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물김치와 황순희

김주원∙ 탈북자
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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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물김치인 참나물 김치.
함경도 물김치인 참나물 김치.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동포 여러분, 대한민국은 축제의 나라입니다. 서울과 부산, 인천을 비롯한 광역시들과 지방 자치단체들에서 더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느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많은 축제들을 경쟁적으로 조직하고 있습니다.

축제의 기본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볼거리와 먹을거리의 제공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지방에서 축제를 한다면 먼저 그 지역에 유명한 음식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지역적 특색에 맞는 전통요리들입니다.

안동이라고 하면 찜닭, 춘천이라 하면 막국수, 전주라고 하면 비빔밥으로 유명합니다. 해마다 한국에서는 전통음식 박람회도 자주 열리는데 우리 탈북민들도 평양냉면과 명태순대를 비롯한 북한 고유의 요리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5일에 서울에서 진행된 요리경연대회에는 우리 탈북민 요리사들로 구성된 북한 팀이 등장해 밀가루 밥과 토끼고기 조림, 참나물김치를 내놓았는데 참신하면서도 생소하다는 논란과 함께 한번 맛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크게 일었습니다.

전통음식 박람회에 참가해 우리 탈북민들이 내놓는 요리들에서 빠질 수 없는 반찬류는 바로 참나물김치입니다. 북한에서 참나물김치는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을 과대 포장하여 선전하는 단골 메뉴이기에 더욱 유명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김일성이 빨치산 시절에 제일 많이 먹었다는 나물은 취나물과 참나물 입니다. 빨치산 출신들이 쓴 회상기에는 산나물과 관련된 일화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제일 나이가 어린 여대원이었던 황순희의 참나물 사랑은 정말 남달랐습니다.

현재 빨치산 출신으로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황순희는 올해 97살의 고령이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앙기관에서 조직한 빨치산 참가자들의 상봉모임에 자주 출연했습니다. 상봉모임 때마다 황순희는 참나물김치 자랑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건강장수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만청산연구원에서 근무하던 저도 황순희의 회상모임에 자주 참가했습니다. 아마 북녘에 있는 청취자들 중에 황순희가 쓴 회상기 ‘그이는 우리의 어버이시다’를 읽어 보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회상기에서 황순희는 1936년 안도현에서 김일성을 처음 만났고 4년이 지난 1940년 8월에 다시 김일성을 만나 참나물김치를 담그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남아있는 몇 명의 대원들과 함께 일제의 토벌을 피해 숨어 다녔습니다.

김일성이 1940년 8월 소할바령에서 빨치산 지휘간부들의 회의를 소집하고 대부대 활동에서 소부대로 활동으로 전환할 데 대한 지시를 각 지휘관들에게 하달했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도 코웃음 치는 거짓말이었습니다.

1940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사회주의 소련을 이끌던 스탈린은 비겁하게도 히틀러와 불가침 조약을 맺게 됩니다. 독일과 한편이었던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식민지 국가들에서 반일 세력을 소탕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무엇보다 소련과 중국, 식민지 한국의 인접 지역인 만주를 전략적 요충지로 만들기 위해 관동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산하 토벌대를 동원해 빨치산 세력 초토화에 나섰습니다. 소할바령회의는 이런 급박한 정세 속에서 동북항일연군이 조직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제2여단에 소속돼 그 무슨 회의를 조직하고 다른 지휘관들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소할바령회의는 중국공산당 동북지구 서기였던 주보증이 조직한 회의였습니다.

