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국제사회의 원조로 일어선 북한 (2)

김주원∙ 탈북자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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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한국전 종전 직후 평양 근교 장날 모습.
사진은 한국전 종전 직후 평양 근교 장날 모습.
/연합뉴스

북녘동포 여러분, 지구상에 북한처럼 국제사회의 원조를 많이 받았던 나라는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해방 후 북한당국이 구소련으로 받았던 원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6.25남침전쟁 이후 구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 국가들과 중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북한당국이 받았던 원조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6.25남침전쟁이 조선반도(한반도)를 공산화하기 위해 김일성이 일으킨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닙니다. 1949년에 한국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김일성이 스탈린을 찾아가 전쟁허락을 받고 250여 대의 땅크(탱크)를 들여와 1950년에 전쟁을 일으킨 사실은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당시 자료들이 공개되었던 것입니다. 전쟁으로 39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공장과 문화재, 주택들과 농가 등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김일성이 자기가 일으킨 전쟁으로 한반도는 잿더미만 남았고 우리 겨레 모두에게 가장 큰 고통을 남겼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끝났을 당시 북한 중앙통계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산업 생산량과 소비재 생산량이 1949년에 비해 각각 약 40%로 감소했고 농업생산량도 약 24%나 감소했습니다. 전력생산량은 전쟁 이전과 비해 26% 줄었고 화학공업은 22%, 철금속은 10% 정도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철도의 70%, 선박의 85%가 파괴되었고 철도운수는 거의 마비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전후 북한의 경제 상황을 전한 뽈스까(폴란드)의 비밀문서와 소련군 군사고문단장 라주바예프의 6·25전쟁 보고서에 따르면 ‘3년간의 전쟁으로 안주에서 평양까지 300km의 지역 내 땅은 전부 불에 탔으며 폭탄으로 인한 피해로 마을은 불에 탄 잔해와 폐허’뿐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건설되었던 제강소들과 제철소, 흥남화학공장 등 모든 북한의 공업기반이 파괴되었는데 금속공업의 14개 기업, 30여 개의 탄광, 36개의 광산채굴업, 16개의 기계제작공업 등 120여 개의 주요 공장기업소들이 파괴되었던 것입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던 1953년 7월 27일에 소련의 내각 수상이었던 말렌코프는 북한의 파괴된 경제를 복구하는데 있어서 소련정부가 북한에 모든 가능한 원조를 제공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전문을 김일성에게 보냈습니다. 김일성은 전문을 받고 이틀이 지난 7월 29일에 ‘3년간의 어려운 전쟁 속에서 소련 인민들의 막대한 원조와 지원이 승리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내용의 답례전문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가능한 원조를 북한에 기꺼이 해 주겠다는 소련내각의 전문내용은 우리를 격려하여 한층 승리를 고취시킨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은 1953년 7월 31일에는 당시 북한주재 소련대사였던 수즈달예프에게 전쟁피해 규모를 알리는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보고서에는 전후 복구를 위해 소련의 원조가 절실하다는 설명과 함께 전후경제복구를 위해 소련의 전문가 62명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보고서에는 필요한 소련 전문가들의 분야와 참여 인원에 대해 상세히 반영되어 있었고 김일성은 ‘우리 스스로 이런 대규모 사업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소련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소련정부는 김일성의 원조요청을 논의하기 위해 8월 3일에 특별위원회 회의를 소집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 경제의 회복을 위해 10억 루블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의정서를 채택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배워주면서 김일성이 전후 복구건설을 위해 북한 내 인적, 물적 자원과 내부예비를 총동원하여 빠른 시일에 전후복구건설을 승리에로 이끌었다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지하려 했다는 것이 당시의 자료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소련정부는 김일성에게 10억 루블의 원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 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도록 전보를 보냈고 김일성은 자세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직접 대표단을 이끌고 소련을 방문하겠다는 내용을 북한주재 소련대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결국 소련정부의 초청방문이 결정되어 김일성은 1953년 9월 10일 원조와 관련된 협의를 위해 대표단을 이끌고 소련을 방문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대표단 구성원들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박정애 부위원장, 정일용 내각 부수상, 정준택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남일 외무상, 김회일 교통상 등이었습니다.

