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유행(2) 임수경 바지에서 김치 냉장고까지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2-09-18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70-80년대 유행 패션을 입은 모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70-80년대 유행 패션을 입은 모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출신 탈북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지난 시간부터 유행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남쪽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이 ‘멘붕’입니다. ‘멘탈이 붕괴됐다’의 줄임말 ‘멘붕’인데요. 멘탈은 정신이라는 뜻이니까 ‘멘붕’은 정신적 공황상태를 말합니다. 왜 당황하거나 황당한 일을 당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아무생각 안 나는 경험 있으시죠? 그게 바로 ‘멘붕’입니다. 올해 이 말이 유행했다는 건 요즘 ‘멘붕’할 일이 많다는 얘기로도 들립니다.

유행이 어떻게 생겨나나... 한 번 따져보면 외국의 유행이 그대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필요가 반영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행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억눌린 마음을 대변한다’는 남쪽의 원로 희극인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데요. 북쪽의 유행을 죽 짚어보면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느껴집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 ‘유행’ 두 번째 얘깁니다.

문성휘 : 열쇠를 모으는 게 전쟁이었다니까요. 20-30개씩 모아서 허리춤에 끼고 다녀요. 그게 86년 즈음이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바지통이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나팔바지가 유행했어요. 중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남자고 여자고 김일성이 선물 준 바지가 있었어요. 그걸 밑단을 뜯어서 삼각 쐐기를 넣어서 나팔바지를 만드는 것이죠. 한 때 그 걸 통제하기위해 길바닥마다 규찰대가 서고 학교들에서 선생님들이 다 나와서...

김태산 : 그게 80년대 말이면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맞네요. 내가 69년에 군대에 나가서 군수공장에 갔는데 70년 초에 그 나팔바지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때 국가에서 파는 바지를 나팔바지로 만들려고 비슷한 천을 어디서 구해서 양복 만드는 아줌마한테 갖고 가 쐐기를 만들어 붙여 달라고 했어요. 바지통을 펄러덕 펄러덕하게 입고 다녔지요. (웃음) 그러다가 그 유행이 지나고는 다시 직선 바지가 유행했는데 그 후엔 나팔바지가 유행했다니 옷장 안에 옷 버리지 말고 잘 갖고 있어야 해요. (웃음) 내가 1983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85년도 되니까 양복 뒷자락을 양쪽으로 쪼갠 것이 나왔어요. 그 전에는 가운데만 짜개져 있었는데 그때부턴 무슨 유행이 그런지 양복 뒷자락을 꼬리마냥 만들어놨더라고요. 처음엔 얼마나 웃기던지... 그래서 한참은 그걸 일부러 막아서 입고 다녔는데 나중에 나도 따라 입게 되더라고요. 따지고 보면 북한도 유행을 따라가긴 해요. 근데 그 시간이 다른 국가들보다 한 10년 정도가 느린 거죠.

문성휘 : 우리 때는 유행에 정말 예민했어요. 주변 중국이 한참 발전할 시기였으니까 그런 바람이 많이 들어왔죠. 뭐가 제일 유행이었냐 하면 임수경 씨가 들어왔을 때 그 옷이 엄청나게 유행이었어요.

진행자 : 청바지, 면 티셔츠에 목수건이요?

문성휘 : 청바지가 아니고요. 얇은 하얀색 바지였는데 밑을 고무줄로 조인 바지였어요. 늙은이들이 입는 풍덩한 몸뻬가 아니고 엉덩이 부분은 벙벙한데 밑으로 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진행자 : 당꼬 바지요?

문성휘 : 이름도 다 달라요. 우리는 ‘펄바지’라고 했던가? 다른 데서는 꽁치 바지라고도 불렀다고 하고요. 정말 여자고 남자고 다 그 바지를 입었는데 바지를 해 입을 흰 나일론 천을 구하지 못해서 얼마나 난리였는데요. 또 정주영 회장 일행이 들어왔을 때도 바지가 희한했어요. 당시 북한에서 통바지가 유행이었는데 세계적으로 이름난 부자라니까 정주영 회장이 어떤 옷을 입었나 다들 유심히 봤죠. 근데 그 일행의 바지가 밑을 다 이렇게 확 줄인 것이었어요. 이게 세계적인 추세이로구나해서 정 회장 사진이 노동신문에 나자마자 간부들까지 바지 밑을 팍 줄여 입었어요. (웃음) 그리곤 그 바지가 한참 유행했죠...

진행자 : 북쪽도 어디 좀 새로운 바람이 들어가야 유행이 시작되는데 그런 게 워낙 없다보니까 이렇게 밖에서 들어간 사람들을 유심히 보고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네요.

김태산 : 양복 재단사들은 외국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재단 책 한권 구해다 달라는 게 큰 소원이에요.

진행자 : 남쪽도 바지통이 유행에 따라서 줄었다 늘었다 그러죠. 요즘은 스타킹처럼 딱 붙는 바지가 유행입니다. 저희 학교 다닐 때 심하게 통이 크고 바닥에 줄줄 끌리는 바지가 유행이어서 동네 어른들에게 동네 청소 다 하고 다닌다고 많이 놀림 당했습니다. (웃음)

문성휘 : 그런데 남쪽은 그런 유행이 있어도 통제는 안 하지 않습니까?

진행자 : 왜요? 학교에서는 통제를 하죠. 선생님들에게 혼납니다.

문성휘 : 학생들은 두발 단속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처음에 남쪽에 와서 학생들이 두발 자유, 두발 자유... 그러기에 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어딜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 두 발로 걸어서 어디 좀 갈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얘기인 줄 알았어요. (웃음) 알고 보니 중학생들이 (중고등학생들이) 머리 기를 자유를 달라는 얘기더라고요.

