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차와 손전화

김연호-조지 워싱턴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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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함흥시에서 고장난 목탄차가 도로에 세워져 있다.
북한 함흥시에서 고장난 목탄차가 도로에 세워져 있다.
ASSOCIATED PRESS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연호입니다. ‘모바일 북한’, 오늘은 ‘서비차와 손전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에서 개인이 돈벌이로 운행하는 차량들, 서비차 또는 벌이차로 부르는데요, 이제는 대도시 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서도 서비차들이 많이 다닙니다. 대형 트럭에서부터 버스, 롱구방이라고 부르는 승합차, 택시, 오토바이까지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이제는 목탄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겠죠.

이 서비차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운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북중 국경을 봉쇄하고, 주민들의 이동과 장사를 몇 달째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어서 서비차 손님도 크게 줄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거의 반년동안 지속되면서 북한의 장마당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수입품이 귀해져서 사재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는 물류가 막히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북한 주민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닐텐데요, 불만이 계속 쌓이다 보니까 단속원들과 마찰도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최근에는 주민들의 절박한 사정을 감안해서 단속의 고삐를 좀 늦추고 있다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장거리 택시와 버스들이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소식은 북한 내부에서 손전화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을 겁니다. 지역마다 어느 곳의 단속이 더 많이 혹은 덜 풀리고 있는지에 따라 운송비가 달라질 수 있고, 보내는 물건의 종류와 가격, 수량도 영향을 받겠죠. 방역 초소에서 뭘 어떻게 해야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도 중요한 정보일 겁니다.

혹시라도 초소에서 문제가 생겨 서비차가 붙잡히면 운전사는 서비차 주인 뿐만 아니라 물건을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손전화로 연락해줘야 합니다. 모처럼 다시 벌이에 나섰는데, 연락을 똑바로 안 해서 신용을 잃으면 벌이가 끊기게 될테니까요. 이런 신용의 중요성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전에 서비차 업계에서는 이미 상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장마당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신속 정확한 상품 운송이 필요한데, 이걸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서비차는 장사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손전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물류혁명의 짜릿한 맛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떤 탈북자는 손전화와 서비차가 만나면서 북한에서 장사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이런 영어 표현까지 쓰던데요, 한마디로 장사의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뜻이죠. 장사꾼들은 직접 만날 필요없이, 서로 거래할 물건의 가격과 수량, 배달 방법, 결제방식까지 손전화로 손쉽게 흥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체적인 배달 방법이 정해지면 서비차 운전사에게 전화해서 언제 어디서 물건을 받아갈지,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 물건을 전해줄지 알려주면 됩니다.

직접 물건을 들고 장거리 거래에 나서는 ‘달리기 장사꾼’은 옛말이 됐고, 이제는 도소매 상인과 서비차 운전사의 전화번호만 갖고 ‘집에 앉아서 장사’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장마당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장마당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확보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제 장사꾼들에게 손전화는 허세를 부리는 장신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된 겁니다.

손전화와 서비차의 만남은 장사꾼들이 북한 전역을 영업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활짝 열어줬습니다. 북한 당국의 통제를 빠져나가는 사람과 물건의 이동이 크게 증가했다는 뜻인데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이 흐름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북한이 과연 손전화와 서비차가 만들어 낸 물류 혁신을 계속 눈감아 줄지, 아니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계기로 통제로 돌아설지 두고 볼 일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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