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제정된 행정처벌법의 반인민성

김주원∙ 탈북자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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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시 외곽 북·중 국경지대에서 북한 주민이 소를 몰고 이동하고 있다.
중국 단둥시 외곽 북·중 국경지대에서 북한 주민이 소를 몰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 동포 여러분, 모든 나라에서는 헌법, 형법, 민법 등 다양한 법을 제정하여 국민들의 생명재산, 국가안보, 경제발전 등 국가발전을 도모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국가는 법에 의해 유지되며 법이 있어도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무법천지가 되어 국가가 붕괴에 도달하게 됩니다.

청취자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북한에서 법이 통하지 않는 무법천지가 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난의 행군시기였습니다. 198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던 북한사회의 모순이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든 분야에서 취약성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로는 더 이상 국가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복귀하였고 공산당 일당독재가 허물어지면서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로 회귀하였습니다.

경제난으로 학생 교복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고 배급제가 지방에서는 이미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안 김일성이 묘향산 특각에 중앙당 경제부서 간부들과 내각 경제부처 상들을 불러들여 협의회를 하다가 분을 삭이지 못해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사태도 그 당시에 벌어진 비극이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간 경제협조기구인 와르샤와기구도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었고 이 국가들에서 제공받던 연료와 식량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북한주민들에게도 아사라는 무서운 실체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굶어 죽지 않으려는 주민들의 몸부림은 북한 전역으로 퍼졌고 경제질서와 교통질서 등 모든 시스템이 무너졌습니다.

길거리와 역전에는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신들이 방치된 채 놓여있었고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이 꽃제비로 전락되어 가는 곳마다 고아들 천지였습니다. 열차들에는 식량을 구하려고 길을 떠난 사람들로 열차지붕에도 사람들이 가득 올라타는 이례적인 현상들이 나타났고 여행증명서 제도마저 무색해졌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도강하여 중국으로 탈북하는 주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고 삶을 포기하고 아편에 중독된 마약중독자들도 늘어났습니다. 공장에 출근해도 배급을 탈 수 없었고 집안의 가산을 다 내다 팔아도 며칠이면 더 이상 입에 풀칠조차 할 수 없었던 주민들의 일탈은 범죄로 이어져갔습니다. 노동자들은 물론 공장간부들까지 생산라인에 있는 전동기들과 설비들을 뜯어서 팔기 시작했고 구리 전기선과 철길 레루(레일)도 쇠톱으로 썰어 토막내 밀수로 중국에 넘겨졌습니다.

이러한 국가통제를 벗어난 주민 유동을 막고 무법상태를 바로잡으려고 1999년에 김정일은 보위사령부에 “총소리를 내도 좋다”는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1999년에 시작된 보위사령부 검열은 2000년대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살인독재자 김정일이 자기가 명령을 내려 전국 방방곡곡에서 보위사령부 검열로 북한 전역을 피바다로 만들고는 국민들이 저항이 두려워 공포살인행위를 멈추게 하고는 새로운 통제수단으로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행정처벌법입니다.

김정일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로는 더 이상 북한경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2001년 10월에 당경제기관 일꾼들과 담화에서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경제관리방식을 혁신한다며 ‘경제관리 개선지침’을 하달했습니다.

이 지침에 따라 8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2년에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단행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 중에도 40~50대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당시 이 경제관리개선조치는 북한주민들에게 중국이나 윁남(베트남)같은 경제개혁의 시초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희망적인 생각에 심취하게 했습니다.

기관기업소들에서 주는 생활비가 약 18배나 올랐고 공장마다 경영자율권이 확대된다는 소식에 지배인들과 생산지도원들이 환성을 질렀습니다. 농촌에서는 개인 텃밭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기도 했습니다. 기업관리를 맡은 일꾼들의 의욕이 증대되고 개인 8.3생산업자들의 소규모 제조업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도한 물가상승과 빈부격차의 극대화로 이어지면서 절대다수의 주민들은 더 어려운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노동당이나 인민위원회 등 권력기관에 인맥이 있는 사람들은 변화된 경제관리체계에 잘 적응되어갔지만 안면(인맥)도 없고 돈도 없는 절대다수의 주민들에게는 달라진 경제개선조치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금채취, 구루마꾼(짐을 나르는 일), 골동품거간, 밀수, 달리기장사 등 삶을 위한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북한사회제도에 대한 반항이 커갔고 북한당국은 이러한 행위를 통제해야 한다는 위구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급증하는 주민들의 일탈과 경제질서 위반행위에 대해 북한당국은 기존의 형벌로는 처벌하는데 제한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비형법적인 처벌을 위한 법을 제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북한당국은 2004년 7월 14일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정령 제546호로 행정처벌법을 제정했습니다. 행정처벌법 제정목적은 제1조 ‘행정처벌의 적용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워 위법현상을 막고 온 사회에 준법기풍을 확립하는데 있다’고 규정한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3대세습을 대내외에 선포한 북한당국은 2010년 김정은 후계구도가 공식화되면서 헌법과 형법 등 기존의 법률들을 개정하면서 2011년에 행정처벌법도 대대적으로 개정했습니다.

2011년 10월 16일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정령 제1902호로 4개장 254개 조문의 행정처벌법을 개정했습니다. 개정된 행정처벌법은 1장은 행정처벌법의 기본, 2장은 일반규정, 3장은 위법행위와 행정처벌, 4장은 행정처벌의 적용절차와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행정처벌법에서 그 종류에 대해 직무상 처벌인 경우는 경고, 엄중경고, 강직(강등), 해임, 철직 등으로 분류하였고 기술상 처벌인 경우는 자격정지, 자격박탈, 강급으로, 강제노동인 경우는 무보수노동, 노동교양으로 분류하여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처벌도 규정하였는데 가장 낮은 형태가 벌금이며 변상, 몰수 등으로 형벌방식을 정했습니다. 기관기업소에 대한 처벌에 관해서도 영업활동 중지, 봉인 및 억류, 물자공급중단 등으로 수위를 규정했습니다.

행정처벌법을 실행하는 기관으로는 각도시군 인민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하였는데 그 명칭이 사회주의 법무생활지도위원회입니다. 인민보안서나 검찰소 이전에 인민위원회에서 행정처벌법에 따른 위반행위를 조사하고 심의하여 행정처벌로 마칠 것인지 아니면 검찰에 넘길 것인지 결정하도록 한 북한의 이 같은 행정처벌법은 정상국가들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사법시스템입니다.

노동당 수하의 인민위원회에 이 같은 기구를 두고 북한주민들을 이중삼중의 법 올가미에 얽매어 놓고 3대세습의 영원한 계승을 꿈꾸는 김정은과 북한당국의 허황한 망상은 반드시 인민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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