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유일한 공산왕조

김주원∙ 탈북자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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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평양 만수대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북한 주민들이 꽃바구니를 바치고 있다.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평양 만수대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북한 주민들이 꽃바구니를 바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은 저들이 사회주의 국가라고 말하고 있지만 전 세계 인류는 21세기 유일한 왕조국가인 북한을 공산왕조라고 부릅니다. 공산왕조와 함께 현재 북한을 세인들은 김씨노예 왕조국가, 현대판 군주독재국가 등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했던 소련에서도 후계세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공산국가가 처음 발족했던 소련에서 스탈린은 개인숭배사상 보급에 전력을 했지만 소련을 공산왕조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스탈린이 자신의 딸인 스베틀라나에게 권력후계, 공산독재의 세습을 물려주려 하지 않았던 사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를 자처하다가 자본주의로 복귀한 동유럽국가들에서도 후계세습은 없었고 중국 모택동도 자기의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만 유일하게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이어진 왕족독재정권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공산왕조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4년 이후부터였습니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수상님이라고 불렀고 이름 앞에 ‘경애하는’, ‘위대한’ 등의 존칭수식어가 없었습니다. 1963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에서 근무하면서 권력승계를 꿈꾸던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을 ‘곁가지’로 밀어내고 1974년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을 제시하면서 후계자로 점차 자리매김했습니다.

당시 세계 언론매체들은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봉건왕조식 후계세습을 강행하려는 북한당국을 비난하는 기사들을 보도하였습니다. 기사에는 “북한에서는 새로운 공산주의 역사를 만들어 내려는 희한한 조작극이 연출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정도의 독재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김일성이 36세의 그의 아들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옹립할 계획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그의 연설을 강제로 학습받고 있으며 김정일은 이미 김일성과 함께 친애하는 지도자의 칭호로 불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기사는 “북한 당국이 김일성의 가계를 선전하기에 광분하고 있는데 김일성의 조부까지 들춰가면서 ‘혁명적인 일가의 영웅들’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멀지않은 장래에 물러날 가능성이 짙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김일성은 그의 아들로 이어지는 김씨왕조를 통해 자신의 독재이념을 계승시킬 꿈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베이징 지국장 애나 파이필드가 ‘김정은 평전, 마지막 계승자’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하였는데 이 책에서 북한 김씨왕조와 김정은에 대해 자세하게 해부했습니다.

북한 공산왕조 수립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한 것이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기획하고 내밀었던 우상화 선전을 위한 신화 만들기였습니다.

해방 후, 그리고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서 북한은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원조와 지원을 받으면서 빨리 회복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폐허에서 맨손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북한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더 높았던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70년대에 들어서서 김일성은 환갑나이가 지나면서 자신이 정착시킨 북한 독재체제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의 정치용어사전에는 권력세습에 대해 ‘착취사회에서 유지하고 있는 반동적인 관습’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의 지시로 가정들과 도서관들에 있던 이런 내용이 담긴 정치용어사전들과 사회과학도서들이 강제 압수되었습니다. 저도 당시 중학교에 다닐 때 노동당 선전선동부 검열조 성원들이 집에 와서 당시 대학 교수였던 아버님 서재에서 이런 책들을 압수하기도 하고 일부 책자는 해당 장을 뜯거나 먹칠해 볼 수 없게 하던 일들이 눈앞에 선합니다.

처음에는 김정일 대신 ‘당중앙’이라는 표현으로 후계자로 부상한 김정일을 소개했고 북한 주재 외국 대사관들에서도 이러한 사태에 대해 예의 주시했습니다.

1974년 당시 북한주재 동독대사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는 북한에서 전국적으로 각급 노동당 회의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김일성에게 중대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에 사태를 대비해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를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보도한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동독대사는 보고서에서 “북한당국이 김일성의 후처인 부인 김성애를 제치고 전처인 김정숙과 장남 김정일의 사진들을 언론매체들에서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있고 김일성이 북한주민들 앞에서 취하는 포즈를 김정일도 똑같이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점을 미루어보아 김일성의 장남인 김정일이 조직적으로 후계자로 육성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1980년 10월에 진행된 노동당 6차대회에서 김정일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비서국 비서 등 노동당 내 3대 기관의 고위직에 동시 임명되면서 유일한 후계자 지위가 공식화되었습니다.

당시 노동당 내 3대 기관에 동시에 임명된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 두 사람뿐이었다는 사실에 북한주민들은 물론 전 세계는 현대판 왕조세습을 강행하려는 가짜 사회주의, 가짜 공산주의 북한을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1993년에는 국방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김일성 사망 후, 1997년에는 조선노동당 총비서 등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김정일의 지위는 점점 더 확고히 다졌습니다. ‘친애하는’, ‘경애하는’, ‘영명한’ 등의 존칭수식어가 붙었고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지도자동지’가 예고 없이 농장에 나타나 농민들에게 농사하는 법을 가르치고 공장에 나가면 철강생산방법을 가르친다며 그래서 현지지도를 나가면 현장 일군들이 지도자의 말씀을 수첩에 받아 적는다고도 했습니다.

봉건왕조시기에는 왕의 세습이 당연시 되었고 왕자들 사이의 죽고 죽이는 왕자난이 이어져 왔습니다. 고려 2대 혜종왕의 장남이었던 흥화군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고려사 세가 태조 훈요 3조’에는 “왕위 계승은 맏아들이 불초할 때에는 둘째 아들에게, 둘째 아들이 그리할 때에는 그 형제 중에서 중망을 받는 자가 대통을 잇게 하라”고 씌어 있습니다.

김씨 왕조 2대에서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을, 3대 왕조에 들어서면서 김정은은 형 김정남을 밀어내고 왕위를 쟁탈한 것은 천여 년 전의 일이 아닌 21세기 가장 낙후한 정치, 경제, 문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북한에서 존재한 사실은 우리 한민족을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2008년 8월 김정일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후계자에 대한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당시 북한에서 살면서 몰래 미국에서 보내는 대북방송들을 들으면서 북한정권이 숨기는 김정일 와병설을 접할 수 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이 없고 딸들만 있다고 소문난 김정일에게 후계자가 없으니 김정일만 죽으면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1월에 갑자기 대북방송을 듣다가 김정일의 아들들인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에 대해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썩고 병든 공산왕조국가에서 살 수 없기에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에 와서야 김정일의 정식부인으로 동거한 여성이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김옥 등이고 그 외에도 여러 여성들이 동거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혜림의 아들인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제치고 김정은이 후계자로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릴 적부터 김정은의 권력욕이 형제들 중에서 남달랐고 김정일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북한 3대세습은 외부세계를 접할 수 없는 북한주민들에게는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애나 파이필드의 저서 ‘마지막 계승자’에서 확신하듯이 암울한 미래 속 김정은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셈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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