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문과 리조실록

김주원∙ 탈북자
2021.07.21
홍기문과 리조실록 사진은 조선왕조실록 봉모당본.
연합

북녘 동포 여러분, 봉건사회를 비판한 역사소설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 선생은 대한민국의 충청북도 괴산에서 출생하여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유학한 뒤 30대 초반인 1920년대에 중학교 교사,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해방 후에 월북하여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북한의 부수상을 했던 인물입니다.

홍명희 선생의 장남인 홍기문 선생은 아버지 홍명희 선생이 월북할 때 함께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사회과학원 원장을 지냈습니다. 홍기문 선생은 사회과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이씨조선왕조의 역사가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을 우리 글로 번역한 공로로 김일성훈장, 노력영웅,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받기도 했죠.

홍기문 선생이 책임지고 번역한리조실록은 이씨조선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 시대로부터 제25대 왕인 철종에 이르는 472년의 역사를 편찬한 사서(역사기록집)입니다. 고종실록이나 순종실록은 조선왕조 말기 일제강점기에 편찬되다보니 전통방식이 아니라 일제의 정략적 의도가 왜곡된 부분이 있어 다르게 분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500여 년의 이씨조선왕조시대를 한자로 수록한 조선왕조실록이 북한에서 김일성의 지시로 사회과학원 홍기문 원장이 책임지고 한글(조선어)로 번역된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봉건왕조실록은 당대 왕과 조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연월일 순서로 기록한 책으로 고려시기부터 실록편찬이 이루어져왔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면서 고려의 전통을 계승하여 이씨조선시대에도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하였습니다.

1,894 888책으로 이루어진 조선왕조실록은 왕실과 조정의 국정에 관한 내용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생활상까지 기록되어 있어 이씨조선시대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기에는 실록이 소실되는 것을 대비해서 2부를 만들어 1부는 궁궐에 보관하였고 다른 1부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에 보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씨조선왕조 시기에는 처음에는 4부를 만들어 1부는 춘추관에, 나머지 3부는 전주와 충주, 성주 등 지방 3곳에 사고(史庫)를 설치하여 보관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지방에 보관되었던 이조실록들은 서울의 창경궁 장서각과 총독부로 옮겨졌죠. 총독부에 보관되었던 이조실록은 그 후에 서울의 경성제국대학, 지금의 서울대학교로 이관하여 보관하였습니다.

1950 6 25, 김일성이 한반도 공산화를 목적으로 일으킨 6.25전쟁시기에 한강 이남의 서울대학교에 보관되었던 이조실록은 부산으로 군용트럭에 실려 옮겨졌으나 한강 북쪽에 있던 창경궁 장서각에 보관되었던 이조실록은 김일성의 지시로 북한으로 반출되게 됩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6·25남침전쟁을 미국과 남조선군이청소(靑少)한 공화국을 요람기에 없애려고 일으킨 침략전쟁이라고 주장하지만 역사자료들은 김일성에 의해 일으킨 남침전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죠. 1949년 미군이 남한지역에서 철수하자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을 찾아가 전쟁승인을 받았고 러시아에서 240여대의 탱크와 수백여 대의 군용 모터사이클을 넘겨받아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저도 혁명역사를 배우면서 전쟁을 일으킨 미군이 3일 만에 밀려서 서울을 인민군에 내주었다는 것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야 도서관에서 당시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기록들을 보고서야 625남침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침략전쟁이며 김일성이 민족의 원흉임을 똑똑히 알게 되었죠.

서울을 강점한 김일성은 우선 이씨조선왕조시기의 근 5백년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평양으로 가져올 것을 지시했습니다. 김일성의 조선왕조실록을 반출할 데 대한 지시내용은 2012년 조선노동당출판사에서 발행한 도서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김일성은 자기기 일으킨 전쟁으로 이조실록이 소실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리조실록을 구출해야 한다고 했다고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김일성이 대대로 왕족의 후계세습이 이어져온 이씨왕조에 관심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중국 팔도구에 있는 무성소학교, 길림육문중학교 등 중국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항일연군에서 복무하면서 중국한자를 잘 알고 있었던 김일성에게는 한자로 된 조선왕조실록을 읽기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를 한다고 하는 러시아나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을 보면서 딱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후계세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죠.

이씨조선왕조같은 후계세습을 하려면 구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김일성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시대적 제한성을 운운하면서 배제하기 시작했고 주체사상을 국가의 사상이념으로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주체사상 속의 수령관과 10대원칙의 신격화, 신조화는 결국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김일성이 바라던 봉건왕조사회의 권력세습을 위한 세뇌교육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김일성과 달리 한자를 몰랐던 김정일에게는 조선왕조실록을 읽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민족고전학과를 주축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김정일의 이조실록에 대한 관심은 그가 1990년대에 여러 차례 중앙당 비서들에게 이조실록을 읽으라고 했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를 이어 충성을 강요하는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이 발표된 다음해인 1975년부터 조선왕조실록 번역은 사회과학원 홍기문 원장이 책임지고 진행되었습니다. 최근에 김일성이 해방 직후, 6·25남침전쟁 이전에도 조선왕조실록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 증언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해방 후 김일성에게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이야기를 한 사람이 1946년에 월북한 역사학자 김석형 선생이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8.15 해방 다음해인 1946년에 월북한 김석형 선생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소장, 사회과학원 원장을 역임했던 인물입니다.

김일성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온 홍기문 선생의 부친 홍명희 선생에게도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1949 11 26일자 일간지에는 월북한 과학자인 백남운 선생이 자기 비서를 시켜 창경궁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 원본을 훔쳤다가 체포돼 도서들을 압수당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손에 넣으려는 김일성의 집요한 욕심은 결국 6·25남침전쟁시기에 실현되었고 한글로 번역된 이조실록은 김씨왕조의 현대판 봉건독재국가 설립에 이용되게 되었던 것이죠.

조선왕조실록은 북한에서 400권의리조실록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과 고위 특권층들이 즐겨 읽은 도서로 되었습니다. 리조실록을 읽다보면 성분제도가 지속되는 북한의 현실이 과거와 비교되고, 당대 사회의 봉건통치배들처럼 지금도 백성들의 삶을 무참히 짓밟는 김씨왕족의 반동성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영원한 세습을 위해 왕궁을 짓고, 곳곳에 별장 같은 이궁을 건설하고 온갖 진귀한 보물들과 과일, 식재료들을 강탈하여 저들의 부귀영화만 누리던 이씨왕조와 꼭 닮은 현대판 왕조국가. 김씨왕조는 사회주의국가가 아닌 봉건독재국가라는 사실을 청취자 분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사작성: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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