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사령부검열과 김정은

김주원∙ 탈북자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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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 요원을 양성하는 보위대학.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 요원을 양성하는 보위대학.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의 보위사령부검열은 1990년대 북한의 경제난이 극도로 어려워지고 주민들뿐만 아니라 간부들 속에서도 북한정권과 김정일에 대한 불신과 패배주의가 만연해지자 체제유지에 불안을 느낀 김정일이 취한 극단의 조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위사령부검열을 통하여 당 간부들과 행정 간부들은 물론 국가보위부 고위간부들 속에서도 북한에서 가장 무서운 조직이 보위사령부라는 것이 각인되었습니다. 오늘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더 포악해지고 있는 보위사령부의 만행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라파 국가들의 체제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인한 경제성장을 목격한 북한 주민들은 북한체제에 대한 불신이 커갔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배급제와 구매권제가 무너지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거리에서는 전쟁을 치른 것처럼 사람들의 시신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98년 여름, 7년 만에 고향인 혜산을 갔을 때 제가 처음 목격한 것도 거리에 방치된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신들이었습니다.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있는 만청산연구원은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연구하는 연구소이다 보니 ‘김정일 장군님의 노화는 휴식일도 명절도 모르고 진행된다’는 연구원 당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일요일은 물론 휴가마저 바치면서 고향에 휴가 가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습니다. 지방에서는 배급을 주지 않아 어렵게 산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렇게 사람들이 기아로 무리로 사망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딱친구(단짝친구)였던 고등중학교 동창 철웅이의 집으로 가는 길가에서 3명의 굶어죽은 사람의 시신을 보았습니다. 너무도 참혹한 장면에 친구에게 “왜 사람들이 굶어죽은 사람의 시신을 보면서도 무심하게 지나치는가?”고 물었을 때 친구는 저에게 “너는 평양에 살면서 배급을 공급받으며 살아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몇 년 전부터 이렇게 굶어죽어 가족 잃은 사람들은 죽어도 그 시신마저 저렇게 방치되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고등중학교 학급 동창 42명 중에 이미 6명이 굶어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왜 국가가 주민들이 굶어죽어도 대책이 없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제도의 모순과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의심은 간부들 속에서 확산되고 주민들마저 노동당이나 정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김정일은 “선군의 총대우에 평화도 있고 민족의 번영도 있다”며 보위사령부를 내몰았던 것입니다.

살벌했던 북한의 보위사령부 검열은 김정일이 자기의 잘못으로 나라의 경제가 파괴되면서 고난의 행군으로 굶어 죽는 주민들이 많아지자 이에 대한 반발을 중간간부들에게 돌리려고 북한을 피바다로 만든 특대형 숙청사건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피비린내 나는 숙청은 권력욕에 눈이 먼 김정은에 의해 강행되고 있습니다.

중앙당 검열은 해고나 책벌이 고작이지만 보위사령부검열은 공개총살과 정치범관리소 투옥, 관대하게 용서받는다고 해도 노동교화소 징역살이를 해야 합니다. 김정은은 집권하면서 가장 먼저 신경을 쓴 것이 국경봉쇄였고 그래서 탈북자 차단과 중국밀수를 막기 위해 보위사령부를 국경지역에 내몰았습니다.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함경북도와 양강도, 자강도, 평안북도, 이 4개의 도는 해마다 2~3차례의 중앙당검열이 진행되었지만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된 2010년 이후로는 보위사령부의 국경지역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었습니다. 보위사령부 검열은 중국과 외화벌이를 하던 무역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북한에서 ‘무역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속에는 군부대 간판을 달고 중국과 거래하는 장사꾼들이 많은데 이들이 1차 검열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의 대방(중국인이나 중국에 사는 조선족)에 대한 인적조사와 무역지표 조사를 비롯하여 심도 있는 검열이 진행되었습니다.

