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감추고 있는 생일

김주원∙ 탈북자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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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2월 16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2월 16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2009년 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그때부터 북한주민들은 그의 나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해 이것이 가족끼리 혹은 친한 친구들 사이에 자주 오갔던 대화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정은의 생일에 숨겨진 비밀에 대해서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정주년인 5년과 10년을 맞으며 4대명절인 태양절, 광명성절,(국경절)공화국창건절, 당창건기념일을 성대히 치르던 관례가 있어 김일성의 생년 마지막 숫자인 2자에 맞춰 1941년생인 김정일의 생일도 한 살 낮춰 1942년으로 바꾼 사실은 비밀이 아닙니다.

김정은이 등장해 2010년에 간부들과 평양시민들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지방으로 흘러나온 김정은 생일설은 1982년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2009년 공식 등장할 당시 나이가 27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의혹이 마지막 숫자가 ‘2’였습니다. 3대가 생일 마지막 숫자가 2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주년이 되는 해에 3대의 생일을 같이 경축하면 주민들에게 주는 영향력이 클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의혹만 더 커졌습니다.

김정일은 재일교포 출신인 고영희의 입맛을 돋우어주려고 일본에서 요리사인 후지모토 겐지를 데려와 원산초대소에서 김정은의 생일에도 생선초밥 등 일본 요리들을 해주도록 했는데 그 과정에 일본인 요리사는 김정은의 생일이 1982년이 아니라 1984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자기의 저서에 공개하면서 지금은 김정은이 1984년 1월 8일에 출생했다는 것 역시 비밀이 아닙니다.

김정은의 출생에 대해 얘기하자면 우선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가 김정일의 몇 번째 부인인가에 대해 알고 싶은 북한주민들이 있기에 세상에서 가장 정보력이 우수한 미국의 CIA자료와 북한전문가인 워싱턴포스트 베이징 지국장 애나 파이필드의 주장대로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는 4번째 부인이라는 점을 먼저 공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본처이자 3번째 부인인 김영숙과 평양저택에서 살면서 원산초대소에 김일성 몰래 고영희를 숨기고 동거했기 때문에 첩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처인 김영숙 슬하에는 김설송과 김춘송 두 딸들뿐이어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김정일에게는 본처보다 아들을 낳아준 고영희가 귀중한 존재처럼 여겨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김정일은 1963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3년 후, 25살 나던 해인 1966년에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한 항일투사 자녀인 홍일천과 동거하면서 딸 김혜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중앙당 선전선동부에서 문학예술부분을 담당하면서 영화촬영소에 자주 현지지도를 나갔던 김정일은 홍일천보다 더 곱게생긴(예쁜) 배우들을 보게 되면서 2년 후에 홍일천과의 동거를 그만두고 당시 영화 <백일홍>과 <온정령> 에 출연한 배우인 성혜림과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성혜림은 배우 중에서도 김정일의 눈에 드는 여성이었기에 김정일은 그가 자기보다 나이가 5살이나 많고 이미 결혼해 딸 이옥돌을 둔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동거를 이어갔습니다. 김정일은 성혜림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1971년 김정남이 태어나자 그의 남편인 리평과 이혼을 하도록 했지만 김일성에게는 나이가 5살이나 많고 결혼했던 여성인 성혜림에 대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일성은 김정일이 30살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총각으로 사는 줄로만 알고 그에게 자기의 타자수였던 김영숙을 처로 맞이해 결혼하도록 했습니다. 성혜림보다 10년이나 어렸고 김정일보다는 5살 어린 김영숙이 김정일과 정식 결혼한 본처가 된 셈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홍일천과 동거하면서 딸 김혜경이, 성혜림과 동거하면서 김정남이 태어난 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김일성 몰래 두 여성과 동거하면서 김정일은 홍일천과 성혜림과는 정식 결혼식을 하지 않았지만 김영숙과는 결혼식을 했고 함께 살면서 두 딸인 김설송과 김춘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성혜림에게서 태어난 김정남이 비록 아들이지만 김일성이 알지 못하고, 또 인정하지 않는 아들이기에 김영숙이 아들을 낳아주기만을 기다렸지만 두 번째도 딸을 낳자 실망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지난 1960년대에는 영화촬영소에 나가 지도를 하였다면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혁명가극 창작을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만수대예술단과 피바다가극단 등에 자주 현지지도를 나갔습니다.

1980년 6차당대회를 맞으며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김정일은 세력다지기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중앙당과 국가보위부, 군부의 최고위급 권력자들을 선물정치로 충성지반을 확보했고 이들을 밤마다 중앙당 청사 내 목란관이나 지방 초대소들에 데리고 나가 술파티를 벌렸습니다.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주석궁전, 지금의 금수산태양궁전에서 70 고령이 되어 김정일을 믿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김일성은 평양시 중구역의 중앙당 청사 내에서 김정일이 밤마다 술파티를 조직해 여기에 간부들을 부르고, 만수대예술단과 피바다가극단 배우들을 청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게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였던 고영희도 저녁 술파티에 불려가 춤도 추며 김정일과 고위 간부들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술기운이 돌면 김정일이 배우들을 한명한명 간부들에게 붙여주어 즐기도록 했고 자신도 여배우들을 옆에 앉혀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언제부터인가는 김정은 곁에는 만수대예술단 배우인 고영희가 자주 자리를 같이 하더니 그 이후로는 예술단에도 출근하지 않고 밤 술파티에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김정일은 고영희를 원산초대소와 강동초대소 등에 거처를 하도록 하고 본처인 김영숙을 멀리하면서 고영희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195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고영희가 10살 나던 1962년 10월 21일 아버지를 따라 만경봉호를 타고 귀국하여 함경북도 화성군에서 살았습니다. 고등중학교 시절에 무용소조에 다니던 고영희는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로 배치 받았고 김정일의 배려로 1973년 7월부터 9월까지 일본에서 진행된 공연에서 무용 ‘조국의 진달래’와 ‘목동과 처녀’ 등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일의 동거녀가 된 고영희는 25살 나던 1977년부터는 비밀파티에도 나가지 않았고 1981년에는 김정철을, 1984년에는 김정은을 낳았고 1988년에는 딸 김여정을 낳았습니다. 동거녀라는 것은 공식 부인이 아닌 여성이 남자와 살면서 애를 낳는 것을 말합니다. 봉건시기의 첩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자녀를 키우면서 고영희는 동생인 고영숙에게 김정은 형제 뒷바라지를 맡기곤 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 유학시절에도 김정일에게 말해 고영숙 부부를 스위스에 보내 김정은 형제들을 돌보게 했습니다.

김정은의 이모인 고영숙은 현재 망명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국 기자가 이모 고영숙을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 김정은이 1984년에 출생했다는 사실이 더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고영숙은 자기의 딸도 1984년 같은 해에 낳다보니, 언니를 도와서 두 아이의 기저귀를 같이 갈아주곤 했기에 생년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렇듯 술 파티에서 김정일에게 춤으로 만족을 주었던 고영희가 김정은 형제를 낳고 4번째 부인이 되었지만 백두혈통이 아닌 일본 재포혈통이면서 사생아에 불과한 김정은은 여전히 자기의 고향도, 생일도 공개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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