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시대의 군인 경음악단-모란봉악단

김주원· 탈북자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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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모란봉악단 소속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사진은 모란봉악단 소속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AP Photo

북녘 동포 여러분! 김일성 사망 후 공훈국가합창단이 생겨난 것처럼 모란봉악단은 김정일이 사망한 후에 생긴 악단입니다. 후계 세습을 위한 우상화선전, 세뇌선전에서 음악정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북한정권의 선전선동의 방향은 선대 지도자가 죽으면 새로 등장하는 예술단체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악단은 군복을 입은 군인 악단이라는 데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북한의 박춘남 문화상은 모란봉악단에 대해 “음악정치의 전위대로서 노동당의 선군정치, 주체혁명의 새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사상전선의 기수”라고 강조한 것만 봐도 북한당국이 모란봉악단을 얼마나 중시하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급사하고 2012년 4월 13일 노동당 제12기 제5차 당대표자대회에서 김정은을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김정은의 권력이양과정은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2010년과 2011년 김정일과 김정은의 공동권력행사기간이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끝나고 김정은의 단독 권력 행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시 중심에 남산이 있는 것처럼 평양시 도심 한가운데 있는 모란봉은 대동강 기슭에 있는 명산으로 그 경치가 아름다워 금수산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모란봉기슭에 있던 보통문 인근 저택에서 살면서 남산중학교를 다녔던 김정일에게 모란봉은 유년시절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김정일은 모란봉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모란봉교예단’, 은하수관현악단의 ‘모란봉중창조’ 등입니다.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그가 생전에 좋아하던 모란봉을 악단 명칭으로 하고 김정일 시대 창단되었던 보천보전자악단을 계승하여 창단된 모란봉악단은 2012년 7월 6일 첫 시범공연으로 자기의 새로운 존재를 알렸습니다. 2012년 7월 7일 노동신문에 실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새로 조직된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을 관람하시였다’는 기사에서 북한당국은 김정은이 “문학예술부문에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원대한 구상을 안고 새 세기의 요구에 맞는 모란봉악단을 친히 조직해 주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여성배우들로만 구성된 모란봉악단은 첫 시범공연에서 굽 높은 구두(하이힐)와 짧은 치마(미니스커트)차림의 여성들이 미국영화 '록키' 주제곡과 '마이 웨이(My Way)'를 연주하고, 미키 마우스와 백설 공주 같은 미국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을 무대에 출현시키기도 했습니다.

모란봉악단은 첫 시범공연무대에서 전기 바이올린과 전기 첼로, 전기 기타, 전기 베이스, 드럼, 색소폰, 피아노, 신시사이저 연주자에 가수 6명으로 이루어진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여기에 철천지원수라고 하는 미국의 영화인 ‘록키’의 일부 장면들이 무대 화면에 나오면서 주제가까지 연주한 것이라든가, 미국만화영화의 생쥐와 백설공주의 등장은 북한주민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북한전문가들도 당시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을 보면서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행보는 북한주민들에게 김정은 시대에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공연, 젊은 새로운 지도자상,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 공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은 주제와 구성으로부터 편곡, 악기편성, 그리고 연주 기법과 형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 요소를 기성 관례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혁신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의 노동신문에서도 “당의 음악정치를 최일선에서 받들어 가는 모란봉악단은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최후 승리를 위한 제1의 나팔수다”라고 그 역할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란봉악단의 출연과 함께 독특한 것은 2012년 10월 12일에 진행된 노동당 창건 67돌 경축공연 ‘향도의 당을 우러러 부르는 노래’에서 무대 뒤 화면에 출연하는 배우의 사진과 해당 배우의 이름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악기 이름을 공개한 것입니다. 모란봉악단 단장으로는 현송월이 소개되었고 부단장으로는 인민예술가인 작곡가 황진영과 행정부단장 김운룡, 성악지도부단장 장정애가 소개되었습니다.

