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마지막 여인

김주원∙ 탈북자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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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마지막 여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마지막 부인인 김옥이 지난 2012년 북한 매체에 등장한 모습.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가 2004년에 사망하고 김정일은 7년 후인 2011년에 사망했습니다. 고영희가 사망한 후에 김정일을 옆에서 지켜준 여인이 김옥입니다. 김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김정일의 국내 현지지도나 대외활동 등에 함께 등장해 김정일의 부인이 아니냐는 조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고영희가 사망한 이후여서 그런 추측을 받을 만도 했던 거죠.

2006년 1월 김정일이 중국 호금도(후진타오)주석과 회담을 하는 북한의 기록영화에 동행한 장면이 대표적인 김옥이 등장한 영상입니다. 그리고 2011년 5월, 김정일이 사망하기 7개월 전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 김정일을 동행해 베이징 인민대회당 만찬석에도 참석한 모습이 공개되면서 김옥이 김정일의 마지막 여인, 다섯 번째 부인이라고 북한소식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주장했습니다.

김옥은 1964년생으로 김정일보다 23살이나 어려 2011년 김정일이 70세의 나이로 사망할 당시 47살이었습니다. 김옥은 금성고등학교 출신으로 왕재산경음악단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배우였습니다.

‘우리식 경음악단’과 ‘현대무용’을 발전시킬 데 대한 김정일의 방침에 의해 보천보전자악단과 왕재산경음악단이 1980년대 초반에 설립되면서 김옥은 피아노 연주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왕재산경음악단은 김정일이 참석하는 노동당 책임일군들의 협의회 이후나 외국인 환영행사 등에서 진행되는 공연행사에 동원되었고 그때마다 김옥은 공연무대에 올라 김정일의 눈에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재산경음악단 피아노 연주가였던 김옥이 김정일의 서기실에서 일하게 된 시점도 1980년대 중반부터였습니다. 이것은 김옥이 고영희가 죽은 후에 김정일의 여인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고영희가 김일성과 동거하면서 김정은 형제들을 낳기 시작한 때부터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일의 일본인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자기가 쓴 저서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서 고영희가 사망한 후에 김정일을 보좌할 사람은 제1비서인 ‘옥이동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습니다.

그가 1987년 이후에 자주 김정일에게 일본요리를 해주면서 당시 김정일의 서기실 제1비서였던 김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서에서 “김정일이 연회를 하면서 일본요리를 주문해 자주 불려갔는데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가 없을 때에는 김옥이 김정일의 옆에 앉아있곤 했다”고 서술했습니다.

그리고 고영희가 있을 때에는 김정일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고영희, 김정은, 김옥 순서로 앉고 왼쪽으로는 김여정, 김정철 순서로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또 김옥이 김정일과 고영희가 사용하곤 하던 프랑스제 최고급 그릇들도 사용했다면서 “요컨대 옥이동지는 제1비서임과 동시에 고영희도 공인한 김정일의 애인이었던 셈”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정일은 자기보다 5살이나 나이가 많았던 영화배우 성혜림과 동거하면서 5살 어린 김영숙과 결혼해 살았고 또 김영숙과 살면서 김정은의 생모인 11살이나 어린 고영희와 동거했습니다. 그리고 고영희와 살면서 23살이나 어린 김옥과 동거한 셈이죠. 결국 김정은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젊은 여인들과 함께했고, 동시에 여성들과 동거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도 정식부인인 김영숙이 있는 상태에서 김정일과 동거했던 자기의 처지로 볼 때 김정일이 더 젊은 김옥과 동거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김정일은 김옥을 ‘옥이’라고 불렀고 중앙당 비서들은 그를 ‘옥이동지’라고 불렀습니다. 중앙당 비서급 간부들이 ‘동무’라고 하지 않고 ‘동지’로 불렀다는 의미는 김옥의 위상이 김정일의 특혜와 신임을 받는 수준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자기의 저서에서 김옥의 키는 158cm 정도로 고영희보다는 조금 작은 편이었고 인상이 매력적인 여성이었다며 “흰 피부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이 무척 매력 있었다. 둥근 얼굴의 청초한 미인이라는 점에서는 부인 고영희와도 공통된 부분이 있어 실로 김정일이 선호하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서술했습니다.

고영희는 김정은 형제를 낳고 나서 몸이 뚱뚱해졌지만 김옥은 몸매에서는 고영희보다 말랐으나 균형이 잡혀 있어 김정일이 더 선호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옥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면 귀여운 무늬의 파란색 수영복을 자주 입었는데 나이도 고영희보다 12살이나 어린 김옥의 자태는 김정일의 마음을 녹이기에는 충분했을 것입니다.

1994년에 김정일은 김옥의 생일 30돌을 축하한다면서 서른 살 생일축하모임을 조직해주고 함께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생일상에는 일본요리를 포함해 진수성찬이 상다리가 부러지게 가득 올랐고 상 중앙에는 생일똘뜨(케이크)가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이빨쑤시개 굵기의 초가 서른 개씩이나 꽂혀 있었습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에서는 생일날에는 생일똘뜨에 자기 나이만큼 꽂혀 있는 초불을 입김으로 불어 불을 끄는 것으로 생일축하모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생일 축하합니다’의 생일송 노래를 부르면서 그 다음부터는 축하행사가 이어지게 되죠.

그런데 그날 김옥은 김정일에게 응석을 부리듯 그리고 서른 개의 초가 꽂혀 있는 것을 보기가 민망한 듯 “싫어요, 치우세요, 치우지 않으면 나가버릴테예요”라며 어깃장을 놓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생일파티에 일본요리를 하느라 참석했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이 광경을 보면서 참 인상이 깊게 남았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옥은 컴퓨터에 능해서 항상 김정일의 집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김정일의 행사일정관리도 담당했고 김정일이 가는 곳은 항상 동행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고영희와 다닐 때에도 함께 동행하곤 하였는데 이에 대해 후지모토 겐지는 “고영희와 옥이동지 관계는 내가 본 바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둘이서 친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본 적도 있고 딱딱하고 날선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부인 고영희도 원래는 김정일의 애인이었지 부인은 아니었다. 옥이동지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동지애‘를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자기가 목격했던 일들을 피력했습니다. 김정은 형제들도 어릴 적부터 김옥과 가까이에서 지냈기 때문에 ‘옥이’라고 부르며 엄마처럼 따랐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김정일의 서기실에서 김정일을 보좌했던 김옥의 존재는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고영희가 유선암 치료를 받기 시작한 2000년부터는 국제사회에도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김정일의 특사로 미국 대통령 클린턴과 만난 조명록 국방위위회 제1부위원장을 수행한 인사들 중에 김옥의 모습이 포착돼 외신언론들의 조명을 받았죠. 당시 김옥은 ‘김선옥’이라는 가명으로 동행했습니다. 김정일이 2008년 뇌경색으로 풍을 만나 운신을 잘 못하자 김옥은 항상 그의 옆을 지켰습니다. 당시 그의 존재는 이미 사망한 고영희를 대신해 부인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의 유일통치가 시작되면서 김정일의 다섯 번째 부인인 김옥의 존재는 더 이상 언론매체에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김정일의 마지막 여인인 김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혹시 김정은에 의해 숙청되지는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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