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왕조의 신분제도와 김씨 왕조의 성분제도

김주원∙ 탈북자 xallsl@rfa.org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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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왕조의 신분제도와 김씨 왕조의 성분제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14년 11월 공군 '검열비행훈련'을 참관하는 동안 최룡해 당 비서와 오일정 당 부장이 밀착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빨치산 혈통' 2세대이다.

북녘 동포 여러분, 봉건왕조국가에서 신분제도는 법적으로 규제되어 있어 신분사회라고도 부릅니다. 봉건국가가 붕괴되어 탄생한 자본주의 국가들에는 신분제도가 사라졌습니다. 돈 많은 부자가 투자를 잘못하여 하룻밤 사이에 빈털터리 신세가 되거나 농사꾼의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교수나 대통령이 되는 대한민국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나 중국에서도 낡은 시대의 유물인 신분제도를 청산하였고 사회주의를 한다고 했던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봉건왕조국가 시기에 존재하던 신분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한만이 여전히 성분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현대판 왕조국가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오늘은 이씨 조선왕조 시대의 신분제도와 김씨 왕조의 성분제도의 분류와 역할, 그에 따른 삶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씨 왕조 초기에는 모든 사람들을 양인과 천인으로 나누었습니다. 양인은 양반과 중인, 상민이 속했고 천인은 백정, 기생, 노비 등을 말합니다. 노비(奴婢)에서 노(奴)는 남자 종을, 비(婢)는 여자 종을 뜻합니다.

양반은 과거시험에서 합격해 봉건관리가 된 사람을 말합니다. 양반은 문과시험에 합격한 문반과 무과시험에 합격한 무반으로 나뉩니다. 중인은 양반보다는 낮지만 상민보다는 높은, 중간 신분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봉건 관청의 낮은 벼슬아치를 가진 자들로 통역을 맡은 역관, 병을 치료하는 의원, 그림을 그리는 화원, 기상일기를 살피고 시간을 재는 천문관 등이 모두 중인에 속했죠.

상민은 장사를 하는 상인과 소작농, 수공업자들을 말합니다. 가장 천한 신분인 천민은 굿을 하는 무당, 술자리에서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던 기생,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 가축을 잡던 백정, 그리고 노비가 있었지요. 여기에서 노비는 사람으로 취급되지 못하고 주인의 재산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이씨 조선왕조 중기에 이르면서 양반, 중인, 상민, 노비의 격차는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양반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같은 양반자녀와만 결혼하게 하기 위해 신분내혼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여기에서 잠깐 북한의 이력서를 좀 살펴볼까요? 북한 이력서에는 반드시 출신성분과 사회성분을 구분하는 란이 있죠. 사람의 성분토대를 한눈으로 알 수 있게 이력서에 밝히게 하는 것이 바로 성분구분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7년 당시 부수상이었던 박금철을 비롯한 갑산파라고도 불리던 국내파 빨치산 세력들을 숙청한 김일성은 북한주민들을 매 개인의 출신배경과 사회적 활동에 따라서 성분을 분류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1967년 4월부터 1970년 6월까지 3년이 넘게 주민재등록사업이 진행되어 직계는 3대까지, 외가는 6촌까지 조사하였고 이를 토대로 3계층 51부류로 구분하였습니다.

북한에서 빨치산 줄기는 할아버지가 김일성과 함께, 중국공산당 산하의 중국항일연군이나 소련공산당 산하의 극동사령부 88저격여단에서 소련군으로 복무했던 사람의 자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낙동강줄기는 선친이 6·25남침전쟁에 참전했던 사람의 자손들을 말하며, 남산패는 빨치산 줄기 자녀들이 다녔던, 그리고 김정일도 공부했던 남산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일컬었던 용어입니다.