모란봉악단 작곡가와 작가로는 인민예술가 안정호와 차호근, 창작실 실장으로는 공훈예술가 우정희였으며 전자 바이올린 연주는 선우향희와 홍수경, 김은하, 전자 비올라는 차영희. 전자 첼로는 유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시사이저는 김향순, 리희경, 김영미, 전기 기타는 강평희, 조경희, 전기 베이스는 리설란, 전혜련, 색소폰은 최정임과 선우정혁, 드럼은 리윤희와 한순정 등이었습니다. 기악 연주를 맡은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가수들도 김유경, 김설미, 류진아, 박미경, 박선향, 정수향, 리명희, 라유미, 리수경, 리옥화 등 모두 여성배우들이었습니다.

지난 시기 보천보전자악단은 독창과 개인 독주로 개인의 기량과 개성이 강조되었다면 모란봉악단은 중창과 합주 등으로 개인보다 집단이 강조되었습니다. 모란봉악단은 첫 시범공연을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진행하였지만 그 이후로 4.25문화회관, 목란관연회장, 인민문화궁전, 류경정주영체육관 등에서도 진행하였습니다.

모란봉악단이 이전의 다른 악단과 구별된 특징이 공연 시 무대 뒤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래나 곡의 내용에 따라 김정은의 현지시찰장면들이나 사진들을 내보냈는데 2013년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승리(휴전협정체결) 60돌 경축공연’인 기악과 노래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중에는 김일성의 생전 영상도 내보내 김정은이 김일성에서 이어진 백두혈통임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북한의 연속간행물 잡지인 ‘조선예술’ 2015년 2호에 모란봉악단의 무대 화면에 대해 “모란봉악단공연에서는 최신과학기술성과와 수단들을 적극 이용하여 무대의 화면형상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켜 나가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란봉악단은 의상도 다른 악단과 구별되었습니다. 2012년 7월 6일 첫 시범공연에서는 어깨나 등이 노출된 무대복(드레스)을 입고 출연하였다면 20일이 지난 2012년 7월 27일 전승절 공연부터는 군복을 입고 무대에 출연하였습니다. 그리고 군복색깔도 국방색에서 그 해 10월 10일 당창건 68돌 경축공연에서는 흰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란봉악단 배우들이 군복을 입고 무대에 출연한 내용에 대해 김운룡 부단장이 “전체 단원들이 군복을 입도록 김정은동지께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었다”고 한 것을 봐도 이것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군복차림의 무대복에도 불구하고 짧은 스커트를 입고 뒤축 높은 구두(하이힐)를 여전히 신었습니다.

모란봉악단이 생겨 조선중앙텔레비죤으로 공연을 방영하는 시간에는 그 공연을 보느라고 평양시내 거리에 인파가 적어졌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시범공연에서 미국영화 주제가가 연주되는가 하면 무대에 미국만화에 나오는 인형모형이 등장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악단을 바라본 북한주민들이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초기에는 세계명곡들을 연주하거나 세계적으로 이름난 만화영화음악이 무대에 등장하였지만 점차 노래들이 김정은에 대한 찬양가가 더 많이 불려졌습니다. 대표적인 곡들로는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모란봉악단은 부른 ‘우린 사랑한다’, ‘배우자’, ‘우등불’, ‘달려가자 미래로’, ‘보란듯이’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란봉악단의 공연 중에서 가장 많이 불려진 노래로는 ‘당을 노래하노라’, ‘진군 또 진군’ 등입니다.

북한당국은 모란봉악단에 대해 “우리 당의 친솔악단, 국보적인 예술단체”라며 “음악은 때로는 수천, 수만의 총포탄을 대신하기도 하고 수백, 수천만 톤의 식량보다 더 귀중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의 많은 청년학생들은 대한민국의 노래와 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위한 노래, 지도자를 신 같은 존재로 신격화하는 노래보다 생활의 진실을 반영한 노래를 부르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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