업무와 연결된 기구들이 대다수다 보니 종교학을 전문으로 배운 일군들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2001년 제2차 국가인권보고서에서 북한에 1만여 명의 기독교인, 3천여 명의 천주교인, 1만여 명의 불교신자, 1만 5천여 명의 천도교인을 포함한 약 4만여 명 의 종교인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주장하는 종교인들은 중앙당 통일전선사업부의 일군들과 그 가족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목사, 신부, 스님으로 발탁된 사람들은 북한의 종교단체들인 조선그리스도연맹, 조선카톨릭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조선천도교청우당 등 특수단체의 소속으로 표방하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조선노동당원이며 노동당의 대남정책과 대외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통전부나 해외동포영접부 등에서 적을 두고 활동하는 가짜 종교인들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목사나 신부, 스님 등 종교인들은 그 어느 정당에 입당하거나 정치적인 성향으로 신자들을 설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일당독재인 노동당의 하수인으로 ‘가짜 종교인’들이 복무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종교탄압국인 북한정권의 이중성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종교학과를 개설하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없어서 외국에서 교수들을 초빙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미국 하와이에서 살았던 홍동근 목사도 평안북도 피현군이 고향인 북한출신 미국목사였습니다. 그도 북한에 계시던 어머님을 만나려고 평양에 다녀와서 새로 신설된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에 초빙교수로 초청되어 학생들에게 종교학을 가르쳤습니다.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목사도 1992년과 1994년에 북한당국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에서 특강을 하였습니다. 빌리 그레이엄목사의 장인(가시아버지)인 넬슨 벨 선교사는 일제강점기에 평양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종교인입니다. 김일성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이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칠골교회의 장로였고 넬슨 벨 선교사는 당시 이름이 강신희였던 김일성의 어머니의 이름을 강반석이라는 세례명을 지어 준 사람입니다.

다음시간에는 평양신학원에 대해 설명하기로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