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왕조의 개국공신과 북한의 백두산줄기

김주원∙ 탈북자 xallsl@rfa.org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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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왕조의 개국공신과 북한의 백두산줄기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4년 11월 공군 '검열비행훈련'을 참관하는 동안 최룡해 당 비서와 오일정 당 부장이 밀착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빨치산 혈통' 2세대이다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현대판 김씨왕조국가인 북한을 건국하는데 공헌을 한 사람들과 그 자녀들까지 김씨 왕족처럼 세습시켜 대를 이어 혜택을 주는 것은 이씨왕조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을 했던 개국공신들과 그 자녀들에게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리게 했던 것과 너무도 닮았기에 오늘은 여기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씨조선왕조시기에 논공행상(論功行賞)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공적을 평가하여 상을 주는 행위를 말하는데요. 이때 정신적 혹은 물질적으로 포상을 받은 신하를 공신(功臣)이라고 부릅니다.

이씨왕조시기 세대가 바뀔 때마다 왕이 즉위하는데 공신한 신하들을 즉위공신(卽位功臣), 임진왜란 같은 전쟁에서 공적을 남긴 사람들에게는 선무공신(宣武功臣), 국가나 왕실의 안정에 공적이 있는 인물을 대상에게는 원종공신(原從功臣)이라는 칭호를 하사하였죠.

그러나 이러한 공신들보다 이씨조선의 시조인 이성계를 도와 고려왕조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봉건왕조인 조선을 세우는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開國功臣)이야말로 공신 중의 공신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성계는 즉위한 지 한 달이 지난 태조원년 1392년 8월 20일, 배극렴, 조준, 김사형, 정도전, 이제, 이화, 정희계, 이지란, 남은 등 수십 명 신하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으니 그 공이 매우 크다며 공로를 평가하라고 교지를 내립니다.

이렇게 이씨조선왕조를 세우는 데에 공이 큰 신하들의 명단을 후보자로 제시한 다음에 공신의 등급을 정하도록 교지를 내리고는 공신책봉을 위한 기구인 '공신도감'을 설치하도록 합니다. 공신들을 내세워 이들이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정치적인 운명공동체가 되어 충성을 다 하도록 하기 위한 수순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초기에 공신도감에서는 40명이 넘는 공신 명부를 1등부터 3등까지 등급별로 분류하여 작성한 후 이성계에게 올렸습니다.

당시 1등 공신으로 올린 대상들로는 문하좌시중 배극렴, 우시중 조준, 문하시랑찬성사 김사형과 정도전, 흥안군 이제(李濟), 의안백(義安伯) 이화(李和), 참찬문하부사 정희계와 이지란, 판중추원사 남은(南誾), 지중추원사 장사길, 첨서중추원사 정총(鄭摠), 중추원 부사 조인옥, 중추원 학사 남재(南在), 예조전서 조박(趙璞), 대장군 오몽을과 정탁(鄭擢)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삼판사사 윤호 등 11명이 2등 공신으로, 도승지 안경공 등 16명은 3등 공신으로 책봉되어 개국당시 이미 죽은 중추원사 김인찬까지 합치면 44명이 개국공신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북한에서 개국공신은 현대판 김씨왕조 독재국가 건립에 공적을 세웠다고 하는 인물들이겠죠? 평양시 대성산구역에 있는 항일혁명열사릉에 안치된 사람들이 바로 김씨왕조 개국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이 중국공산당 산하의 동북항일연군에 입대하여 싸우다가 일제의 토벌이 심해지자 1940년 10월 23일 소련국경을 넘어 소련공산당 산하 붉은군대 극동사령부 88독립보병여단에 입대하여 5년 동안 소련군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닙니다.

일본 관동군 노조에 쇼도쿠 소장이 이끈 노조에 토벌대의 대대적인 토벌로 1940년 2월에 동북항일연군 총사령이었던 양정우가, 4월에는 1방면군장 조아범이 내분으로 피살되자 상관인 위증민의 허락도 없이 김일성은 몇 명의 대원들을 거느리고 소련으로 도주하였습니다.

