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승려들의 월경사건과 탈북러시

김주원∙ 탈북자 xallsl@rfa.org
2021/11/03 08:23:50.840312 GM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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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승려들의 월경사건과 탈북러시 한 탈북여성이 튜브를 이용해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
/AFP

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이 3만 5천여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외에도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로 망명한 탈북민도 수천여 명에서 수십만 명에 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자기가 나고 자란 고향을 등지고 타향살이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정든 고향을 등지고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타국살이를 하였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많은 북한주민들이 지옥의 땅, 북한을 등지고 중국으로 탈북했습니다.

자기고향, 자기 나라를 등지고 해외 타향살이를 한 것은 조선시대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승려들의 월경사건과 현재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민들의 삶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성계에 의해 고려가 멸망하고 1392년에 한반도에는 새로운 봉건왕조국가인 조선이 세워졌습니다. 중국에서도 몽골제국에 의해 세워진 원나라가 멸망하고 주원장에 의해 1368년에 명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조선 태조왕 이성계를 도와 고려 왕조를 붕괴하는데 큰 공적을 세운 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이 옛 고구려 땅인 요동 지방을 정벌하려 한다는 소문이 중국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귀에 들어가자 명나라 왕조는 압록강 변방경비를 강화할 것을 하달하였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중국 명나라 백성들과 고려인들이 서로 압록강을 넘나들며 인삼채취와 장사를 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조선시대 초기에 들어서면서 압록강을 사이로 국경경비가 강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명나라의 승려가 압록강을 월경하여 조선으로 들어오거나 조선의 승려들이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 수도인 남경으로 들어가는 일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고려시대에 불교가 성행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를 배격하고 유교를 중시하는 정책이 장려되면서 조선왕조의 불교와 승려들에 대한 탄압으로 많은 승려들이 이에 반발하여 집단적으로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고려가 붕괴되고 조선왕조가 세워지면서 시행한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에 대한 자료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숭유억불은 조선왕조가 유교를 정교로 삼고 불교를 억압한 정책을 두고 한 말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해방 후 김일성에 의해 북한에서 기독교와 불교 등 모든 종교활동이 금지되고 종교인 탄압으로 목사, 신부, 승려 등 종교인들이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였던 당시의 상황이 조선시대 불교탄압으로 승려들이 중국 명나라로 탈출한 것과 너무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죠.

조선왕조실록에는 유교 중시, 불교 적대정책으로 1421년 상강(尙强)이라는 승려가 압록강을 도강하여 명나라 요동도사에게 찾아가 명나라 황제에게 중국에서 불교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요청을 올린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동도사는 승려 상강을 명나라 수도였던 남경으로 보냈고 명나라 황제를 알현한 상강은 조선왕조의 불교 탄압에 대해 호소하면서 명나라에서 불교활동을 하고 싶다고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그 이후에 많은 승려들이 압록강을 월경하여 중국 명나라로 탈출하였습니다. 태조왕 시기에 불교에 대한 억압이 심해지고 유교를 중시하는 성리학 신봉정책이 펼쳐지면서 승려들이 소유한 절과 토지, 노비의 감축 및 폐지가 시행되자 많은 승려들이 중국 명나라로 탈출하였습니다.