진행자 : 요즘은 좀 덜 합니다. 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여학생은 귀밑 3 센티, 남학생들도 짧게 깎아야 했고요. 머리 모양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해라 이런 얘기죠. 근데 이상하게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어요. (웃음)

문성휘 : 사실 북한에서 제일 빨리 유행되는 건 김정일 위원장이 입은 옷이었죠. 김 위원장이 뭘 하면 그 즉시로 유행합니다. 북한에서 제일 좋은 옷을 입는 사람이 김 위원장이니까 당연한 얘기죠.

진행자 : 재밌는 건요. 옷 못 입는 지도자를 뽑으면 김 위원장이 상위권이란 겁니다. (웃음)

문성휘 : 김 위원장이 배가 나와서 그걸 가리기 위해 옷을 그렇게 입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북한에선 그 점퍼가 굉장히 유행을 했고 해마다 겨울이면 중앙당 부장동복이라는 게 있어요. 김정일 위원장부터 간부들 입는 동복인데요. 그런 게 텔레비전에 나오면 재단사들은 유심히 봤다가 단추 하나, 주머니 하나도 정말 똑같이 만들어 내죠. 그래서 부장 동복, 장군님 동복이라고 이름 붙여서 많이 팔죠.

진행자 : 김 선생도 이런 옷 많이 입어보셨어요?

김태산 : 많이 입었어요. 또 김 위원장이 71,72년 이때는 ‘패기머리’라고 해서 머리를 짧게 깎았는데 몽땅 다 따라 깎고 한 때 그게 또 유행이었죠. 저는 점퍼도 참 많이 입었는데 겉에 그것을 입으면 안에 뭘 입어도 상관없고 만능 옷이에요.

문성휘 : 양복보다 사실 점퍼가 참 편하고 좋죠.

진행자 : 장군님 점퍼와 비슷하게 생긴 점퍼가 남쪽에도 있긴 한데요. 김 위원장이 입는 게 남쪽에서도 많이 노출 됐거든요? 그래서 좀 세련되지 못한 옷이라는 이미지도 있죠. (웃음)

김태산 : 북한에서는 장군님 때문에 점퍼와 색안경을 남쪽의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한다고 선전도 하고 했는데요...

진행자 : 남쪽도 유행이 일본이나 미국과 몇 년 차이로 들어온다... 이런 얘기가 많았는데 이제는 인터넷이 활성화됐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의미가 없죠.

김태산 : 동시에 같은 소식을 접할 수 있지 않습니까? 또 팔아야 할 사람들은 그걸 또 팔아야하니까 빨리 만들고 전파되고... 이러니까 이제 유행은 전 세계를 같이 휩쓸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문성휘 : 그저 보면 한 넉 달이면 입는 것부터 먹는 것까지 다 바뀌는 것 같아요. 도대체 왜 그렇게 되는지... 사실 이 유행이라는 게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진행자 : 사실은 경제 문제가 아닐까요? 새로운 유행이 왔다는 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팔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유행에 따라 새로운 산업이 생기기도 하고 일부러 판매를 위해 유행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요.

김태산 : 북한의 계획 경제는 세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이 신발 한 켤레씩 신으니까 3 켤레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계획 경제를 포기하고 판매의 자유와 구매의 자유가 생기면 사람들이 좋은 것을 골라 신고, 골라 입을 겁니다. 그러면 나쁜 것을 만든 사람은 망하고 잘 만든 제품은 흥하고요. 결국 생산은 유행을 부추기고 유행은 생산을 부추기는 거죠. 또 이게 끝이 아니에요. 물건을 만들었으면 또 빨리 퍼지게 해야 하니까 유통도 빨라지고 이러면서 경제 활동의 활성화가 이뤄지는 거죠.

진행자 : 요즘 북쪽에서 들어온 젊은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남쪽 젊은이들과 별 다를 게 없어요. 유행에도 민감하고 중고 상품으로 남한 옷도 많이 사 입었다고 하고요... 북쪽도 열리기만 하면 경제가 빨리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문성휘 : 남포항 같은데 나가면 메이드인코리아라고 인쇄된 상표가 동그랗게 말아서 뭉치로 들어오는 걸 볼 수 있어요.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뭉치를 사서 자기가 만든 옷에 붙여서 팔죠. 그럼 남한산이라고 더 잘 팔려요. 중고도 일본산과 한국산이 있는데 한국산이 더 잘 팔리고요.

진행자 : 남쪽에도 유행하는 게 북쪽에서도 유행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취향도 비슷하고 생활 습관도 비슷하니 필요로 하는 것도 같죠.

김태산 : 미국에 한번 가보니까 미국 사람들이 발이 얼마나 큰지 신발도 다 크고 양말도 커요. 우린 다 비슷하잖아요. 북한에서도 문이 열려서 남쪽 상품이 들어가면 정말 버릴 것이 없는 거죠. 옷이나 신발도 그래 노래도 번역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고 부르잖아요. 영화나 드라마, 쿠쿠 밥솥...

문성휘 : 가장 간단한 예로 김치 냉장고요. (웃음) 북한 사람들도 얼마나 좋을까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진행자 : 맞습니다! 오늘 유행 얘기 해봤는데요. 유행이라는 게 어찌 보면 참 덧없고 쓸데 없는 것 같지만 우리 젊었을 때 추억이기도 하고 즐거움이기도 했잖아요? 굳이 경제 문제까지 얘기하지 않아도 빼놓을 수 없는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이런 유행도 남북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와야 하지 않겠어요?

김태산 : 맞아요.

문성휘 : 그렇죠!

진행자 : <내가 사는 이야기> 두 차례에 걸쳐 유행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릴게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원본 사이트 보기