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의 모바일 북한] 과학기술보급실의 모순

선교편직공장 노동자들이 내부에 꾸려진 과학기술보급실에서 학습하고 있다.
선교편직공장 노동자들이 내부에 꾸려진 과학기술보급실에서 학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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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모바일 북한’김연호입니다. 오늘의 주제는‘과학기술보급실의 모순’입니다.

북한 관영매체가 이달 초 또다시 과학기술보급실 운영을 제대로 하라고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운영계획부터 구체적으로 실속있게 세우라면서 사업을 정상화, 생활화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보급실 운영계획을 실속있게 세우는 건 단순한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모든 근로자들을 지식형 근로자로 만들겠다는 당 정책 차원의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2013년부터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당의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웠습니다.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대학졸업 정도의 지식을 소유한 지식형 근로자로 만들어서 과학기술 혁신과 경제발전을 도모한다는 구상입니다. 이게 제대로 이뤄지려면 과학기술보급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건데요, 구체적인 계획 없이 이것저것 아무 거나 배우는 식으로 진행해 나간다면 시간낭비만 할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걸 보면 운영상의 문제가 계속 드러나고 있나 봅니다.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근로자들이 과학기술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계획을 잘 세우라는 주문은 그래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기술보급실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생산활동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근로자들이 짬시간에 혹은 근무시간이 끝난 다음에 과학기술보급실에서 학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게 하는 근로자들이 많지 않나 봅니다. 위에서는 과학기술보급실의 운영계획과 성과를 내놓으라고 하고, 근로자들은 짬시간이나 근무시간이 끝난 다음에 과학기술보급실을 찾지 않는다면, 공장과 기업소 책임자로서는 참 난감할 겁니다.

당 조직들에게도 과학기술보급실 운영계획을 검토만 하지 말고 직접 단위실태와 절박한 기술적 문제들, 자기 분야의 세계적 발전 추세를 깊이 연구하면서 개선책을 만들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당 간부들부터 공장, 기업소의 실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기술 문제에 관한 학습과 연구를 제대로 해야겠죠. 뭘 알아야 잔소리를 할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위에 하란다고 자동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이 조성되거나, 그렇게 하면 내게 큰 이득이 생겨야 움직이겠죠.

북한이 과학기술전당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과학기술보급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게 2016년 초입니다. 공장, 기업소의 과학기술보급실, 지방의 미래원과 과학기술도서관을 국가망에 연결해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위한 하부구조를 만든다는 구상인데요, 건설공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과 근로자들이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해 마무리한다 해도 운영은 위에서도 마음대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2020년초에도 과학기술보급실의 운영을 계획화, 정상화 하라는 지적이 북한 관영매체에 나왔지만 4년이 지난 2024년 7월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북한 당국의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보급실의 운영을 전담하는 과학기술보급일꾼, 보급원들을 뽑아서 과학기술전당이 이들에게 원격교육과 원격강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미국이나 한국을 보면 과학기술 혁신은 국가적인 대규모 투자가 있거나, 시장의 치열한 경쟁, 혹은 몇몇 천재적인 혁신가들의 헌신이 있을 때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시장 참여자들과 혁신가들은 그게 큰 돈벌이가 되고 개인적으로도 큰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밤을 새워가며 일을 했을 겁니다. 성공했을 때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는 겁니다. 모든 게 성원들의 생각과 태도에 달려 있다고만 할 게 아니라 과학기술 혁신에 달려들어 일하고 싶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조건을 보장해 줘야겠죠.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