조선왕조는 승려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11권에는 “지금 함길도 감사의 상소문에 따르면 평안도의 의주, 삭주, 강계, 벽동, 창성, 인산 등지와 함경도의 경원, 경성, 갑산 등지의 절들을 모두 헐어버리고 거주하는 승려는 남도로 옮겨 그의 본향과 나이를 등록하여 다시는 불교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할지어다. 만약 다시 허물어버린 절간이 있는 곳에 몰래 간다면 고의로 놓아 보낸 사람과 알면서도 자수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라”고 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당시 조선왕조의 탄압을 피하여 중국 명나라로 탈출하는 승려들을 막기 위해 국경지역의 절들을 파괴하고 이들을 남쪽지역으로 이주시켜 감시하도록 하였던 것과 현재 북한에서 탈북을 막기 위해 국경지역은 여행증명서마저 특별히 국경지역 여행증명서를 발급하는 현실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탈북하면 그 가족들이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도강하여 탈출하는 것이 두려워 국경지역에서 남쪽지방으로 추방시키는 김씨왕조의 행태는 600~700여년 전 조선왕조가 한 것과 너무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조왕조시기 중국 명나라로 탈출한 승려들에 대한 처벌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1418년까지만 해도 장 100대에 그치던 처벌이 즉시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인 참불대시(斬不待時)로 이어졌습니다. 참불대시는 조선시대 중죄인에 대한 형벌의 한가지로 추분 이후부터 춘분 이전시기를 기다려 처형하던 처벌방법인 참대시(斬待時)와는 달리 즉시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탈출한 승려의 부모와 형제, 자녀들은 유배를 보냈습니다.

국경을 월경해 중국 명나라로 탈출한 사람들 중에는 일반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의주에서 살다가 중국으로 탈출한 한 사람은 조선왕조에 의해 요동도사를 통해 북송되었습니다. 당시 조선봉건정부는 명나라에 탈출한 사람들을 북송시켜줄 것을 당부했고 명나라에서는 탈출한 조선인들을 붙잡아 압송했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살 때 양강도 혜산에 있는 친선다리인 ‘혜산장백다리’로 중국공안에 잡혀 북송되는 탈북민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포승줄에 연결된 채 머리를 숙이고 국경다리를 통과해 넘어왔고 보위부에 이관되어 가혹한 중세기적인 고문을 당했습니다.

저의 어머님도 2010년 한국에 온 아들인 저를 찾아 떠났다가 중국 남방도시인 곤명 시에서 잡혔습니다. 당시 탈북하여 한국행을 함께 했던 14명이 모두 버스에서 중국공안에 체포되었고 신의주를 거쳐 북한으로 북송되었습니다.

저의 어머님은 청진교원대학에 다닐 때 성진제강소에 현지시찰을 나온 김일성을 접견하여 접견자로 명망이 높았습니다. 청진교원대학 외국어문학부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러시아어 교사로 근무하다가 접견자라는 이유로 평양 김형직사범대학 외국어문학부 영어과를 졸업하고 그때부터는 러시아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습니다.

접견자여서 다른 교사들보다 노동당에 충실했고 저에게 항상 충성심만을 교육했던 어머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1990년 동유럽국가들의 붕괴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사회의 잘못된 모순을 보기 시작했고 점차 북한정권과 노동당에 대한 불신이 커갔습니다. 어머님은 북송되어 보위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아들이 살고 있는 곳을 가려고 한 것이 무슨 잘못인가”고 당당하게 맞섰다고 합니다.

당시 함께 탈북하였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던 사람 중에 중학교 나이의 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미성년자라서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고 지금은 부모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와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저의 어머님이 당시 보위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 비명을 지르면서도 당당하게 외치던 모습을 알려주었습니다.

어머님은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고문을 당하다가 끝내 사망하셨고 시신마저도 보위부에서 처리하여 지금은 찾을 수 없습니다. 수만 명에 달하는 북송 탈북민들의 희생은 현대판 봉건왕조국가인 김씨왕조의 반인륜성, 반동성을 그대로 만천하에 폭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3만 5천여 명의 탈북민들 중에는 탈북하다가 잡혀 보위부 감옥과 노동교화소에서 인간이하의 천대와 고문을 당하다가 탈출하여 끝끝내 자유를 찾은 많은 분들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 의해 북한 김씨왕조의 북송 탈북민들에 대한 고문과 처형사실이 소설과 다큐멘터리 등으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만행들은 국제사회를 통해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으며 유엔에서도 해마다 북한의 반인륜성과 인권탄압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진화된 21세기 지구촌에 여전히 중세기적인 고문과 탄압을 일삼고 탈출하는 사람들마저 잡아다가 조선시대를 능가하는 처벌을 강행하는 북한정권과 김정은이 역사의 심판대에 오를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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