소련 방문차 모스크바 역에 도착한 김일성은 환영군중들 앞에서 ‘북한 정부대표단은 소련정부가 전쟁에 의하여 파괴된 북한의 인민경제의 복구발전을 위해 10억 루블의 원조 제공을 결정한 데 대해 감사’를 표했고 북한과 소련 간에 경제 및 문화적 협조를 가일층 강화하기 위한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하여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김일성은 소련을 방문한 첫날 소련정부가 마련한 만찬회에서 ‘조선인민은 소련으로부터 시설품들을 받을 것이며 우리 경제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는 기업소들을 복구 건설하는 사업에서 원조를 받게 될 것이며 또한 농업과 문화를 가일층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원조들을 받게 될 것’이라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소련을 방문하면서 진행된 회담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북한의 인민 경제를 긴급히 복구하기 위해 소련정부가 주게 될 10억 루블의 원조에 대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 논의되었고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내용에 따라 9월 19일에 북한과 소련 간의 의정서가 체결되었는데 그 내용은 2년 동안 10억 루블을 무상원조하며 그중 6억 루블은 공장 복구와 확장에 사용하며 4억 루블은 새로운 공장을 신설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정부는 공장 설계나 장비제공은 물론 기술교육도 책임지고 도와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또 전쟁 이전에 북한에 제공했던 약 3억 루블의 차관도 1957년 이후 10년으로 연기해 주었습니다. 1953년 9월 10일부터 25일까지의 보름동안의 원조구걸 방문은 큰 성과를 본 셈이었습니다.

소련의 원조에 의해 북한에서는 김책제철소가 복구되었고 성진제강소와 남포제련소, 흥남비료공장, 승호리시멘트공장, 평양방직공장, 수풍발전소, 조선중앙방송국 등이 완공되었고 2.8시멘트공장이 신축되었던 것입니다.

김일성의 원조 요청은 소련에 이어 중국에도 그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1953년 11월 12일에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은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소련 모스크바에서 했던 방식대로 도착하자마자 6.25전쟁에 지원군을 참전시켜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전후복구건설에서 중국정부의 원조가 필요하다며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중국정부는 이전에 북한에게 지원한 원조는 전부 무상으로 하고 전후복구를 위해 새로 8억 루블에 해당한 원조를 제공하기로 합의했습니다. 11월 23일에는 당시 중국 총리였던 주은래(저우언라이)의 제안으로 ‘북·중 경제 및 문화 협력 협정’이 체결되어 중국정부가 한국전쟁 기간에 북한에 제공한 물자와 부채까지 전부 감면해 주도록 하였습니다.

북한당국은 소련과 중국의 원조를 요청하면서 한편으로는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지속적인 원조요청도 계속하였습니다. 김일성은 당시 북한 내각 이주연 상업부장을 단장으로 하여 10여 명으로 구성된 정부 대표단을 동독, 체스코슬로벤스코(체코슬로바키아), 뽈스까(폴란드), 웽그리아(헝가리), 벌가리아(불가리아), 로므니아(루마니아), 알바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에 파견하였습니다. 원조요청방문을 통해 전후 2년 동안에 소련과 중국, 체스코슬로벤스코, 동독, 뽈스까, 로므니아, 벌가리아, 웽그리아 등에서 약 24억 2천여 루블의 원조를 제공받았습니다.

북한당국은 이 원조로 희천공작기계공장과 운산공작기계공장, 인쇄소, 석유가공공장, 기계제작설비공장, 뼁끼(페인트) 생산공장, 시멘트공장, 제약공장, 직물공장, 벽돌공장 등을 건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이런 막대한 원조에 대해서는 숨기고 모든 것이 김일성의 현명한 영도로 이룩되었다고 선전하지만 역사는 비밀이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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