제가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닐 때 함께 같은 학년, 같은 학과에서 공부했던 김경준의 할아버지 김철은 항일빨치산에서 아동단을 책임졌던 사람이었고 아버지 김시학은 장성택의 밑에서 중앙당 행정간부부 부부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김경준은 결국 빨치산줄기인 김정일이 다녔던 남산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였죠. 저는 대학기간에 그와 지내면서 핵심계층의 자녀들의 삶은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임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김경준은 국토환경보호성의 최고 직책인 국토환경보호상을 맡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대판 김씨 왕조 국가인 북한에서는 수백 년 전에 존재한 이씨 왕조의 신분제도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씨 왕조시기에는 서얼이라고 하는 신분도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부인을 여러 명을 둘 수 있었던 관례에 따라 왕 뿐 아니라 양반들도 본처 외에도 첩을 두다 보니 서자와 서녀들이 많았죠. 서얼은 서자와 서녀를 통칭한 첩의 자식들을 말합니다. 서얼은 관리 등용이나 상속에 있어서 상당한 차별을 받았으며 가족 내에서도 천시대상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러면 김정일이 아버지인 김일성의 허락으로 정식 부인이 되었던 본처 김영숙을 제외한 성혜림, 고영희 등은 본처가 아닌 첩에 해당하므로 4번째 부인인 고영희의 아들 김정은은 서얼, 즉 서자인 셈입니다.

본처인 김영숙은 두 딸만 낳았지만 김정일의 첩이었던 성혜림은 아들 김정남을, 본처 김영숙과 살면서 보았던 무용배우 출신의 첩 고영희는 김정은 형제들을 낳다 보니 김정남과 김정은 사의의 죽고 죽이는 왕자의 난이 벌어졌던 것이죠.

노비는 일반적으로 그 소유주가 국가기관이면 공노비, 개인이면 사노비로 구별되었습니다. 노비는 양반의 재산으로 인식되어 양반들은 의도적으로 노비들을 결혼시켜 노비의 숫자를 늘리려고 했습니다.

북한에서 소학교와 중학교 수업시간에 가르쳐주던 머슴이 바로 노비에 해당합니다. 머슴의 자녀들은 커서도 부모들처럼 주인의 소유물처럼 취급되어 마소처럼 부려졌죠. 현재 북한에서 농민 자식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자기가 자란 농촌마을에서 농민으로 살아가야 하고 또 그 손자들도 미래의 농민으로 자기의 운명이 정해진 것은 이조 왕조시기의 농노비와 처지가 같기 때문입니다.

특권족속의 자녀들은 김씨 왕조의 후계세습처럼 대를 이어 고위 간부직을 누리고 반면에 농사꾼 자식은 대대로 농민이 되어야 하는 성분제도야 말로 사회주의라고 표방하는 북한의 봉건왕족통치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씨 왕조시기에 존재했던 노비 중에 공노비는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서 각종 노력동원에 참가해야 하는 노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공노비들은 사노비와는 달리 노력동원 대가로 쌀이나 돈 등의 급료를 받았습니다.

김씨 왕조인 북한 일반인들은 모두 이씨 조선시대의 공노비에 해당합니다. 마음대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 수 없으며 주민대장에 등록된 주소 외에 어디에 가서 숨어 살 수도 없습니다.

돌격대라는 명분으로 아무 때나 국가에서 징발하면 불려나가 집을 떠나 강제노동 같은 고역을 치어야 하는 것도 이씨 왕조시기의 부역과 같은 것이죠.

이씨 왕조시기에 도망간 노비들을 잡으러 다니는 ‘추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와서 24부작 드라마인 ‘추노’를 보면서 너무도 닮은 이씨 조선시대와 북한의 현실을 비교해보기도 했습니다.

돌격대에서 이탈하거나 직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노동부 지도원이나 공장 노동과 지도원, 돌격대 대열참모 소속의 ‘대열추진’이라고 불리는 현대판 추노들이 존재하는 북한의 현실은 이씨 조선과 너무도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평등한 사회라고 자처하지만 사람들을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으로 나누고 성분토대를 잣대로 하여 통치하는 북한은 어디를 보나 이씨 조선왕조 같은 봉건왕조국가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 속담에 ‘머슴이 지주되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죠. 출신성분이 머슴이라고 자처하는 현대판 봉건왕조국가인 북한의 고위간부들은 오늘날에는 더 무서운 지주가 되어 북한의 주민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있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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