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일본방문

김주원∙ 탈북자
2020.10.14
kimjungun_kid-620.jpg 김정은의 어린시절 사진.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 동포 여러분, 김정은의 친엄마인 고영희는 일본에서 태어나 11살 때 가족을 따라 북한으로 귀국한 재포출신이라는 사실은 지난시간에 설명해드렸습니다. 오늘은 김정은이 형 김정철과 함께 소학교시절에 고영희를 따라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1984년 1월에 출생한 김정은이 엄마인 고영희를 따라 처음으로 일본여행을 간 것은 그가 7살 나던 1991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일본을 방문한 사실이 일본 언론들에서 공개되어 그가 소학교시절에 2번에 걸쳐 일본을 다녀왔던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을 만나 외부와 차단된 채 원산초대소, 강동초대소, 신천초대소 등 전국 곳곳의 초대소들에서 김정은의 형제들을 데리고 외롭게 살았던 고영희가 일본방문을 하게 된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1991년이면 김정은은 7살, 형인 김정철은 10살 나이었습니다. 김정일은 아버지인 김일성과 당시 정실부인이었던 김영숙 몰래 초대소들에 감추어놓고 살았던 고영희와 자녀들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했습니다. 고영희도 물론이지만 한창 장난을 치면서 놀이를 즐길 나이었던 김정은 형제들은 호위국 군인들의 무장보초들에 의해 둘러막힌 공간인 초대소 안에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김정일은 북한 내에서는 이들이 외부에 공개되면 자기의 부적절한 이성행각이 드러나게 되고 애들의 심리적인 충격도 있을 것을 타산해 국내여행은 제한했지만 일본여행은 그래도 비밀이 담보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영희가 요청하자 승인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고영희가 1989년부터 김정일의 전속 일본요리 담당요리사로 발탁된 일본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로부터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릴 적에 살았던 일본에 대한 그리움과 애들을 일본구경을 시켜주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1947년생인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35살 나던 1982년에 북한당국의 요청으로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외화식당인 안산관에서 요리사로 일했습니다.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2동에 위치한 안산관은 보통강호텔에 머무는 외국인들을 위한 외화식당으로 유명했습니다. 1980년대 김정일의 지시로 중앙당에 당자금 마련을 위한 39호실과 38호실이 생기고 낙원총국, 모란지도국, 향산지도국, 대흥총국, 대성총국, 대외봉사총국 등 ‘충성의 외화벌이’ 당무역기관 무역회사들은 저마다 김정일에게 제의서를 올려 비준을 받아 그 산하에 외화상점과 외화식당들을 내왔습니다.

대외봉사총국 산하의 안산관도 당시 유명한 외화식당으로 평양시의 간부들과 무역일군들에게 잘 알려진 외화식당입니다. 평천구역 안산2동에 위치해 안산호텔이라고도 불리던 보통강호텔에는 방침에 따라 동유럽사회주의 국가들이 아닌 서방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부자들이 방북하면서 머물던 고급호텔입니다.

당시 호텔에는 방북하는 외국의 부자들의 이성적인 쾌락을 위해 대만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나라들에서 여성들도 데려와 호텔에서 봉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방북한 서방나라의 부자들이 일본요리를 찾으면 봉사할 수 있게 1982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요리사로 있던 35살의 후지모토 겐지를 안산관 요리사로 초청했습니다.

당시 북한당국이 후지모토 겐지에게 월급으로 제시한 생활비는 일본돈 50만엔이었습니다. 결국 한달 생활비가 달러로 약 5천달러인 셈입니다. 조총련의 한 일군을 통해 이런 제안을 받은 그는 1982년에 북한으로 가서 안산관에서 1년 계약을 하고 일했고 1987년에는 고려호텔에서 일본음식 요리사로 일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생일 75돌을 맞으며 여러차례 후지모토 겐지를 불러 일본요리를 만들도록 했고 1989년부터는 자기의 전속요리사로 일하도록 했습니다. 그때부터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 뿐아니라 재포출신인 고영희에게도 일본요리를 만들에 제공했습니다.

빈번한 요청으로 초대소들에 불려가 고영희와 김정은 형제에게 일본요리를 해주는 과정에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의 사생활에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고 그 과정에 많은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이들에게 들려주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고영희는 자기가 살았던 일본 오사카와 도쿄에 대해 후지모토 겐지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1991년에 고영희는 김정일의 승인을 받고 김정은과 김정철을 데리고 일본여행을 다녀오게 된 것입니다. 일본 언론방송인 NHK는 김정은은 ‘죠셉 박’, 김정철은 ‘아멜 박’이라는 가명으로 된 가짜 브라질 여권으로 1991년 5월 12일에 일본에 입국했던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여권에는 김정은은 8살로, 김정철은 10살로 찍혀져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수행인원만 해도 10여 명 정도였는데 김정일은 김정은 형제의 신변안전과 아직 철이 덜 든 애들이 사고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측근들을 붙인 것입니다. 일본 도쿄에는 백화점들과 고급식당들로 유명한 번화가로써 유명한 긴자라는 곳이 있습니다. 세계의 유명한 명품의류들과 각종 상품들을 판매하는 백화점들이 가장 많이 밀집된 긴자거리 구경에 이어 김정은이 인상깊게 회상하는 곳이 도쿄의 디즈니랜드입니다.

북한의 유희장들인 만경대유희장과 대성산유희장, 릉라도유희장처럼 애들이 즐기는 여러가지 유희기구들이 있지만 북한의 유희장들은 비교도 되지않는 도쿄의 특대형유희장인 디즈니랜드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유희장 중의 하나입니다. 김정은 형제는 그 다음해인 1992년에도 일본여행을 했던 것은 도쿄의 유명한 놀이공원인 디즈니랜드를 다시 찾기 위해서였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일본여행 이후에 일본요리를 해주려고 초대소에 오군하던 후지모토 겐지에게 도쿄 디즈니랜드에 갔던 얘기를 했습니다. 도쿄디즈니랜드에서 동심의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것이 의자에 앉아 움직이면서 보는 립체 유희기구인 어트랙션이었습니다.

만화의 주인공처럼 하늘을 날면서 천하를 보는 환상적인 모습을 직접 체험하도록 한 이 어트랙션에 김정은은 빠져들었고 고영희는 이렇게 좋아하는 애들이 북한에서도 놀 수 있게 이 어트랙션을 사가고 싶어 당시 수행한 일군에게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고까지 했지만 그 가격은 너무도 어마어마했습니다.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은의 지시로 독살된 이복형 김정남도 일본여행을 하려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추방된 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김정남은 도쿄 디즈니랜드를 구경하려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1년 4월 도미니카공화국의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나리타공항에서 체포되어 추방되면서 맏아들인 김정남은 후계자 1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김정은의 일본여행은 어린 동심의 김정은에게 자본주의 발전상을 부각시킨 기회였지만 김정은은 여전히 영원한 세습독재를 위해 북한주민들이 개혁개방으로 계몽되는 것이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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