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의 모바일 북한] 북한의 개정 이동통신법 3
2024.10.22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모바일 북한’ 김연호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북한의 개정 이동통신법 마지막 시간입니다.
북한이 지난 해 3월에 개정한 이동통신법을 보면, 몇 가지 눈에 띄는 추가 조항들이 있습니다. 이동통신 말단기, 한국에서는 단말기라고 부르는데요, 이 말단기의 수리봉사는 전파감독기관으로부터 전파설비 수리봉사 허가증을 발급받은 사람만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단말기의 수매봉사는 중앙 체신 지도기관과 해당 기관의 업종승인, 영업허가를 받은 기관, 기업소에서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의 감시와 검열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이 규정을 어길 경우 경고, 엄중경고 또는 3개월이하의 무보수노동, 노동교양처벌을 받게 됩니다. 손전화기를 몰래 조작해 주거나 그 봉사를 받던 사람들, 중고 손전화기를 사고 팔던 사람들을 처벌할 법적인 근거를 마련한 겁니다.
개정 이동통신법은 단말기 이용자들에 대해서도 더 강력한 규제사항들을 추가했습니다. 전에는 단말기를 이용해 비밀을 누설하거나 단말기 조작체계를 변경시켜 불순한 목적에 이용하지 말아라, 승인받지 않은 단말기를 이용하지 말아라, 상행위에 이용하지 말아라, 이런 금지 규정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개정 이동통신법은 중요 행사와 회의에 손전화기를 가지고 참가하지 말고 금지된 지역이나 건물 안에서 손전화를 하지 말아라, 불순한 그림이나 노래, 영화, 오락을 열람하거나 시청하지 말아라, 이른바 ‘괴뢰 말투’의 통보문, 전자우편을 주고받지 말아라, 이런 규정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단말기의 체계 프로그램, 기계번호 (IMEI)를 불법 변경해 이용하지 말라는 규정도 있는데요, 단말기의 수리 봉사와 관련한 조항과 직접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이 규정들을 어기면 당국이 이용자의 이동통신 봉사를 임시 또는 완전 중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42조에서는 괴뢰 말투의 통보문, 전자우편을 주고 받았거나 불순한 내용의 자료를 열람, 시청한 경우, 또 승인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이용했을 경우에는 단말기를 몰수한다고 별도로 명시했습니다. 그만큼 이 규정을 심각하게 다루겠다는 뜻이겠죠.
저는 개정 이동통신법의 이런 규정들을 보면서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자유로운 손전화 이용을 막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그것도 법률로 인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유엔은 전자매체와 통신망에서도 인권이 보호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이걸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겁니다. 특히 괴뢰 말투, 그러니까 남한 말투의 통보문, 전자우편, 이른바 불순한 내용의 자료에 관한 규정은 지난 2020년 채택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2023년에 채택된 평양문화어보호법과 연계돼 있습니다. 두 법은 유포자나 조장한자는 최고 사형, 이용자는 최고 15년형이나 6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에 이어서 이동통신법까지 동원해 주민들의 디지털 인권을 철저히 틀어막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통보문이나 전자우편에서 어떤 말을 썼다고 해서 범법자로 몰리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불순하다는 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 내용을 열람하거나 시청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말기를 상행위, 그러니까 돈벌이 하는데 이용하지 말라는 규정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아마 국가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비판받을 겁니다. 당장 국가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이 줄을 잇겠죠.
북한은 전민과학기술인재화와 수자경제 실현을 목표로 설정하고 이동통신의 역할을 줄곧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규정들을 갖고 어떻게 전민과학기술인재화와 수자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