소할바령회의에서 주보증은 일제의 토벌로부터 동북항일연군을 지키기 위해 각 부대를 분대 수준인 소부대로 나누어 소련의 극동지방으로 피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는 동북항일연군을 이끌던 중국공산당의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몇 명의 대원들과 소련으로 들어간 김일성은 6.25전쟁 때 첫 전선군사령관을 지닌 최용건의 혼성여단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했습니다. 그리고 일제가 패망한지 한 달 후에 소련의 화물선 푸가초프호를 타고 원산항으로 들어왔습니다.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주하면서 이끈 빨치산 대원들은 강위룡과 전문섭, 리을설, 최인덕을 비롯해 20여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일성은 임신한 김정숙을 먼저 소련에 들여보내고 해산 방조를 위해 황순희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소련으로 도주하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황순희의 회상기를 보면 중국 길림성 돈화현 후안썅거우를 지나면서 하룻밤 숙영을 하게 됐는데 이때 김일성이 직접 참나물을 채취해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회상기에 따르면 하룻밤 숙영하고 잠에서 깬 김일성이 산속에서 아침이슬에 축축이 젖은 참나물을 한 아름 안고 왔고, 자기가 직접 참나물김치를 만들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며 황순희에게는 다른 대원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대원들이 모두 어떻게 참나물김치를 한두 시간 내에 익힐 수 있는지 궁금해 하자 오히려 김일성이 먼저 황순희에게 “참나물김치를 담글 줄 아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모른다”는 대답을 들은 김일성은 자신이 직접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유격투쟁을 하려면 이런 것도 만들어 먹는 법을 알아야 한다며 참나물을 손으로 다듬었다고 합니다. 대원들에게는 군용밥통에 소금물을 끓이라고 하면서 원래 모든 산나물은 손으로 잘라야 제 맛이 난다는 경험담도 들려주었다는 것입니다.

황순희는 빨치산 참가자들의 상봉모임에서 늘 이 이야기를 곱씹곤 했습니다. 김일성은 끓인 소금물에 참나물을 넣고 식사준비가 다 되였을 때 밥통뚜껑을 열었는데 가지색이 도는 국물에서는 제법 시큼한 김치냄새가 확 풍겼다고 했습니다.

김일성이 참나물김치를 담그는 기법에 빨치산 대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참나물김치를 담그는 법은 어디서 배웠느냐는 황순희의 물음에 김일성은 자신의 어머니였던 강반석에게서 배웠다고 대답했다고 했습니다.

훗날 황순희는 소련의 원동지방에 들어가 김정일을 해산한 김정숙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김일성이 배워준 대로 참나물김치를 떨구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대원들에게도 참나물김치를 해주었다고 상봉모임에서 늘 자랑했습니다.

실제 김일성이 황순희에게 배워준 방법대로 참나물김치를 담가 본 북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참나물김치를 담그는 전통적인 비법을 두고 굳이 일본군 토벌대에 쫓기던 김일성의 방법을 따라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황순희는 빨치산 시절을 못 잊어 해방 후에도 자주 참나물김치를 김일성에게서 배운 방법대로 담가 먹었다고 했습니다. 6.25전쟁 시기 사망한 남편 류경수도 참나물김치를 몹시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참나물김치를 가지고 김일성을 그럴듯하게 우상화해서인지 황순희는 1965년부터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와 관장이라는 직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5년 11월 7일 리을설의 장례식에도 황순희는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으로 참석했습니다.

황순희가 하도 참나물김치 자랑을 많이 해서인지 제가 일하던 만청산연구원에도 참나물을 재배할 데 대한 과제가 떨어졌습니다. 만청산연구원 생물공학연구실 연구사들은 이탈리아에서 수경재배기술을 배워 참나물 재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수경재배로 키운 참나물을 맛본 김정일은 산에서 야생으로 자란 참나물보다 향이 덜하고 맛도 나지 않는다며 ‘9호 작업반’들에 야생에서 자란 참나물을 뜯어 올릴 것을 지시했습니다. 김정일은 참나물의 건강성분도 분석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김정일은 여름철 휴가를 삼지연 별장에서 보내며 참나물김치를 많이 먹었습니다. 인간의 몸에 좋다는 참나물김치를 그렇게 많이 먹었다지만 제 아버지 김일성과 빨치산 투쟁을 함께 했다는 황순희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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