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 식사비 30달러인 민족식당 붐벼

김주원∙ 탈북자
2016.03.29
minjok_restaurant-620.jpg 평양시 만경대 구역 민족식당에서 평양시민들이 단고기죽을 먹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돈 많은 간부들과 일반 주민들의 삶은 하늘과 땅만큼이라 할 정도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의 측근 고위 간부들은 온갖 사치와 향락을 다 누리고 있습니다.

올해 5월에 치른다는 노동당 제7차당대회도 결국 따져보면 제 측근들과 그 가족들의 배를 더 채워 주기 위한 김정은의 잔치놀이에 불과합니다. 인민대중은 장마당 장사와 뙈기밭 농사로 근근이 살아 가고 있지만 권력층들의 삶은 다릅니다.

평양 시 중구역에 있는 ‘민족식당’만 보아도 북한 특권층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민족식당’은 중구역 화일동에 있는 평양국제문화회관 건물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양국제문화회관은 김일성의 75돌 생일이 되던 1987년 2월에 준공되었습니다. 연건축면적은 2만 5천여평방에 달하며 전면이 유리창형식인 탑식 구조물인데 중앙현관 홀은 2층까지 관통되어 있습니다.

여기엔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음악당과 국제회의를 할 수 있는 회의실을 비롯해 120석 규모의 영화관, 연회장, 미술작품전시장, 그리고 대기실과 악기전시장, 면담실, 음악감상실 등 다양한 문화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3층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재독교포 작곡가 윤이상에 대한 생애와 작품들을 전시해 ‘윤이상음악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건물의 지하에 평양 시 고위간부들 속에서 인기가 높은 ‘민족식당’이 있습니다.

워낙 규모가 큰데다 장식과 조명, 음악소리가 황홀 해 간부들조차 이곳을 ‘평양속의 도꾜, 평양속의 뉴욕’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이 식당의 음식은 유로나 달러, 위안 화와 같은 외화를 내야만 접대 받을 수 있습니다.

북한 돈은 취급하지 않고 있어 대다수의 평양시민들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고 그런 식당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민족식당’은 쉬는 날이 없이 점심과 저녁시간에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흔히 중국이나 동남아 나라들에 나와 있는 북한 식당들과 마찬가지로 접대원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방법으로 간부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배구장 6개를 합친 것만 한 식당 홀 한 켠 에는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도 있었습니다.

중앙 홀 벽을 따라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연인들끼리 식사를 할 수 있는 방들이 있어 간부들의 비밀회합 장소로도 공공연히 활용됐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중앙홀 무대에선 전문 예술인들이 악기를 다루고 춤을 추었습니다.

지금은 ‘장철구 상업대학’ 출신의 봉사원들이 전문 예술인들을 대신하고 있어 질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북한 고위층들과 고위층 자녀들, 돈 많은 장사꾼들 속에선 인기가 있는 모임장소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1991년 소련에 유학을 다녀온 친구의 손에 이끌려 처음 ‘민족식당’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 보았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니 먼저 출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미모의 접대원들이 손님의 요구에 맞게 자리를 안내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중앙 홀에 있는 식탁과 작은 방들 말고도 인공폭포에서 물이 쏟아지는 밑에 개방된 정각으로 지은 방도 있고 일본식 다다미방과 우리 민족의 온돌식 방도 있어 손님의 취향과 요구에 따라 식사할 방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대낮에 들어서니 좀 어둡게 느껴졌는데 차츰 익숙해지니 천정에 번쩍거리며 돌아가는 조명등과 장식들 사이로 외국인들과 북한 간부들의 살찐 얼굴을 분간할 수 있었습니다. 식탁마다 번호가 있었는데 담당한 접대원들이 음식을 날라 왔습니다.

친구가 식탁 위에 있는 차림표(메뉴)를 가리키며 마음에 드는 음식을 시키라고 했는데 요리사진과 함께 값은 모두 달러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요리의 대부분이 외국음식이었는데 친구가 이것저것 음식들을 소개하면서 술도 서양 술을 주문하였습니다.

둥근 다리가 달린 유리잔에 얼음을 띄운 술이 나왔는데 친구가 프랑스산 코냑이라고 하였습니다. 큰 잔에 비해 술의 량은 한 모금 정도였는데 가격은 3달러였습니다. 친구는 이 술이 60년 동안 숙성된 술이어서 값이 비싸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독한 술인데도 향기가 깊었고 조금 마셔도 술기운에 핑 돌다가 금방이면 머리가 맑아지기를 반복해 기분이 묘했습니다. 대학시절 아버지가 중앙당 부부장인 동창생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놓았던 술의 맛과 꼭 같았습니다.

접대원에게 이술 한 병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80달러라고 하기에 놀라던 생각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안주와 식사로는 소고기갈비와 오리구이, 조개로 만든 ‘소해대밥’이라는 것을 먹었는데 취기가 오르니 흥겨운 춤판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종업원들이 무대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추지만 그때에는 전문예술인들이 색스폰을 비롯한 악기를 메고 나와서 무대 한 켠에 서서 연주를 하고 가수가 노래를 하면 무대 아래의 큰 무도장에 저마다 나가 춤을 추었습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옆 식탁에서 앉아 있는 여성과 춤을 추게 되었는데 술기운에 용기를 냈지만 사교춤을 몰라 민망했습니다. 춤을 추면서 의상이나 향수냄새가 이상야릇하여 여성에게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보니 캐나다에서 온 교포라고 했습니다.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4시간이 넘어서야 밖에 나오니 자정이 되었습니다. 음식 값이 얼마냐고 묻고 싶었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는데 훗날에 그날 먹은 음식 값이 70달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평양을 다녀온 한 해외교포가 인터넷에 올린 영상물과 글을 보니 지금도 민족식당에는 간부 들로 식탁이 꽉 차서 기다리다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보통 한사람이 한 끼에 약 30~60달러를 소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사람이 먹는 최소한도의 음식값 30달러는 북한 돈으로 20만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현재 북한 장마당에서 강냉이로 100kg, 입쌀로도 40kg을 살 돈입니다. 식당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즉석으로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한 장에 2달러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저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진들을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달픈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을 북한에 계시는 인민들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인민들은 당장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길지 고민하고 있겠지만 김정은과 측근 고위간부들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고급음식들을 차려놓고 풍기 문란한 생활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런 북한이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의 지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양시민증과 지방공민증으로 사람의 가치를 정하고 토대라는 신분제도로 인민을 노예처럼 얽매놓은 북한에 미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던 김정은의 약속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민들 역시 김정은의 이 약속이 과연 지켜지고 있는지를 잘 따져보면서 자신과 후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조국의 변화를 이끌어 내길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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