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의 모바일 북한] 손전화와 시위

김연호-조지 워싱턴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2024.12.17
[김연호의 모바일 북한] 손전화와 시위 지난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인근에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모바일 북한’ 김연호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손전화와 시위입니다.

 

북한은 2004년 신의주 인근의 용천역에서 폭발사건이 있은 뒤에 손전화기를 몰수하고 봉사를 중단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탄 열차를 노리고 누군가 손전화기를 원격 기폭장치로 써서 폭발을 일으켰다고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큰 돈을 들여 손전화기를 장만하고 통신 가입비까지 낸 사람들은 많이 억울했을 겁니다. 당시 북한의 보안당국은 일반 주민들의 손에 손전화기가 들어가는 것을 몹시 꺼린 것으로 보입니다. 정보통신 수단이 주민들에게 보급되면 감시와 통제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겠죠. 용천역 폭발사건은 손전화 봉사를 끊어버릴 좋은 구실이 됐을 겁니다

 

2008년말에 북한이 다시 손전화 봉사를 시작한 뒤 가입자 수가 수백만 명으로 늘자 외부에서는 언뜻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011년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민주화를 가져온 재스민 혁명에서 손전화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손전화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했고, 주변 국가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민주화 시위가 번져 나갔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북한 당국이 손전화 봉사를 확대했던 건 감시와 통제 기술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배어 있는 자기 검열도 여기에 한몫 했을 겁니다. 보안 당국이 모든 전화통화를 도청하고 있을 거라는 의심 때문에 전화로 정치적인 언사를 하는 건 위험한 짓이라는 거죠. 여기에 더해 북한은 이동통신법에서 이른바 불순한목적으로 손전화를 쓰지 못하게 하고 중요 행사나 회의, 금지된 지역이나 건물 안에서 손전화를 쓰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정을 한국 시민들에게 적용했다면 지난 주 수백만 명이 잡혀 들어갔을 겁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에 항의하고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서울의 국회의사당 앞에는 수십만 명이 모였는데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킬 때까지 집회를 계속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손전화를 쓰다 보니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통신장애가 발생했습니다. 여기에 대응해 이동통신사들은 이동기지국과 간이기지국을 증설해서 통신소통을 도왔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탄핵과 관련된 국회와 대통령실의 움직임을 손전화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과 신문,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인터넷 사회관계망에서 새로운 소식들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정보도 인터넷 사회관계망에서 빠르게 공유됐습니다. 국회의사당 주변의 화장실 위치를 안내하는 지도, 추운 날씨 속에 집회에 참석할 때 필요한 준비물을 상세히 안내하는 게시물도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역사의 현장에 데리고 나온 엄마들을 위한 정보도 손전화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기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일 수 있는 대형 버스를 몇몇 사람들이 돈을 모아 빌렸는데요, 손전화에서 볼 수 있는 공개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서 버스 위치를 알렸습니다. 시위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회의사당 근처 찻집과 식당에 연락해서 누구든 들어오면 공짜로 따뜻한 커피와 음식을 주게 했습니다. 비용은 전자지불체계로 찻집과 식당에 미리 결제했습니다.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한국 시민들의 시위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경찰과 충돌은 없었고 오히려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가요를 부르며 질서 정연하면서도 차분한 축제의 현장 같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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