당시 김일성과 국경을 함께 넘었던 사람은 김정일을 임신했던 김정숙을 포함해 16명이었다는 것이 소련군에서 김일성의 상관이었던 주보증의 일기장에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토벌이 심해지면서 소련국경을 넘어온 항일연군 출신 조선인들이 88저격여단에 입대하면서 조선공작단이 결성되었고 단장으로는 최용건, 정치군사 책임자로는 김일성이 선출되었죠.

1945년 8월에 접어들면서 2차 세계대전이 마감고비에 이루었고 미국의 원자탄 투하로 일제가 항복하면서 우리나라는 해방되었습니다. 소련공산당은 한반도가 미국에 의해 자유민주주의국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미국보다 먼저 우리나라로 쳐들어왔습니다.

김일성은 해방이 되어 한 달이 지난 9월 19일에 소련군함 푸가초프호를 타고 88저격여단 조선인 병사들과 함께 원산항으로 귀국했습니다. 김일성과 함께 귀국한 소련군 출신들로는 김일, 림춘추, 주도일, 오진후, 최현, 안길, 최춘국, 박성철, 서철, 황순희, 류경수 등이었습니다.

김일성이 소련군함을 타고 귀국한 지 4일 만인 9월 22일에 평양에 도착했는데 그때 그가 입고 있었던 군복은 소련군 대위 군복이었고 이름은 가명인 김영환으로 불렸습니다. 스탈린의 지령으로 김일성을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만들어야겠기에 우선 김일성을 북한주둔 소련점령군 평양지구위수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승진시켰고 대위에서 육군소령으로 군직도 진급시켰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각 지역의 위수사령관들도 김일성과 함께 소련군 88저격여단에서 복무한 사람들로 임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소련공산당 산하의 소련군에 복무했고 앞으로도 스탈린과 소련공산당에 충성할 사람들로 북한의 중앙과 각 지역의 군사책임자를 임명했던 것이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통해 군사를 일으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웠다면 김일성은 소련공산당과 소련군을 등에 업고 총포탄을 휘두르면서 북한의 민족주의자들과 독립애국세력들을 제압하고 소위 소련의 괴뢰국가인 북조선의 수장이 된 셈입니다.

그러면 이씨왕조에서 개국공신들에 대한 우대와 김씨왕조의 ‘백두산줄기’로 불리는 김씨조선의 개국공신들의 국가대우는 어떻게 다를까요?

태조 이성계는 개국공신들에게 토지와 노비들을 등급에 따라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이씨왕조의 역사를 기록해놓은 이조실록에는 일등 공신 배극렴과 조준에게는 식읍(食邑) 1천 호(戶)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가호 1천 세대를 그들에게 소속시켜 세금도 개인이 받도록 했던 것이죠. 토지는 220결, 노비는 30명을 주도록 했습니다.

1결은 30~40말의 씨앗을 뿌릴 만한 논의 넓이로 220결은 그 면적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등 공신들에게는 토지 1백 결, 노비 10명을 주었고, 삼등 공신들에게는 토지 70결, 노비 7명을 하사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북한의 백두산줄기들이 얼마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거라고 봅니다.

김씨왕조의 최고의 개국공신이었던 최현의 아들 최룡해가 머리가 좋지 않은데다가 청년동맹 예술단 배우들과의 문란한 성행위로 실각되었다가 지금 김정은 시대에 와서도 최측근으로 행세하는 모습만 봐도 말입니다.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 주도일 아들 주영길, 오백룡 아들 오금철, 서철의 아들 서동명, 김시학의 아들 김경준 등 소련군 88저격여단에서 김일성과 함께 군복무를 하였던 소위 ‘백두산줄기’ 자손들도 지금 온갖 혜택을 다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비록 노비는 없어도 대신 운전기사를 달려주어 이씨왕조시대 관료대신들이 가마를 타면 이를 메고 나르던 노비를 지금은 고급승용차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지는 따로 없어도 2일에 한 번씩 제공되는 고급식자재들로 그들의 식탁은 항상 진수성찬이죠.

이씨왕조의 개국공신과 김씨왕조의 백두산줄기를 비교해보면 북한은 여전히 낡고 부패한 봉건왕조국가임을 청취자 여러분들은 명심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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