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199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김주원∙ 탈북자 xallsl@rfa.org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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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199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북한 김정은 정권이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 사망한 무장공비들을 6·25전쟁 전사자들과 나란히 대접하는 등 크게 예우하고 있는 것이 기록영화를 통해 확인됐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017년 '위대한 동지 제5부:당을 받드는 길에 인생의 영광이 있다'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방영하면서 강릉 무장공비 관련 내용을 8분 30여 초에 걸쳐 다뤘다. 영화는 사망자 각각의 이름·사진과 이들에게 수여된 '공화국 3중영웅' 또는 '공화국 영웅' 칭호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오늘은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북한의 대남통전부가 감행한 대남도발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990년대는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공산국가들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복귀하기 시작했으며,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대혼란을 겪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도입, 1990년 독일통일, 1991년 구소련의 해체는사회주의국가라는 미명하에 현대판 김씨 왕족 체제를 고수하려는 김정일에게 심각한 체제불안 요소가 되었습니다.

 

특히 독일공산당 총서기 호네커의 숙청과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차우셰스쿠의 처형으로부터 큰 충격을 받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위기의식은 고조에 달했습니다. 당시 권력층 내부에서도,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처럼 북한에서도 인민항쟁이 일어나 김씨 세습 독재체제가 붕괴되고 지난기간 인민들의 고혈을 짜내던 자들에 대한 인민들의 심판이 뒤따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한국 군인들에 대한 무장습격과 같은 직접적인 대남도발, 1980년대에는 한국 내부와 대외에서 무장간첩단 파견과 국제적 테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도발을 이어오던 북한당국은 전면전에 의한 무력적화통일을 추구하기 위해, 전선중부와 동부 등 많은 지역에서 남침용 땅굴도 굴설하기도 했습니다. 1972년부터 시작된 땅굴 굴설은 대한민국으로 의거 입국한 탈북군인들의 증언이 드러나면서 북한의 무력도발용 땅굴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1990 3월에는 강원도 양구군에서 제4땅굴이 발견되면서 북한의 무력적화통일 야망이 재확인되었습니다.

 

평양시 모란봉구역 전승동의 전우역 앞에 위치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3호청사엔 대남통전부 외에도 무력부 정찰총국 육해상정찰국이 들어와 북한의 무력도발이 해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북한의 해상 무장도발로는 1991 2월 남해 006호 납북사건, 같은 해 2 9일 제2 승영호 납북사건, 1996 9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8 6월 속초 앞바다 무장공비 침투기도사건, 같은 해 7월 동해 무장공비 사체발견사건, 11월 강화도 해안간첩선 침투사건, 12월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 1999 6월 제1연평해전 등입니다.

 

이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 북한의 대남도발이 해상도발을 위주로, 그 양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물론 1990년대 군사분계선 일대에도 무장침투사건이나 납치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들로는 1992 2월 서부전선 무장공비침투사건, 4월 판문점 무장공비 침투사건, 5월 은하계곡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3 9월 인천무장공비 침투사건, 11월 교동도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입니다.

 

북한 대남통전부는 1994년에 들어와서도 3월에는 임진강 무장공비 침투사건, 8월 판문점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5 7월에는 안승운 목사 납북사건, 같은 해 10월 임진강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부여 간첩사건, 1996 9월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1997 7월 철원 GP교전,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과 대성동 주민 납북사건 등 무장도발을 이어갔습니다.

 

1990년대 북한의 테러사건 중에서 전 세계가 경악했던 사건은 김정일이 자신의 처 조카였던 이한영 씨를 암살한 테러사건입니다. 이 씨가 탈북 후 대한민국에 살면서 저들의 숨겨진 뒷생활을 폭로한 저서를 출간했다고 하여 남파공작원들을 파견하여 암살한 테러사건은 김정일이 얼마나 김씨 왕조의 권력계승을 위해 살인적인 만행을 거침없이 강행했는지 잘 말해 줍니다.

 

1991년 북한이 감행한남해 006호 납북사건 2 5일 오후 1 15분경 백령도 서북쪽 28마일 해상 중국 산둥반도 수역에서 김춘철 씨 등 한국인 선원 5명과 중국인 선원 13명이 타고 있던 어선을 납북한 사건입니다. ‘남해 006납북사건이 있은지 4일이 지난 2 9일 북한은 23살의 두 어린 선원이 타고 있던2 승영호를 납치하였습니다. 피조개 잡이를 하던 충남 서산 수협소속의 10톤급 어선인2 승영호는 북한수역이 아닌 남한 서해지역에서 북한 경비정에 의해 강제로 납북됐습니다.

 

1998 7 12일 강원도 동해시 어달동 해안가에서 잠수복과 산소통 차림으로 체코제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변사체를 이곳을 거닐던 주민이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동해 무장공비 사체발견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도발사건을 통해 북한의 무장공비들의 침투가 해상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1998 12 17일에 있었던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은 그날 밤 11 15분경 전남 여수시 돌산읍 임포리 앞 초소에서 야간 감시장비(열상감시장비-TOD)를 이용해 바다를 주시하던 21살의 대한민국 국군 병사가 초소로부터 2㎞ 떨어진 방죽포 해수욕장 부근에서 해안 쪽으로 접근하는 반잠수정을 발견하고 격침한 사건입니다. 적 반잠수정이 발견된 즉시 보고를 받고 한국 경비정 2척이 출동하자 북한 반잠수정은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방향으로 도주하였지만, 해당 거제도 남서쪽 100km 공해상에서 광명함의 76mm 함포와 40mm 함포 사격에 의해 격파되어 격침되었습니다.

 

침몰한 반잠수정에는 6명의 북한군 시체가 발견되었고 유류품을 수색하는 과정에 노트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노트에는 남한 내 종북조직인민족민주혁명당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적혀 있었고 이를 토대로 당시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이라고 불리는 주사파 이석기, 김영환 등 조직원들을 적발할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잠수함 침투와 같은 해상침투 외에도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탈퇴를 선언하면서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킨 것입니다.

 

핵을 체제유지를 위한 국내외 대상 위협수단으로 여긴 김정일은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자 1990년대에는 핵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에 대한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막 시작되던 1994년에 김일성이 죽고 국가체제가 불안상태에 빠지자, 핵무기를 북한주민들에게 공포를 조성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혹이 국제사회에서 이슈화되자 북한은 대외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북한은 협상과정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연달아 탈퇴하면서 주변국과 미국 등과 정면 대결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북한당국의 이러한 처사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한 경제제재 결의안을 상정하였고 이에 대하여 북한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강경한 자세로 맞섰습니다. 그리고 1998 8 31일에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을 동해 일본지역으로 발사하였습니다.

 

이렇듯 북한의 대남통전부와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내부 혼란과 체제붕괴를 핵무기와 미사일개발, 내부 단속과 외부에 대한 위협공갈로 이겨내려 했던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발사는 대북제제로 이어져 지금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되었습니다. 또 같은 민족을 대상으로 살인과 도발을 이어오고 있는 북한에 대해 전 세계는 테러국가, 반인륜적인 집단이라며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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