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먹고 쓰는 생필품은?

김주원∙ 탈북자
2016-02-0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을 방문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들을 통해 저는 김일성 일가의 건강장수를 전문 으로 연구하는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만청산연구원의 검정분석연구실과 식품보약화연구실, 생물공학 연구실, 식료공학연구실, 응용학연구실에 대하여 이야기 해드렸습니다.

만청산 연구원에는 이러한 연구실들 외에도 자동화공학연구실, 과학기술통보실, 도안 및 사진 실, 운수 과와 자재과 등의 연구실과 연구보장 시설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만청산연구원 자동화공학연구실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만청산연구원 내에서 자동화공학연구실은 6실이라고 불리는데 이 연구실은 1988년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신상균부장에 의하여 신설됐습니다. 1970년대 말 김일성은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 대학, 평성이과대학에 최첨단 과학학과들을 내올 데 대해 지시했습니다.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기존 생물학부에는 세포공학과 유전자공학, 생물물리학, 미생물공학 등 첨단 과학을 포괄하는 새로운 학과인 실험생물학과가 신설되었고 자동화공학부도 디지털을 전문으로 하는 학과가 늘었으며 외국에 많은 유학생들도 파견했습니다.

당시에 북한의 고위층 자녀들은 김정일이 다닌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공부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조선노동당 제6차당대회에서 김일성이 자동화공학과 생물공학 중시정책을 제시하면서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간부자녀들이 늘었습니다.

금수산의상당경리부 신상균 부장은 아들 신영민을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학부에 입학시켰고 중앙당 행정부 부장인 김시학은 아들 김경준을 생물학부에 입학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졸업 후 신영민은 만청산연구원 부원장을, 김경준은 북한 국토환경보호상을 지냈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의 만수무강연구를 처음으로 제기하고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 연구소를 신설한 신상균은 이미 1970년대부터 특제품 생산 공장인 룡성특수식료공장에 생산공정의 기계화, 자동화를 도입하기 위하여 기술과제들을 제기하곤 하였습니다. 구내운반용 전기 차와 통조림 자동생산흐름선 등이 신상균 부장이 도입해 김일성의 치하를 받았던 기술성과의 일부였습니다. 김일성은 1984년 5월 3백여 명의 당, 행정, 각 부문의 간부들을 거느리고 보름간의 일정으로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을 방문했습니다.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을 방문하면서 북한에 비해 월등한 경제와 과학발전 수준에 놀란 김일성은 귀국 후 각 부문별로 기술발전방향을 작성해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또 외국의 자료들을 읽으며 과학기술 발전이 경제성장의 기본요소임도 깨달았습니다.

당시까지 북한은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이 내놓은 문화예술혁명 바람에 과학기술이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외국방문을 통해 현실을 파악한 김일성은 자연과학에 뛰어난 교수들을 불러놓고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전망계획을 내놓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학부 배명성교수와 생물학부 고재준교수를 비롯한 유학파 출신 교수들이 대책안을 만들었습니다. 북한의 다른 연구기관들도 과학기술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한 대책 안을 제 나름으로 작성해 김일성에게 보고했습니다.

당시까지 북한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으로 평양 시 대성구역에 위치한 기초과학연구소가 유일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소는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산하에 있어 신상균 부장이 모든 관리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대성구역에 위치한 오늘날 ‘금수산태양궁전’ 당시까지 금수산의사당으로 불리던 집무실에서 사무를 보거나 침식을 하였는데 김일성의 잔소리를 듣기 싫었던 김정일은 평양 시 중구역 중앙당 청사 내에 있는 집무실에서 따로 떨어져 생활하였습니다.

금수산의사당경리부는 김일성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았는데 김일성의 큰 신임을 받고 있던 신상균 부장은 김정일도 마음대로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신상균부장의 사무실에 김일성의 직통전화만 있었고 김정일의 직통전화가 없었던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었습니다.

1985년에는 평양 시 중구역 종로거리 옥류교 근처에서 의문의 승용차사고가 났습니다. 차안에는 중앙당 조직지도부 김치구 제1부부장과 조직지도부 리화영 부부장, 외교부 이종목 제1부부장과 함께 김일성이 그렇게 신임하던 신상균부장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 차사고로 운전수까지 4명이 죽었지만 유독 신상균 경리부장만 병원에 입원하여 혼자 살아 남았습니다. 사고가 나기 전부터 금수산의사당 경리부의 권한을 놓고 김일성과 김정일 사이에 드러나지 않은 암투가 한창이었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이 조직한 행사에 쓸 최고의 물품을 받아오려고 해도 신상균 부장의 승인을 거쳐야 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신상균을 찾아간 부하들은 ‘주석명령분’은 다칠 수 없다는 구실에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일쑤였습니다.

