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학적 방법으로도 불치의 병력

김주원∙ 탈북자
2016.04.26
korean_traditional_medition_b 경원대학교 한방병원 한의사들이 사상의학에 따른 진맥 및 한방 건강상담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동방예의지국’으로 이름을 남긴 우리 조상들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와 고려청자, 거북선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의술은 오늘날까지 의학계의 귀중한 보물로 남아있습니다.

동의학으로 알려진 우리 조상들의 의료 기술은 자연에서 얻어낸 보편적인 약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질병을 얼굴과 체질에 연관시킨 연구도 뛰어났습니다. 얼굴과 체질의 특성을 고려한 의학적 처방 법을 ‘사상의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사상의학’ 역사는 천여 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상의학’은 구전으로만 전해졌을 뿐 역사적 기록으로 남지는 않았습니다. ‘사상의학’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학자는 조선왕조의 의학자 이제마였습니다.

조선왕조 시대의 유명한 의학자이고 철학자였던 이제마는 1894년 ‘사상의학’을 자세히 밝힌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이라는 책을 써냈는데 이 책에서 ‘사상의학’의 원리와 그에 기초한 치료방법 까지 상세히 밝혔습니다.

‘사상의학’이라는 의미는 사람의 체질을 네 가지로 나눈 의학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체질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상은 인간을 태양(太陽), 태음(太陰), 소양(少陽), 소음(少陰)의 네 가지로 분류한 체질의학입니다.

함흥 출신인 이제마(李濟馬)[1837~1900]는 과거 조상들의 의술과 자신의 연구를 결합해 사람들의 체격과 용모 또 육체적인 측면과 성질, 정서와 행동 등 정신적인 측면 등에 따라 ‘사상’, 즉 네 가지 체질로 구분하여 인간을 진단했습니다.

조상 대대로 인간을 ‘사상’으로 구분해 치료에 응용해온 동의학 이론을 이제마가 처음으로 ‘사상의학’이라고 이름 지었고 치료방법도 체계화 시켰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는 이제마를 ‘사상의학’의 창시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마는 사람들마다 심장과 폐, 콩팥, 간장 등 주요 내장 기관에서 대(大), 소(小), 허(虛), 실(實)의 차이가 있는데 이것이 외부적인 체질에 반영된다고 서술했습니다. 체질에 따라 성격과 심리, 약물에 의한 생리학적 반응도 다르다고 해명했습니다.

체질에 따라 약리양생법이 다르기에 음식물의 금기사항도 차이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조선왕조 시대 말기에 여러 관직도 사양하고 ‘사상의학’ 연구와 제자육성에 힘을 쏟았고 󰡔동의수세보원』개편이 한창이던 190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이론화하고 체계화한 ‘사상의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환자치료에 이용됐고 지금도 의학연구에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상의학’은 체질적 특성에 따라 인간을 치료하는 첫 의학이론이었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위해 체질의학인 ‘사상의학’을 꾸준히 연구했습니다. 김일성이 과학에서 주체를 강조하며 동의학 발전에 관심이 높았던 것도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더 깊이 연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960년대 북한의 의료계는 김봉한 박사의 ‘경락연구’와 모스크바 종합대학 생물학부 출신 로계삼 박사의 ‘사상의학’ 연구가 경쟁을 하는 구조로 고착화됐습니다. ‘사상의학’ 전문가인 로계삼 박사는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 생리학 교수였습니다.

로계삼 박사는 ‘사상의학’에 기초해 생물학적인 측정설비들과 효소활성에 의한 체질분류법을 연구하며 ‘사상의학’의 주요 내용인 체질에 따른 치료법을 혈액응고 시간과 타액의 아밀라제를 비롯한 소화 효소의 활성 차이 연구 등으로 확대했습니다.

1967년 김일성은 항일전쟁시기 국내파, 일명 갑산파를 숙청하면서 당시 부수상이던 박금철과 경락 연구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김봉한 박사도 제거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북한에서 동의학은 가짜 의학으로 선전됐습니다.

북한은 동의학을 거부하며 로계삼 박사의 ‘사상의학’ 연구도 강제적으로 중단시켰습니다. 당시까지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새벽에 기상나팔 소리에 맞춰 깨어나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아침달리기와 식전 체육을 강요당했습니다.

하필이면 그러한 시기에 생물학부의 한 학생이 늦잠을 자다가 호실검열을 하는 성원들에게 걸려들었습니다. 왜 아침운동을 안 나갔느냐는 검열 성원들의 질문에 그는 자신은 ‘사상의학’에서 구분하는 ‘소음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소음인’은 아침에 늦잠을 자고 대신 낮에 운동하는 것이 더 체질에 적합한 생활방식이라고 배웠다고 그 학생은 대답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대학당위원회가 발칵 뒤집혔고 ‘사상의학’을 가르치던 로계삼 박사는 사상투쟁 무대에 올랐습니다.

대학 당위원회는 분기 당 사업 총화에서 로계삼 박사를 대성구역에 있는 대학농장에 혁명화로 무보수 노동을 시키는 처벌을 주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의술을 현대 과학으로 재해석하는 연구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다시 소생할 것 같지 않던 로계삼 박사에게 행운이 찾아 온 것은 1982년 김일성의 생일 70돌을 맞으면서였습니다. 김일성의 노화 방지를 준비하던 후계자 김정일은 그동안 점성술처럼 무시하던 ‘사상의학’을 다시 발전시킬 데 대해 지시를 내렸습니다.

로계삼 교수는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에서 다시 ‘사상의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생리학강좌 에서 해마다 2~3명의 ‘사상의학’ 전문가들을 양성해 냈는데 1987년에는 실험생물학과 생리 학 전공 반 강창수의 졸업논문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가 쓴 논문은 ‘타액 속의 아밀라제 활성에 의한 사상의학의 분류방법 확립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만수무강연구소들도 사상의학을 김 부자의 건강장수 연구에 도입할 방법들을 놓고 자주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우선 김일성과 김정일의 체질을 ‘사상의학’에 맞게 분류하고 그에 맞는 건강장수 비법을 찾는 연구가 활발했습니다. 만청산연구원 식품보약화연구실 산하의 고려의학치료센터가 김부자의 건강장수 연구에 도입할 ‘사상의학’ 연구를 전담했습니다.

한의학을 전공한 3명의 의학박사와 2명의 조수들로 구성된 고려의학치료센터는 사무실과 치료실을 평양 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있는 만청산연구원 청사에서 평양 지하철 혁신 역 입구 맞은편에 위치한 서성구역 중신 동으로 옮겼습니다.

결국 우리선조들이 창조한 ‘사상의학’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위해 계승되게 했습니다. ‘사상의학’마저 독점하고 건강장수와 부귀영화를 꿈꾸던 김일성도 그렇고 김정일도 그렇게 꿈꾸던 오랜 삶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벌써부터 비대증으로 인해 다리까지 절뚝거리는 김정은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다시 한 번 머리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만청산연구원에서 근무했던 저는 ‘사상의학’이 아닌 이 세상 그 어떤 의학적 방법으로도 불치에 가까운 김 씨 일가 그러니까 김정은의 병을 고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기름진 음식과 호화방탕한 생활에 젖은 김정은에게도 반드시 건강문제가 따를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비대증은 심혈관계 질병을 촉진하는 근원입니다. 김정은의 아버지와 조부 역시 심혈관계 질병으로 제 명을 다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봅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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