보위사령부의 국경지역에 대한 검열은 주로 설 명절 전후와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을 계기로 더 극성을 띱니다. 이처럼 추운 겨울에 보위사령부검열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얼면서 밀무역이 더 활성화되고 불법 도강자들이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국경봉쇄는 국경경비대, 국가보위부, 인민보안성, 노동당 민방위부소속의 적위대, 이렇게 4개의 봉쇄선이 있습니다. 1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강변과 강둑까지인데 국경경비대가 맡았고 2선은 보위부 130호, 일명 봉쇄지도원들이 지키는 강둑에서 민간인지역에 도달하기 이전까지의 지역입니다. 3선은 국경을 접한 지역의 담당보안원들과 국경봉쇄를 담당한 적위대가 맡은 국경지역 주민지역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설명절과 김정일의 생일을 계기로 상급으로부터 ‘숙제’라는 명목으로 과제를 받게 됩니다. ‘명절 진상품’이라고 불리는 식료품이나 노트북, 전기밥가마, 디지털카메라, 심지어 중국 위안화 등 다양한 숙제를 해야 합니다. 결국 무역쟁이들과 밀수꾼들이 얼음을 타고 중국에 불법도강하면서 물건을 들여오게 되고 이때 커버비용을 지불합니다. 그 과정에 중국 대방들과 접촉하기도 하고 탈북자도 발생하게 됩니다. 김정은은 정권유지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탈북을 막기 위해 보위사령부의 국경검열을 더 강화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는 김정일이 황색바람이 들어오는 통로fk고 말할 정도로 북-중밀수와 거래가 이루어지는 국경도시입니다. 북한의 4개의 북-중 국경에 인접한 도시 중에서 함경북도와 자강도의 도 소재지인 청진과 강계는 국경과 멀리 떨어져 있고 신의주는 압록강 하류여서 강폭이 넓어 밀수가 어렵지만 혜산시는 강폭도 좁고 건너편에 중국조선족자치현인 장백현 큰 도시가 마주하고 있어 밀수가 가장 성행하는 지역입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양강도 주민들은 중앙당 검열은 물론 보위사령부검열이 들이닥친다는 것을 관례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김정은의 지시로 국경지역에 대한 보위사령부검열은 더 강화되었는데 1차로는 국경경비대를, 2차, 3차로는 도 보위부와 도보안국, 시보위부와 시보안서를 검열하였습니다. 보위사령부 검열이 시작되면 국경경비대와 보위부, 보안국은 물론 당과 행정기관 간부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밀수꾼들과 밀수품들을 파는 장사꾼들마저 숨을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면서 검열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주민들 속에서 보위사령부는 “죽은 사람도 입 벌리게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 검열에 대한 공포감은 온몸에 선기가 돋을 정도입니다. 2012년과 2013년 국경지역 신의주세관과 혜산세관에 대한 보위사령부 검열은 장성택 숙청을 위한 신호탄이었다는 것은 당시의 증언 자료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한 인터넷신문이 북한 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10월경 인민보안부가 국방위원회 권한으로 '양강도사건'을 수사, 지휘했는데 전국의 간첩 및 반체제 인물 명단 중 상당수가 양강도와 연결돼 있다며 그 연관성을 수사한다고 강조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양강도에서 이름이 좀 있다던 무역회사 사장들은 거의 교화소형에 처해졌고, 반발하는 간부들은 현장에서 평양으로 압송되었습니다. 보위사령부 검열이 장기화되면 주민들의 반발 역시 상당합니다. 피해를 당한 주민들과 가족들은 신고자나 검열성원들에 대한 앙심을 품게 됩니다. 밀수꾼들과 장사꾼들은 “배급을 정상적으로 공급해주고 일해서 버는 노임으로 살 수 있다면 밀수나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지금 처지에서 이런 것마저 통제하면 굶어 죽으라는 소리인가?”고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속을 터놓곤 합니다.

그러나 옛 속담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듯이 당시 김정은이 국경지역에 대한 보위사령부 검열을 지시한 것은 권력유지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한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하기 위해 그 주변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한 신호탄이었다는 것이 북한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장성택이 처형되기 전에 보위사령부 군복차림의 검열군관들에 의해 머리를 숙인 채 끌려 나오는 모습은 청취자 여러분들에게도 눈에 삼삼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1999년에 보위사령부 검열성원들에게 끌려갔을 때 공포의 순간들이 떠올려졌습니다.

나라이름을 버젓이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지어놓고도, 그리고 인민을 지킨다며 인민군대라고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인민 위에 군림하고 인민들의 볼 권리, 들을 권리, 말할 권리, 여행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는 김정은의 북한정권이야 말로 현대판노예군주제도입니다. 보위사령부 검열성원들은 북한주민들이 당신들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으며 반드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인 인민대중은 훗날 보위사령부를 통한 공포정치의 잔인성을 반드시 계산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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