김정일이 얼마나 격분했는지 ‘신상균 부장은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서있는지는 몰라도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신상균이 차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생활할 동안 김정일은 ‘기초과학연구소’에 먼저 손을 댔습니다.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소’를 중앙당 재정경리부로 옮겨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던 것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갈등을 원치 않았던 신상균 부장은 첨단응용과학으로 금수산의사당 경리부에 새로운 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제의서를 김일성에게 올렸습니다.

이렇게 돼서 김일성의 생일 75돌을 맞으며 1987년 만수무강연구소에 새로 만청산연구원이 신설 되었습니다. 만청산연구원은 과거 우리 조상들이 기록한 의료기술에 근거하던 ‘기초과학연구소’와 달리 현대적인 첨단과학기술을 전문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건강장수 연구를 컴퓨터기술과 자동화요소들로 결합했기에 외국의 발전한 현대 의료 기술과 천문학적인 값의 설비들이 무한히 요구됐습니다. 이는 또 만청산연구원의 자동화공학연구실에 막중한 임무를 떠안게 했습니다.

신상균 부장의 아들로 만청산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신영민이 김일성 종합대학 자동화학부를 졸업해 연구원내에서 자동화공학연구실의 위상을 더 높여주었습니다. 신영민은 김일성종합대학 시절 자신의 스승이었던 배명성 교수를 자동화공학연구실 실장으로 추천하였습니다.

자동화공학연구실은 만청산연구원에서 4층에 있는 5개의 큰 방을 차지하고 매방마다 4~5명 정도의 연구사들이 근무를 할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매 연구사들은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미국산 IBM 컴퓨터들을 배정받아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IBM 신형 컴퓨터 한 대의 가격이 2천 달러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동화실에는 10여 명의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학부 졸업생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절반은 소련이나 동독에 있는 대학원 으로 파견되어 준박사(석사)과정을 마친 연구사들이었습니다.

이들 외에 평양전자계산기 단과대학 졸업생 5명 정도가 연구조수로 활동했습니다. 자동화실의 연구과제는 금수산의사당경리부산하 공장들과 목장에 나가서 김일성 김정일 체질에 맞는 채소와 고기를 자동화의 방법으로 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룡성특수식료공장 종합직장에서 생산하는 룡성가스맥주의 질 개선을 위한 생산 공정의 자동화였습니다. 여러분들은 평양의 고위간부들이 마시는 룡성맥주나 봉학맥주, 금강생맥주, 그리고 평양시민들이 즐기는 대동강맥주에 대하여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중 국빈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오르는 맥주는 룡성맥주입니다. 룡성맥주는 자동화연구실 연구사들의 애끓는 노력으로 태어났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김정일은 책임서기관 정하철을 통해 금수산의사당 경리부에 맥주 맛이 없다고 자주 추궁을 했습니다.

만청산연구원 자동화실은 맥주에 들어가는 보리나 호프 등 각종 원료들의 첨가량과 발효조건의 변화가 주원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맥주생산 공정을 원료투입에서 발효탱크의 단계별 온도, 교반작업까지 컴퓨터 제어프로그램으로 정밀하게 유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북한의 1등급 맥주인 룡성맥주는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자동화연구실에서는 운곡목장의 가금직장인 6직장에 무인부화기 시스템을 비롯하여 룡성특수식료공장의 특제품생산의 모든 흐름식 공정에 자동화체계를 완성했습니다.

학산게사니(거위)공장과 태평술공장, 력포유리병공장에 이르기까지 김일성 일가가 먹고 쓰는 모든 생필품에 만청산연구소 자동화연구실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연구원의 모든 직원들은 다른 어떤 부서들보다 자동화연구실의 비밀엄수를 더 강요받았습니다.

운곡목장에서 생산하는 돼지고기나 류황오리, 바나나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른 것은 자동화연구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돼지라도 어떤 온도와 습도에서 사는가에 따라 고기 속에 들어있는 건강 필수 요소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자동화연구실은 김일성 일가를 위해 만청산연구소에서 완성한 모든 연구결과를 생산에 접목하는 것이 전문적인 과제였습니다. 이와 함께 세계의 선진화된 연구결과를 수집하고 종합해 판정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시설들이 오직 김정은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만청산연구원 자동화연구실의 연구성과들이 북한 인민들 모두에게 행복을 줄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