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우상화-만경대혁명가정

김주원∙ 탈북자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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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태어난 집.
김일성이 태어난 집.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만경대혁명사적지 내용의 연장선에서 북한당국이 ‘만경대혁명가정’이라는 대명사를 조작하여 김씨 일가의 우상화선전을 극대화했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당대회나 청년일군대회를 비롯한 정치 행사를 하게 되면 지방에서 평양에 올라간 간부들이나 주민들이 꽃다발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꼭 가야 하는 곳이 만경대고향집입니다. 만경대고향집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반드시 참관지로 포함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만경대고향집은 청취자여러분들도 참관해본 분이라면 잘 알 수 있듯이 기와 대신 볏짚으로 지붕을 한 진흙집입니다. 묘를 봐주는 산당집이었던 만경대고향집은 너무도 초라하여 초기에는 만경대초가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만경대초가집 방들엔 김일성의 조부모들과 부모들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만경대고향집 방문객들은 강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김일성의 가정에 대해 알게 됩니다. 해설 강사는 방문객들에게 “김일성이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북한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운영하는 북한인터넷사이트인 ‘김일성방송대학’에 올린 화면 강의 ‘만경대가문’을 내용을 보면 김씨 일가의 우상화선전을 위해 북한당국이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의 서두에는 “반만년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이 김일성과 같은 위인을 영도자로 둔 것은 결코 역사의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애국의 전통으로 특출한 가정적 계보와 가풍을 가진 위대한 만경대가문이 있어 마련된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강조합니다.

소학교 혁명역사교과서에도 만경대고향집을 설명하면서 강조하는 내용이 김일성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지주, 자본가를 비롯한 착취계급을 미워했고 반제 의식이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역사에 이름난 위인을 낳은 가문은 많아도 만경대가문처럼 애국적이며 인민적인 가풍 속에서 김일성과 같은 위인을 배출시킨 가문은 없다.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역사에 기록된 위인들의 경우를 보아도 그들은 대개 상류층이거나 중산층의 가정을 배경으로 하여 태어나 생활상의 큰 고충이 없이 자랐지만 수령님께서는 나라 잃은 민족의 가장 극빈한 가정에서 태어나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체험 세계를 다 거치며 성장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만경대고향집에는 만경대혁명일가가 겪어온 생활을 그대로 전해주는 쭈그러진 독이며 여러 군데나 땐 물동이, 얇아진 망돌이며 모지라진 농쟁기들이 옛 모양대로 전시되어 있다. 만경대가정에서는 해방될 때까지 벽시계를 끝내 걸어놓지 못하였다”며 가난했던 김일성 일가의 빈곤함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유치원 높은 반과 소학교,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 과정에 배우는 ‘어린시절 따라배우기’,  ‘혁명역사’수업내용에는 지주의 묘지기였던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 김응우가 1866년 미국함선인 샤먼호를 소각하였다며 열렬한 애국자로 선전합니다. 그리고 조부모들도 자녀들을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한 성전에로 기꺼이 떠나 보냈다며 할아버지 김보현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안고 늘 ‘남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어야 마땅하다’며 자손들을 혁명의 길에 내세웠고 할머님 리보익은 자손들을 조국의 독립과 번영,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길에 내세우시고 모진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혁명가의 어머니, 혁명가의 할머니답게 꿋꿋이 살아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인 김형직과 강반석, 삼촌인 김형권, 동생인 김철주에 대해서도 조국광복을 위해 인생을 다 바친 애국자들이라고 강조합니다.

사실 북한당국이 김일성의 우상화선전을 위해 만경대가문을 광복 이후부터 내세운 것은 아닙니다.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혁명역사과목이 1950년대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6.25남침전쟁이 끝나고 교육내용을 정치사상화 할데 대한 내용을 첨가할 데 대해 논의하면서도 교수요강으로 1956년에 ‘조선노동당 투쟁사’를 새로 개설하는데 그쳤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산주의 도덕’과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공산주의 교양의 방향과 내용, 방법과 형식에 대한 지침이 하달되었고 1963년에야 전국의 인민학교와 중학교에서 「공산주의 도덕」 수업을 진행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김일성의 우상화를 위한 혁명역사과목은 개설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당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빨치산파와 국내공산주의자들의 그룹인 갑산파가 서로 견제하는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만경대가문을 강조하며 혁명역사교육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967년 당시 북한 권력의 2인자였던 부수상 박금철과 갑산파가 숙청되면서 만경대혁명가정에 대한 우상화선전은 극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7년 7월 31일 노동신문 2면에 김일성의 생모인 강반석을 회상한 ‘그분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시다-강반석 여사를 회상하여’라는 제목의 기사가 전면을 차지했습니다. 강반석을 조선의 어머니라고 부른 계기는 1967년 8월 19일 노동신문에 노래 ‘조선의 어머니’가 실리면서부터 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부터 모든 여맹조직들에서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여성혁명투사 강반석여사의 모범을 따라 배울 데 대하여’라는 주제로 토론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에서 근무하였던 김정일의 지시로 1968년 2월 16일 로동신문 2면 전면에 걸쳐 ‘4천만 조선인민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고 천연색기록영화(컬러 다큐멘터리)들인 ‘만경대’와 ‘우리의 어머니 강반석여사’가 방영되었습니다. 그리고 1968년 3월에는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추모하는 대규모적인 행사와 함께 그가 일제 때 활동했다는 평안남도 강동군 봉화리와 북중 국경마을인 중강군에 김형직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김씨 일가의 혁명가정 우상화교육인 김일성 혁명역사 과목이 생긴지도 올해로 51년이 됩니다. 1967년에 종파로 몰려 숙청된 박금철 부수상의 죄에는 일제시기 자기의 반일혁명활동을 도왔던 부인의 애국심을 선전하는 연극을 만들던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정일은 여기에서 만경대혁명가정을 만들어 권력 세습의 정당성을 꾀했고 1969년 9월에 인민학교와 중학교용 「김일성 혁명활동」 교과서가 처음 편집 발행되어 전국의 학교들에 배포되었고 모든 학교들에서 해당 수업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만경대혁명가정 선전에는 사촌동생인 김원주, 그리고 외갓집도 포함되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외할아버님이신 강돈욱선생님은 훌륭한 교육자로서 애국적인 교육사업을 한데 대한 표창으로 《동아일보》사가 공로 있는 인사들에게만 수여하는 은잔과 상장을 강돈욱에게 수여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북한당국은 외할아버지 강돈욱의 공적은 김일성의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세계관형성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만경대혁명일가는 애국적이며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가문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다며 이렇듯 훌륭하고 강직한 애국 가문, 위인가문에서 탄생하였기에 김일성이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책임진 민족적 영웅으로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거짓을 가리고 진실만을 기록합니다.

만경대혁명가정은 우리 민족사는 물론 동서고금에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반동적이고 반 인민적이며 독재적인 가정입니다. 김일성에 의해 치러진 6.25남침전쟁으로 391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평화 시기에 김정일에 의해 수백 만명의 북한주민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많은 북한주민들이 고문과 박해, 처형과 굶주림으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가장 치욕스런 김씨 일가에 대한 거짓된 우상화 선전을 당장 그만두고 북한주민들이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마음껏 알 수 있도록 인터넷을 개방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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